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께  -조은영-
 
방한복을 입고 아이들과 함께 세교공원에서 시작한 촛불문화제가 반팔 옷을 입고 모기떼와 싸우는 계절이 되도록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더 높은 한 목소리로 더욱 강한 결속으로 치열해져 갑니다. 만난 지 9개월 만에 결혼해서 가족도, 친구도, 어느 누구 하나 아는 이 없는 평택에 당신 하나 믿고 정 붙이고 살게 된 것이 어느새 십년이 훌쩍 지났네요.

당신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소중한 인연을 쌓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들이 지금은 참 많이 저를 아프고 외롭게 합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전화 한통 없고요,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하는 말이 왜 거기 있느냐고 나오라는 말뿐입니다. 그분들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십여 년을 먼 친척보다 낫다는 이웃사촌으로 지냈던 동료들이고 그의 가족들인데, 그 누구보다 쌍용자동차의 오늘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걱정하는 전화 한 통 없는 걸 보면, 혹시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자책감도 듭니다. 이 모든 사태가 해결되는 날, 그 분들과 예전처럼 담소를 나누고 웃는 얼굴로 대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 저 나무라지 않으실 거죠?

세 아이와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당신이 한데에서 잠을 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데도, 저와 아이들은 그래도 따뜻한 내 집에서 편히 자고 잘 지내요. 아이들은 놀이터도 없는 아빠의 회사 안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인라인이나 닌텐도보다 더 재미있고 건강한 놀이를 하며 지내고 있어요. 지난해 12월을 시작으로 당신의 급여가 체불되기 시작했을 때, 두 돌도 안 된 막내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자고 반대했지만 제가 당신을 설득하면서까지 출근하게 된 것은 돈이 급해서가 아니라 당신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당신만 바라보고 제비 새끼마냥 입 벌리고 앉아 있기보다는 씩씩한 마누라가 되어 당신의 비겁하지 않은 정당함과 소신에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기자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혹시 남편에게 희망퇴직 신청하자고 말해본 적 있냐고.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쌍용자동차에 몸담은 지 십오 년이 넘었으니 저랑 산 세월보다 길고요, 하루 중에 저와 보내는 시간보다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인데 단지 부인이라는 이유로 자식들을 인질 삼아 돈 몇 푼 챙겨보겠다고 그리해야 옳으냐고 대답했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 비겁하게 피하기보다는 한마음 한뜻을 지닌 동지들과 오늘 이 순간을 기꺼이 즐기며 보내자고요. 지금 당장은 조금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이것 역시도 우리 가족의 역사입니다. 결혼 전 제가 당신에게 시계를 선물하며 프러포즈한 거 기억해요? 각자 26년과 29년간 다른 삶을 살았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다며 제 마음을 전했는데, 그때 장밋빛 시간만을 약속드린 건 아니에요. 당신이 희망입니다. 모든 아빠들이 아내와 아이들의 희망입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모든 아빠들께 이렇게나마 모든 아내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남편의 자리는 좁아진다고 하대요. 근데 저는요…, 당신과 살면서 나날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존경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많이 느낍니다. 눈뜨면 바쁜 아침 시간에 아이들과 전쟁을 치러가며 출근 준비를 하고 나름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가 아이들과 얼굴 마주하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매일 반복되었던 그 일상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저는 오늘을 시련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처럼 내일 우리가 오늘보다 더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낮에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밤이면 방안에서도 이불을 덮지 않으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추우니 당신과 동지들의 건강이 염려됩니다. 제대로 갖춰진 식사는 아닐지라도 때맞춰 꼭 챙겨 드시고요,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온가족이 둘러앉아 눈빛을 나누며 식사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9년 6월 18일 ·당신의 아내 조은영
 
 

8.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함께 
    -뭉게구름-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며칠에 한 번씩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더니, 지난달 총파업 하던 날 짐을 챙기러 들어왔던 당신.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지요. 그동안 촛불집회를 한다고 전해 듣기만 하고 참석은 못했었지요. 당신이 짐을 챙겨 회사로 들어간 지 이틀 뒤 토요일에 전 두 아이를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촛불집회 참석하는 내내 한참을 울었답니다. 참고 참고 또 참아도, 흐르는 눈물을 닦고 닦고 또 닦아도 어디서 그렇게 샘이 솟는지…. 두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지요.
 
그 후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뒤엉켜 버렸네요. 희망퇴직서를 쓰고 나오라고 말을 해야 하나, 정리해고 명단에 없을지 모르니 그냥 집으로 돌아오라고 해야 하나, 아님 억지로라도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써야 하나…. 하지만 이런 망설임은 잠깐이었네요. 언제나, 지금까지 당신이 하는 일을 믿어왔기에, 이번에도 조용히 당신 뒤에서 지켜주기로 하였지요. 이젠 회사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는 당신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만 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싸움. 부디 끝까지 싸워서 꼭 승리하라고 응원해봅니다.

회사에 다녀오는 날이면 ‘가대위’ 분들과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인 아이들이 눈에 밟혀 눈물을 흘리곤 해요. 카페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흐르는 눈물이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주는 당신.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도 큰 날들입니다. 두 아이들에게도…. 이제까지 함께 해오며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사이좋게 행복하게 살아왔기에 하늘이 질투를 하나 봐요.
 
예쁜 두 아이와 함께 당신 옆에서 늘 바라보며 응원할게요. 곧 지금의 이 시간을 이야기하며 웃을 날이 오겠지요. 표현은 잘 못하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따뜻한 당신인 걸 알기에, 그런 당신과 우리의 분신인 두 아이가 함께하기에 저는 행복합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건강한 모습으로, 웃음 가득한 밝은 모습으로, 다시 집으로 귀가 할 당신을….
 
이제까지 많이 해주지 못했던 말…. 지금까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이 사랑 변치 않겠습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당신과 우리 두 아이와 함께이고 싶습니다. 나의 신랑! 나의 반쪽!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9년 6월 19일 뭉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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