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죽은 자’의 아내입니다  -조현경-

오늘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밥 차려 식구들 먹이고 7시45분에 5학년, 3학년 두 아이 학교에 보내고, 8시55분에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76세 시어머님을 복지관 차에 태워 보내고, 10시에 80세 아버님이 노인정에 가시면 그때부터 인터넷을 뒤져 쌍용차 소식과 ‘가대위’ 카페에 눌러 살고 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5시에 일어나 5시40분에 남편을 인력시장에 보내며 시작했는데, 회사에서 ‘죽은 자’로 낙인 찍혀 버려진 후 회사에 들어가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3학년 딸아이가 응석받이라 징징대는 게 큰 문제라서 혼내곤 했는데, 지금 제가 징징대며 살고 있습니다.
 
좀 전에 큰시누이가 전화하셨어요.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울고불고 매달리는걸 보셨나 봐요. 제 인생에, 제 삶에 그런 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전 지금 누가 툭 건드려만 주면 언제나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 저와 같으신 분들이 천 명은 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이 상황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우리를 버렸고요, 회사도 우리를 버렸습니다. 어제 16일, 회사 앞에서 느꼈습니다. 우린 동료에게도 버림을 받았구나, 하고 말이죠. 사측 사람들이 우리에게 눈 똑바로 뜨고 외치더군요. “외부세력 물러가라….”
 
우리가 언제부터 외부세력이 된 겁니까. 사측에 저의 둘째아주버님과 형부가 계십니다. 물론 어제 현장에서 뵙지는 못했지만 어딘가에 계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비폭력을 외치는, 살아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번 사태만 대충, 그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해결이 나면 술 한 잔 사고 풀어야지 하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낮에는 ‘정상조업’을 외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죽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하시는지요. 언어도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박수도 폭력이 될 수 있고, 함성도 폭력일 수 있습니다. 제발 우리를 두 번, 세 번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당신들이 짓밟고 때리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힘들고 아픔 속에서 겨우 숨만 쉬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소위 살았다는 분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도 힘들다고…, 살아 있는 게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마십시오. 집 전화 끊고 핸드폰 정지 시키십시오. 그러면 회사에서 부를 일 없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을 겁니다.
 
저는 여태껏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정치를 못하는 대통령도, 김일성도, 연쇄살인범일지라도 그렇게 살의를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느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말입니다. 이름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사측 대표로 나와서 스피커로 우리에게 비수를 꽂던, 그 뚱뚱하고 머리 허연 그 사람을 본 순간, 그래 나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등허리가 섬뜩해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습니다. 오늘은 경찰들도 우리를 막더군요. 25명이, 그것도 엄마들이 삼보일배를 하는 게 뭐 그리 위법한 일이라고 막습니까. 우리는 사방이 다 적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여섯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숨만 쉬고 있을 뿐 우린 죽어가고 있습니다. 악만 남고 깡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하루하루가 정말로 힘듭니다. 내일은 좀 좋은 소식 들어봤으면 합니다.
 
2009년 6월 17일 허은좌
 
6. 사랑하는 당신께  -노동자의 아내-

옥쇄파업 들어간 지 27일째. 쌍용자동차라는 단어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눈멀고 귀도 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옥쇄파업 들어가던 날, 미안해하던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죠? 당신 마음에 후회와 상처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오시라고. 당신의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보냈던 응원의 메시지였습니다.
당신이 처음 노조집행부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왜 말리지 않았을까 후회도 했고, 왜 당신은 남들처럼 편하고 쉬운 길로 가지 않고 힘든 길을 가느냐고 마음속으로 원망도 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두통약을 먹고 신경안정제를 먹고도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사측의 농간에, 정부의 농간에 행여 공권력이라도 투입될까,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그렇게 또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언제쯤 이 전쟁 같은 날들이 끝이 날까요? 우리에게 평화로운 일상이 올까요? 하지만 이제 당신의 아내는 더 이상 울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되어, 당신처럼 “함께 살자!” 외치며 싸우겠습니다.
당신, 정말 멋진 노동자예요.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봅니다. 이제 울지 않을게요. 울고 싶은 만큼 열심히 싸울게요. 당신이 그렇게 바라는, 아니 우리 모두가 바라는, 함께 살기 위해 싸울게요. 또 눈물이 나오려 해요.
 
2009년 6월 17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쌍용차 창원공장의 한 노동자의 부인이 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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