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1.1 새벽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개정됐다. 개정 노조법에 따라 전임자급여 지급금지가 시행되고 교섭창구 단일화가 강제된다. 또다시 이 나라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행사는 법률에 의해 보다 더 금지되고 제한받게 됐다. 지난 53년 3월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이 제정된 이후 제·개정을 통해 계속해 노동기본권 행사는 금지되고 제한됐다. 그래서 지금 노조법은 더 이상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다. 노동법, 특히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은 한 나라의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며 그 투쟁의 결과이도 하다. 우리의 경우 노조법의 제·개정 역사는 자본의 승리와 노동의 패배를 그대로 보여 준다. 헌법에서 보장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은 노조법에서 그 행사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53년 3월 이후 노동기본권의 역사에서 총체적으로 패배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 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97년 3월 노조법 제정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노동은 패배했고, 그 뒤 2006년 이른바 '노사관계 선진화 입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시 2010년 1월1일에도 패배했다. ‘그래서’ 파업은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처벌된다. 파업 뒤에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노조는 사용자에게 구걸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억지와 생떼, 불법을 일삼는 망나니다. ‘그래서’ 단체협약은 엉망이다. 조합원의 고용 등 근로관계상의 권리를 확보하고 보장받아야 하지만 구조조정 등 고용이 문제될 때는 단체협약은 무용지물이다. 조합 활동은 단체협약으로 면책되지 않는다. 노조의 조직률이나 규모, 노조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지와는 관계없다. ‘그래서’ 노조가 있다고 해도 조합원들은 노조를 믿지 못한다. 조합원에 대한 고용·인사 등 모든 권한은 사용자가 휘두른다. 노조가 있어도 사업장의 권력은 사용자의 것일 뿐이다.

2. 패배했지만 이 나라에서 오늘 노동조합은 존재한다. 개정 노조법에서 노조 전임자급여 지급은 2010년 7월1일부터 금지된다. 이것을 사업장 단체협약을 통해 승인함으로써 패배를 기념할 것인가. 아니면 단체협약을 통해 패배를 극복할 것인가. 지금 노동조합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2010년 1월1일 이후 한국노총·민주노총 할 것 없이 산별연맹·산별노조에서 산하 조직에 개정 노조법과 관련한 단체교섭 요구안을 내려 보냈다. 이달 초 자문 노조에서 단체협약 교육을 진행하면서 ○○연맹에서 내린 요구안을 봤다. 연맹은 이 요구안으로 어떻게 개정 노조법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리고 지난주에 개정 노조법에 대응한 요구안 컨설팅 관련 상담을 하면서 ○○노조의 특별교섭 요구안을 봤다. ○○노조는 이 특별교섭 요구안이 관철된다고 해서 전임자급여 지급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 뒤 다른 ○○연맹의, ○○노총의 것을 봤고 역시 비슷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총연맹·연맹 등 상급단체는 모범단체협약안 등을 마련해 소속 노조에 내려 보냈다. 그래서 어느 사업장이나 단체협약은 천편일률적이다. 총칙으로부터 시작해 부칙으로 끝나는 100개 안팎의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노조가 설립되면 이를 참조해 교섭을 요구하고 그렇게 단체협약이 체결된다. ‘그래서’ 단체협약은 엉망이다. 단체협약에 의해 조합원의 고용 등 권리가 제대로 확보돼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조합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노조가 있어도 조합원이 여전히 사용자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면 그것은 모범단체협약안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모범단체협약안은 전체 사업장에 대해 일반적인 사항에 관한 일반화된 요구로 정리돼 있다. 사업장 내 조합원의 구체적인 권리의 확보와 보호에 관한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마저도 사용자의 행위를 규제해 통제하기에는 법적으로 미흡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업장에서 조합원에 불이익을 주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행위는 사용자의 권한으로 방치됐다. 사용자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 됐다. 이상은 필자가 변호사로 처음 노조에 들어가 법률원을 만들어 법률원장으로 10년을 노조 법률사업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서 진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왜 당시에는 하지 못했냐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필자가 져야 할 몫이다. 어쨌든 모범단체협약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총연맹·연맹·산별노조는 개정 노조법 시행에 대비한 요구안을 사업장 노조 조직에 내려 보냈다. 요구안은 이렇다. “2010년 6년30일까지 전임자급여 지급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사는 기존의 전임자 지위와 처우가 개정 노조법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보장한다.” 개정된 노조법에서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규정은 이에 반하는 단체협약조항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 강행규정이다. 따라서 개정 노조법에도 불구하고 기존 전임자의 처우는 그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노조와 사용자 사이에 체결하는 단체협약에서 “개정 노조법에도 불구하고”라고 강조해도 법원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 법을 넘어서기 위해 “불구하고”를 붙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그대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요구안에서 “2010.6.30까지 전임자급여 지급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라”고 했다. 개정 노조법의 시행을 둘러싸고 과연 2010.1.1 이전에 체결된 단체협약에 한해 그 유효기간까지 전임자급여 지급에 관한 조항의 효력이 인정될 것인가, 아니면 2010.6.30까지 체결한 단체협약까지는 효력이 인정될 것인가 논란이 되고 있다. 위 요구안은 당연히 2010.6.30까지 체결하면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

그런데 법원에서 그렇게 해석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특별교섭까지 요구하고, 심지어 다른 협약부분까지 양보하면서 위 요구안대로 체결했는데 법원이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는 판사가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주장은 할 수 있지만, 판단은 노조가 하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은 노조간부를 믿지만 노조는 판사를 믿을 수 없다. 그럼에도 위 요구안은 판사를 믿고 있다. 전임자 문제는 노조가 새롭게 무엇을 더 쟁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노조가 어떻게 해야 잃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래서 올림픽경기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선수가 아닌, 단두대에 올라선 사형수의 처지에서 노동조합은 개정 노조법에 대응해야 한다.

3. 설사 판사가 2010.6.30까지 체결된 전임자급여 지급에 관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해 준다고 해도 노조는 여전히 단두대에서 내려올 수 없다. 단지 사형집행이 유예될 뿐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단두대에서 내려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을 요구안으로 제출하고 쟁취해야 한다. 그런데 요구안은 기존 단체협약 요구안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존의 요구안은 조합원의 권리와 조합활동 보장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이 엉성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나 개정 노조법에 관한 요구안은 다르다.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은 기존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노조는 자주적인 노조로서 존립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조합원은 노조를 믿지 않는다.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으로 자신의 고용 등 근로관계상의 권리가 확보되고 보장될 것이라고 믿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노조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개정법 시행을 앞두고 노조가 걱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구안은 노조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해 법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내용이 돼야 한다. 그래야 노조는 단두대에서 내려올 수 있다. 지금까지 단체협약은 법적으로 볼 때 미흡했고, 조합원의 고용 등 권리의 확보와 보호, 그리고 조합활동 보장에서 제대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그래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은 전임자와 개정 노조법에 관해 연구능력을 갖춘 법률전문가를 통해 요구안을 마련하고 이것을 가지고 사용자와 교섭해서 쟁취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안을 노조간부들이 만들어 왔다고 해도 이번에는 다르다. 단체협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보장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단체협약이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단체협약을 아무리 체결해 봐야 소용없는 것이고 결국 노조가 힘이 있어야 보장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자가 있다면 그 단체협약을 가지고 와 보라. 당신의 단체협약이 ‘체결해 봐야 소용 없는 것’으로 체결됐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물론 노조가 힘이 있다면 협약에서 보장되지 않는 것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당신의 노조가 힘이 있어서 개정 노조법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 등 사용자와의 합의 없이도 기존과 동일하게 전임자급여 지급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나는 당신과 당신의 노조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나는 당신에게 물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계속해 당신과 당신의 노조가 힘으로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그 힘은 단체협약에서 아무런 보장이 없어도 확보되는 것인가.
 
이에 대해 당신이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는 필자의 말을 따를 것을 권한다. 전임자와 단체협약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법률전문가를 통해 요구안을 준비하고 교섭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하라. 다행히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개정 노조법은 그 법 자체가 미비하기 때문에 시행상이나 해석상에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노조가 제대로 준비하고 교섭해 협약을 체결한다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고, 기존의 조합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단두대 위에 엎어져 있으면서도 출발신호를 기다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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