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 정부가 주도하는 가운데 공공기관들 12곳이 해당 노동조합들에 대해 단체협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최근 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의 배경도 공사측의 단체협약해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제 공공기관이 아닌 일반기업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사실상 사문화 돼 있던 단체협약의 해지제도가 최근 들어 사용자들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단체협약은 안정적인 노사관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노동조합들은 기업, 산업, 업종 등을 단위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용자인 기업이나 나아가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을 상대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나 그 밖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논의해 합의된 결과를 단체협약으로 체결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업별로 노동조합들이 구성돼 있고, 단체협약도 기업별로 체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기업별 노사관계의 안정적 유지에 상당한 기여를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노사 당사자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해 회사와 노동조합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노사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 단체협약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근로기준법 같은 법률로 국회나 정부가 노사관계의 기본적인 관계를 규율하려고 하더라도 법률이 갖는 특성상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칙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특정기업, 특정산업의 실질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기업 또는 산업의 현실에 맞는 단체협약과 같은 자율적 규율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또한 단체협약을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논의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 내용만을 담는다는 것이다. 기업 내 구성원 전원이 평등한 상황과 조건에서 토론과 논의를 통해 자신의 운영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의 실현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단체협약제도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를 산업사회 내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단체협약은 기업을 보다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노사관계에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단체협약은 복잡하고 다양한 산업환경을 살아가는 현대의 노동자들이나 기업주들에게 실질적으로 기업내에서의 근로조건을 결정하고 노사관계의 질서를 구축하는 유의미한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용자에 의한 단체협약 해지사태는 위와 같은 단체협약제도의 긍정적인 역할을 무로 돌리면서 사용자 일방이 주도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는 의도에서 벌어지는 것이어서 실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최근의 경향은 단체교섭제도나 단체협약제도가 가지고 있는 토론과 논의의 관행을 무시하고 힘의 논리로 노사관계를 평정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낳게 될 것이다. 어느 일방이 사회적으로 좀 더 우세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약속 같은 것은 그냥 파기하고 힘의 논리로 밀어붙여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태도를 방치하게 된다. 결국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노사자치, 산업민주화의 토대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단체협약의 일방적 수혜자는 노동조합이나 조합원들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을 개선하려 할 뿐 해지를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단체협약해지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선택이 되곤 한다. 사용자는 단체협약해지를 통해 노사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이를 통해 단체교섭에서 유리한 협약을 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체협약의 내용에는 조합비 일괄공제, 노동조합 전임자 보장,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과 같은 조합활동에 관한 편의제공의 내용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단체협약의 해지를 선언함으로써 노동조합활동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단체협약해지는 사용자의 교섭전략 수준을 넘어 노동조합 무력화 전략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이런 경우 노동조합은 실제 조합활동의 토대를 상실해 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전라남도 영암의 모 제지회사의 노동조합은 2008년 10월경부터 사용자와 단체협약의 갱신을 위해 수차례 교섭을 해 왔지만 사용자는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 수준을 더 낮추어야 한다며 더 낮은 조건의 교섭안을 제출했고, 이후 노사 간의 교섭은 공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면서 노사 간의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했고, 사용자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9년 6월12일 사용자는 노동조합에 대해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고, 2009년 12월20일 실제 단체협약의 모든 부분이 해지돼 버렸다. 이에 사용자는 노동조합 전임자를 전부 현장으로 복귀하라고 통보했고, 복귀하지 않는 전임자는 징계해고 될 처지에 놓여버렸다. 더군다나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지난 십수년간 사용해 오던 사무실을 폐쇄하겠다고 했고, 전력과 물을 끊고, 전화선과 인터넷선도 끊어버렸다. 사용자는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 단체협약이 해지됨으로써 더 이상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편의제공의 의무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뿐이었다. 이에 노동조합은 급박하게 법원에 「노동조합활동등방해금지가처분」을 제기했다. 가처분의 주요내용은 “사실상 관행적으로 보장되어 오던 노동조합의 사무실, 편의제공, 노조위원장의 차량출입을 막은 것은 정당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해 긴급하게 노동조합활동을 방해하지 말 것을 명령해 달라”는 것이었다.

법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노조사무실 제공을 포함하는 단체협약 전체가 해지된 지 6개월이 경과돼 소멸했다 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당연히 위와 같은 사용대차 목적물의 반환 사유인 사용수익의 종료 또는 사용수익에 족한 기간의 경과가 있다고 할 것은 아니어서 특히 그 반환을 허용할 특별한 사정(예컨대 기존 사무실의 면적이 과대해 다른 공간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든지 사용자가 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합리적인 사유가 생겼다는 등)이 있어야만 그 사무실의 명도를 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 피신청인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신청인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사실을 피신청인에게 반환해야 할 특별한 사정 즉, 위 사무실의 면적이 과대해 다른 공간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든지, 피신청인이 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합리적인 사유가 생겼다는 등의 사유를 소명하기에 부족하므로, 피신청인은 신청인 노동조합에게 위 노동조합 사무실을 계속하여 사용, 수익하게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노동조합의 사무실 등의 편의제공은 단체협약이 해지됨으로써 바로 반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성질상 노동조합활동이 계속되고 있고, 나아가 사용자가 반드시 노동조합 사무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은 그 즉시 사무실을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결국 노동조합활동과 사용자의 편의제공 사이에 있어 그 필요성을 인정해 단체협약의 해지만으로는 사용자가 반환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본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단체협약의 해지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노동조합과의 교섭상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의 의사로 행사될 수도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단체협약을 폐지함으로써 조합을 약체화시킬 의도 아래 이루어진 단체협약의 해지는 통상적으로 해약권의 권리를 남용한 것으로 무효이므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되고1),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약체화시킬 의도 아래 협약 종료를 핑계로 편의제공을 폐지한 경우 부당노동행위가 성립2)한다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같은 단체협약의 해지를 부당노동행위의 법리로 다스린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일반 조합원들에 대한 근로조건의 조정을 목적으로 교섭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협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사실상 노동조합의 약체화 혹은 무력화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라면 당연히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보아 해지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각주]
1) 사회복지법인 양기회사건(고베지방재판소 1996.5.31)
2) 톱(top)공업사건(니가타지방재판소, 199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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