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경제위기가 몰고 오는 파장은 만만치 않다. 일자리를 앗아가기도 하고, 한평생 바쳐 일한 일터를 한순간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취업을 못하고 누군가는 회사를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 남아서 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건 늘어난 업무와 실적에 대한 압박 등 직무스트레스와 각종 연장․휴일․심야 근로 등 증가된 업무시간으로 인한 과로사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과로사 급증’을 가져다 준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함이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함이든,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위함이든 간에 과로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경쟁의 심화와 성과주의 인력운영 정책은 과로를 부추기고 직무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어느 날 갑자기 직장동료나 친척, 친구가 과로사로 쓰러지는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과로사의 예비군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과로로 인한 뇌혈관 질환의 산재요양 승인 여부

이번 판례는 이런 과로와 관련된 산재사건에 대한 행정법원의 판결이다. 과로사는 뇌혈관계통과 심장질환 등으로 주로 나타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에게 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예상외로 스트레스나 과로에 강한 사람들도 있다. 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약한 사람들도 있다.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은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다가 두통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져 뇌출혈 진단을 받고 산재요양 승인을 신청한 원고에 대해서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인정되지 아니하고 기존 질환이 있었던 점을 비추어 상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요양 신청을 불승인했고, 이에 원고는 행정법원에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과로사나 돌연사의 특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발생과정이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적 사태로 발병하는 질환이므로 업무수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휴식이나 취침 중에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다. 더욱이 기존 질환과 과로·스트레스가 혼재돼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운 점이 많다. 실제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요양 불승인 처분을 받고 소송 등을 통해 산재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산재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는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이 있다. 하지만 산업재해가 과로사나 돌연사 등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거나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만으로 모든 산업재해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으며, 여전히 의학적으로 풀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대법원은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관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며, 그러한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이 됐다고 보아야 하며, 기존 질병이나 질환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입증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평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대법원 2006.9.22 선고 2006두7140, 대법원 2001.7.27 선고 2000두4538, 대법원 2006.3.9 선고 2005두 13841 등)

이번 행정법원의 판단도 이러한 기존 대법원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대상 근로자가 만 46세 이상의 남성으로 강남지역 영업팀장으로 병원 방문, 부하직원 관리, 영업관리 등 기본 업무 외에도 의사들의 각종 세미나나 행사, 경조사 등에 참석하느라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를 하는 경우가 많아 상병 발병 무렵까지 장기간 육체적 피로가 누적돼 왔다고 인정했다. 또 영업실적이 악화돼 실적부진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공석중인 영업본부장 승진과 관련한 부담감 등이 작용했다고 인정하면서, “기존 질환인 당뇨와 고혈압이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병 발병 무렵의 업무 과중, 매출감소, 승진지연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로와 스트레스가 당뇨와 고혈압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켜 뇌출혈을 유발하거나 기존 질병인 당뇨, 고혈압에 겹쳐 뇌출혈을 유발한 것이라고 추단”해 상병이 업무와 인과관계를 이정할 수 있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과로와 직무스트레스가 산재에 미치는 영향

중과노동이 지속되면 신체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게 된다. 장시간 노동, 휴일없는 노동, 주야역전 노동 등으로 인한 반생체리듬의 형성에다 다중책임부담, 단신부임, 의사에 반하는 배치전환, 전출 등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이러한 환경이 지속되면 수면리듬이 문란해지고 휴식, 여가가 감소되며, 과잉음주나 흡연이 늘고, 식습관이 불규칙해 지는 등 생활리듬의 파괴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피로를 축적시키고 과로 상태가 발생해 과로사나 상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대해 근로계약상 안전배려의무를 가진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사무관리직 근로자에게 과로와 스트레스는 당연한 현실에서 이러한 배려를 기대하는 건 아마도 사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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