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한 건설노동자가 폐암으로 요양신청을 했으나 불승인됐고, 결국 행정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그는 비계공으로 약 16년간 여수산업단지에서 매년 3~7곳의 공장정비와 증설공사현장에서 근무했고, 그 중 3곳 가량의 공사현장에서 석면테이프 해체작업을 했다. 만약 작업현장에서 석면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더라도 그는 생존을 위해 죽음의 노동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동료 노동자들은 그와 같이 '소리 없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살기 위한 노동을 계속할 것이다.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은 석면제조업체 노동자가 아닌 건설노동자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클 것이다. 수많은 석면자재를 사용하는 건설현장에서, 여러 작업장을 옮겨 다니며 연속적으로 석면에 노출되면서 노동을 해야 하는 건설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2. 처분경위 및 판결요지

가. 건설노동자인 원고는 2006년 1월27일 조선대 병원에서 ‘폐암’으로 진단받고 장기간 동안 비계공으로 근무하면서 석면에 노출돼 발병한 것을 이유로 요양신청을 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 조사를 의뢰했고, 역학조사평가위원회 심의 결과는 위원 13명 중 6명이 업무상 재해 인정, 7명이 불인정 의견에 제출돼 ‘다수결’에 따라 2007년 5월30일 근로복지공단은 “석면노출량이 폐암을 유발할 정도였는지 확인할 수 없거나 이에 미치지 못하였을 것으로 판단, CT 사진 등에서 석면노출을 시사하는 소견(석면폐증·흉막판)도 없다”는 불인정 의견을 이유로 요양 불승인처분을 했다.

나. 이에 법원은 “원고는 16년간 비계공 및 비계조공으로 근무하면서 비계철거 작업시 비계 발판 위에 쌓인 용접포에서 나온 석면가루 등에 노출됐고, 배관해체 작업시 배관 여러 부분에 사용된 석면이나 석면 함유 제품에 직, 간접적으로 노출됐다. 원고가 주로 석유·정유·화학공장의 공사현장에 근무한 점에 비추어 보면, 폐암을 발생시키는 다른 물질(니켈·크롬 등)에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CT 사진 등에서 석면폐증 등의 소견이 보이지 않는 것, 조선대학교병원과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는 석면에 노출할 만한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견에 대해 “과거의 연구자료에는 석면에 의한 폐암 발생시 반드시 석면폐(섬유화)가 동반되는 것으로 됐으나,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석면폐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당한 석면 노출을 경험한 작업자에게 폐암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는 진료기록 감정결과를 받아 들여, 원고가 비계공으로 근무하면서 석면에 노출됐고 이로 인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거나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고 추단된다며 요양불승인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3. 대상판례 검토

가. 석면의 유해성 및 석면노출의 기준

석면(Asbertos)은 그 내구성과 내열성이 좋고 섬유로 되어 있어 실을 꼬고 천을 짤 수 있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바, 석면에 노출되는 주요 직종은 석면광산과 분쇄작업, 석면방열제의 제조 및 건물과 선박의 단열제 설치작업, 자동차의 제동기 및 클러치의 마찰제의 제조, 석면시멘트의 제조, 석면방직, 장식용, 방음용 및 방화용석면 함유 분무제의 사용 등이 있다고 한다1). 이렇듯 낡은 건물이나 선박을 해체·보수하는 노동자의 경우 석면 가루를 다량으로 흡입할 가능성이 많으며 일반인들도 일상 속에서 무방비로 석면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상판례에서도 1980년대 말까지는 석면에 대한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석유·화학공장의 설비(파이프·보일러·열교환기 등)에 석면이나 석면이 함유된 제품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1986년 무렵까지는 배관 단열재로 석면이 함유된 것으로 의심되는 실리카 커버 등이 사용됐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석면 분진을 장기간에 걸쳐 호흡기로 흡입하는 경우 석면폐(폐선유증)·폐암·악성중피종 등이 발생되게 된다. 석면은 잠복기간이 있어 석면폐는 10년에서 30년정도, 폐암이나 악성중피종은 18년에서 40년 정도 후에 증상이 발현된다고 한다.

한편 대상판례는 석면관련 질환에 대한 국제적 합의인 헬싱키 기준(Helsinki critera)을 적용하여 판단 근거로 삼았는 바, 이는 유럽국가는 25 fiber/cc-year의 노출이 있으면 석면노출에 의한 폐암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25 fiber/cc-year의 노출이 있는 경우 폐암의 위험이 2배증가한다고 보고돼 있다. 노출량 1 fiber/cc 이상의 노출은 석면함유제품을 생산하는 작업장의 노동자의 노출 수준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한다2). 재해자인 원고의 작업내용, 기간 등을 고려하여 석면에 대한 노출량을 독일의 누적노출량 산정방법을 적용하여 추산한 결과, 25 fiber/cc-year에 이른다고 적시했다.

나. 석면에 의한 질병의 인정 기준

산재법은 석면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근로자에게 ‘석면폐증’에 해당하는 증상 또는 소견이 나타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보며(산재법시행령 제34조 제3항 별표3. 제20호 가목), 석면폐증에 대하여는 근무경력만 있으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근로복지공단은 석면 노출 업무 경력은 인정했으나 석면폐증의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했다. 그러나 대상판례는 석면폐증 등의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 상병이 석면에 의하여 발병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즉 대상판결의 적시내용이 “업무상 재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기준에 부합된다 할 것이다.

또한 석면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근로자에게 원발성 폐암 또는 악성 중피종이 1)석면폐증과 동반한 경우 2) 늑막비후·초자성 비후·판상석회화·담액증·석면 소체 또는 석면섬유를 동반하거나 발견되는 경우 3) 1)과2)에 해당하지 않으나 석면에 10년 이상 노출된 경우(다만 노출기간이 10년 미만인 경우에도 흡연기간, 석면에 노출된 기간, 노출 후 발병까지의 기간 등을 고려하여 석면으로 인한 질병으로 인정되면 포함한다)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증상 또는 소견이 나타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보고 있다(동법시행령 제34조 제3항 별표3. 제20호 나목)

4. 나가며

끝으로 석면과 관련된 사건을 살펴보면 석면제품 제조업체 종사한 노동자들의 경우 석면으로 인한 폐암·악성중피종 등의 질환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보상급여신청을 해 승인된 사례가 있었고, 발암물질로 알려진 석면과 유리규산에 노출된 작업환경에서 장기간 근무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사례3), 지하철 노동자의 석면노출에 의한 폐암의 업무상 재해 인정 사례4), 석면제조회사에서 석면노출로 인한 사망 사건에 대하여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5) 등이 확인된다. 이러한 사례는 사후처리에 관한 문제이기는 하나, 석면의 직업병 인정은 물론 제조업체 및 사용업체, 나아가 이를 용인한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기준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464개의 발암물질 목록이 발표됐다. 유해물질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워, 그 동안 정부는 이들의 무지함을 이유로 죽음을 유도하거나 방치한 것과 다름없다. 또한 ‘석면피해구제법’이 지난 달 26일 국회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충남도 석면 피해주민의 피해보상길이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보상이 될 지 지켜봐야겠지만, 병들고 죽은 자에 대한 보상과 구제는 결국 산 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몫일게다.

[각주]
1) ‘산재보상 이론과 실무’ 제3권 업무상 부상ㆍ질병ㆍ장해, 350면 참조, 이호철 ‘석면(asbestos)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문제점’,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72호 (2006.10) 9·10월호
대상판결 서울행법 2010.2.17 선고 2007구단16502 판결
대법원 2005.11.10 선고 2005두8009 판결
대법원 2007.6.1 선고 2005두517 판결
대구지법 2007.12.4 선고 2005가단51553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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