영화 한 편이 세상을 변화시킨 적이 있다. 문제작은 지난 99년 제5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벨기에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로제타’다. 영화는 일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친구를 내쳐야만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청년실업자의 찌든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로제타의 삶은 곧 벨기에 청년들의 현실이었고, 이 영화는 새로운 고용정책 탄생의 기폭제가 됐다. 신규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못할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각했던 벨기에는 2000년 청년고용대책을 시행하면서 이 영화 제목을 차용했다. 이른바 ‘로제타플랜’이다. 50인 이상 기업에서 3%의 청년을 추가 고용하도록 한 이 계획이 바로 ‘청년고용할당제’다. 벨기에 정부는 청년고용할당제를 이행하는 기업에겐 신규고용 1명당 사회보장 부담금을 감면하는 대신 이행하지 않은 기업에겐 벌금을 부과했다. 벨기에 정부는 시행 첫해에 1천350억원을 투자해 5만명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최근 벨기에의 청년고용할당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월 청년실업률이 10년 만에 최고치인 10%를 돌파하자 청년고용할당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월 청년실업률(10.0%)은 지난 2000년 2월(10.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실업률은 지난 1월에 이어 5%대인데,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에 달한다. 특히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43만3천명으로 지난해 같은달에 비해 6만1천명이나 늘었다. 금융위기로 인해 기업들이 잔뜩 움츠려 있었던 지난해 2월보다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부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청년구직자·신규졸업자가 한꺼번에 노동시장 문을 두드리면서 실업률을 끌어올린 탓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앞으로가 문제다. 늘어난 청년구직자만큼 고용여건이 나아질 수 있느냐다. 정부는 3월부터 희망근로 등 공공부문 일자리 사업이 시작되면 실업률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희망사항이다. 올해 공공부문 일자리 사업은 지난해보다 줄어들었다. 민간부문도 일자리를 늘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민간기업의 경우 지난해 정부의 청년인턴 채용사업을 거들기는 했지만 소극적이었고, 그나마 올해 이 사업을 추진할지 미지수다.

앞으로 청년 고용시장 여건이 나아질 수 없다면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기업이 알아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유도해야 한다. 우리 사회도 청년고용할당제를 도입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우선 공공기관부터 시행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2004년부터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라 86개 공공기관의 경우 매년 정원의 3%를 고용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지난2008년 3% 청년고용률을 지킨 공공기관은 86개 중 12개에 불과하며, 48개 기관은 아예 청년을 고용하지 않았다. 청년고용 할당이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부터 청년고용할당제를 의무화한다면 심각한 청년실업을 푸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청년고용할당제를 의무화할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2만8천명, 공기업에서 7천400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가 3만5천개 이상 늘어난다. 지난해 정부가 청년인턴 사업으로 1만5천개 일자리를 새로 만든 것보다 더 나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청년고용할당을 준수하지 않은 기관은 부담금을 내고, 준수한 기관에 지원하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를 바탕으로 규모별로 민간부문에 확대 적용할 수도 있다. 단계적으로 민간부문에 적용하는 것이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졸업 후 학자금 상환을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실신자’, 아르바이트로 부족한 학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뛰는 ‘알부자족’, 10대도 장차 백수라는 ‘십장생’. 청년들의 희망 없는 푸념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희망은 없다. 정부가 청년고용할당제를 도입해 그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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