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보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잘나가는 스타나 가족애를 앞세운 암보험 텔레비전 광고도 종종 보인다. 성인 사망자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암보험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보험제도’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적극적으로 사고 발생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사고 발생으로 인한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즉 보험제도는 암 예방을 위한 사전예방의 원칙에 역행하는 제도인 것이다.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암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여기에는 정보 제공과 알권리라는 전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미 발암물질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이 작업장 안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정과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사용하는 대부분의 소비제품을 통해 발암물질·생식독성물질 그리고 흔히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진 내분비계교란물질 등에 노출될 수 있으며 이미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는 사용하는 제품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만일 작업장에서 화학물질을 다루고 있다면, 그 노동자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와 표지(Label) 제도를 통해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보호조치·작업방법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물론 MSDS제도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노동자에게 알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소비제품에 유해성 정보와 이와 관련한 표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민들이 알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시민의 알권리에 관한 운동이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비자 가이드다. 캐나다의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운동단체인 LEAS(Labour Environmental Alliance Society)는 2004년 'CancerSmart'라는 소비자 가이드(The Consumer Guide)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가이드에는 시민에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들어 있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와 덜 유해한 제품으로 바꾸도록 하는 대체에 관한 정보까지 담겼다. 2008년에는 내용을 추가한 'CancerSmart 3.0'이 새로 나왔는데, 가정용 세척제·샴푸·로션 등의 개인위생용품·플라스틱 물병·어린이 장난감 등에 포함돼 있는 발암물질과 생식독성물질·내분비계교란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안전한 대체제품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또한 채소나 과일 등의 잔류농약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 있다.

미국의 환경단체인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는 'Skin Deep'라는 화장품·개인위생용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한다. 제조회사별·제품별로 유해화학물질의 함유 여부, 독성·건강영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비자용 가이드다. 국내에서도 2008년 10월부터 화장품 전성분표지제가 시행돼 화장품 제조에 사용된 모든 성분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성분나열만으로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켰다고 보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일반 시민이 성분만으로 그 제품이 ‘유해하다’, ‘유해하지 않다’ 라는 것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성분의 발암성 유무, 독성 등에 관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이러한 가이드를 통해 시민은 세척제나 화장품을 구입할 때 제품 구매단계에서 유해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는 제품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해물질에 덜 노출되고 암의 위험도 감소시킬 수 있다.

2010년 2월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에서는 발암물질목록 1.0을 발표했다. 노동자·시민에게 "이것이 발암물질이다"라고 공표했으니, 다음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국내 실정에 맞는 안전한 소비자 가이드가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물론 소비자 가이드 사용 주체인 노동자·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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