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란 봉투  -권지영-

동네 엄마들이 정리해고 통보서를 들고 온 집배원의 방문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더라. 우리 집은 어떠냐고, 혹시 우리 집에도 왔냐고 물어보는 문자 말이야.
그날 아침 일찍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나 “오늘이면 정리해고 통보서가 도착한다. 우리는 살 길이 없다. 어떻게든 해결해 달라.” 요구하며 펑펑 울어버렸어. 살면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 텔레비전 뉴스가 아니면 볼 일도 없을 사람들을 만나 절망적인 대답만을 듣는 그 불편한 자리를 지키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왜 이래야 하는지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집에 있을 큰아이한테 “우리 집에도 등기우편 발송 안내문이 왔니?” 하고 물을 자신이 없더라. 여기저기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어린아이를 들쳐 업고 회사로 들어온 아내들. “당신의 남편은 해고 대상자이니 그런 줄 알라.”고 쓰여 있는 ‘노란 봉투’를 들고 펑펑 울음을 쏟는 아기엄마들. 함께 붙들고 울면서도 혹시나, 설마, 아마 그런 마음이 있었나 봐. 저녁 늦게 들어간 집. 문손잡이에 천연덕스럽게 붙어 있는 쌍용자동차가 당신에게 발송한 등기안내문을 떼는 기분이란…. 옆집, 그 옆집, 다른 집에는 없는 그 표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대문 앞에 커다랗게 그려진 X자 표시처럼 우리 집 문 앞에만 붙어 있는 스티커….
 
아이들이 옆에 있기에 울지는 않으려고, 담담하려고 크게 숨을 쉬고 다시 또 큰 숨을 쉬고 그랬어. 근데 세민이가 묻더라고.
“엄마, 대체 그게 붙어 있어야 좋은 거야, 없어야 좋은 거야?”
워낙에 눈치가 빠르고 철이 일찍 든 아이잖아.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아무렇지도 않아.”
그랬는데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엄마, 그냥 내가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러더라고.
 
그냥 조용조용 설명했어. 아빠 회사에서 이제 아빠보고 회사를 그만 나오라고 한다고. 그런데 그건 아빠가 나빠서도, 못나서도, 잘못해서도 아니라고.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아이가 그냥 펑펑 울어버리더라고.
울지 말아야지, 수도 없이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지더라.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설명해야 했을까? 당신과 나는 뭐든 감당하며 참아낼 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슴 아파해야 하는지…. 걱정 말라며, 아무렇지도 않다며,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 그저 아이들 상처받지 않도록 챙기라며,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 그냥 그래, 지금 우리의 이런 상황이, 이 모습이 정말 악몽 같은 우리 모습이 그저 지독한 꿈이기를 바라는 내 맘이….
 
당신이 짐을 싸서 옥쇄파업에 들어간 후 처음 했던 생각은 내가 정말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 지였어. 더는 억울한 희생이 없는 사회, 열심히 일한 만큼 누구나 고통 없이 행복한 세상, 차별과 차이를 이유로 억압받지 않는 그런 세상.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나 봐. 우리뿐 아니라 모든 아이의 부모들이 내 자식이 비록 최고가 아니어도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지금 공장을 점거하고 얼굴이 까맣게 햇볕에 그을리도록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너무 힘들고 너무 가슴 아파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세상을 위해 더욱 힘내자. 우리 사회가 이제는 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인원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안도 모색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하루 빨리 공장 안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싶어 안달이 난 당신과 같은 많은 남편들 모두가 건강하고 아무 탈 없기를 말이야. 그리고 꼭 이겨서 나와 아이들 앞에 더 멋진 남편으로, 더 자랑스러운 아빠로 당당하게 서주길 바랄게. 그런 멋진 당신 옆에서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으로 함께 서 있을게.
 
2009년 6월 8일 나에겐 언제나 최고였던 당신에게, 지영이가
 

4. 제발, 제발, 제발  -김민정-

심장이 쿵쾅거려 터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걱정할 것 없다는 남편의 말을 믿어야 하는데, 힘을 줘야 하는데, 제가 겁을 내고 있습니다. 무섭고 두렵습니다.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잔인한 일들이 우리의 일이 되어 눈앞에 벌어지려 합니다. 떨려서 죽을 것만 같습니다. 다칠까 봐 무섭고, 배신감에 상처 받을까 봐 두렵고, 오늘이 끝이 아닐까 봐 더더욱 겁이 납니다. 다 잘될 거라고 마음을 진정시켜 보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제 심장입니다.
 
밉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길이 아닐 땐 돌아서야죠. 정말 미워 죽겠습니다. 오늘의 이 치 떨리는 배신감이 당신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남편과 조합원 여러분, 절대 다치지 마세요!
이 역겨운 상황을 그들의 패배로 만들어주세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2009년 6월 16일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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