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쌍용자동차 조립 3팀에 근무하는 이창근의 아내 이자영입니다. 우리 집 네 살짜리 주강이는 자동차를 무지 많이 좋아합니다. 자동차를 만지고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키 꽂고, 파킹브레이크 내리고, 시동 걸면 부릉부릉. 오른쪽 깜빡이가 깜빡깜빡, 비상등도 깜빡깜빡…. 후진할 때는 빠라빠라빠바바바밤―.”(‘엘리제를 위하여’입니다.) 웬만한 국내산 자동차 회사와 모델명은 꿰고 있고요, 그중에서도 최고로 좋아하는 차는 쌍용자동차입니다. 이제 주강이도 쌍용차가 어려워진 걸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입사한 지 8년차입니다. 첫 여름휴가 때 쌍용 여름 휴양지에 갔는데, 주차장을 가득 메운 쌍용차들을 보며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쌍용차들이 죄다 크고 비싼데, 입사하자마자 분수도 모르고 ‘무쏘’를 샀던 것이 후회도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젠 생산도 되지 않는 무쏘를 몰고 다니는 저이지만, 아직도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부담스럽고 어색하긴 매한가지입니다. 저희 가족은 결혼 전에 진 빚이 많아 아직까지 만 원 한 장 저축 못하고 빠듯하게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당하게 돈을 벌 생각도, 그렇게 한 적도 없습니다. 정당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일 뿐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정이 순식간에 돌변해 버렸습니다.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남편이 아닌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하루 종일 멍하고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주인인 상하이차는 밀린 12월 월급을 선심 쓰듯이 얼른 입금시켜 놓고 튀었습니다. 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주인이 사전설명 하나 없이 도망칠 수 있는, 이 나라 법이 우스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법정 관리인이 마련한 회생안을 발표하는 것도 언론을 통해 들었습니다. 남편 말을 들어보니, 그놈의 회생안도 노동조합에 공문 한 장 틱 날려놓곤 얼굴 한번 마주한 적이 없다고 하네요. 회사 살리겠다고 내놓은 회생안이라는 것이 저희들에게는 ‘사형 통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명당 한 명이 정리해고 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우리 생산직에서는 전체의 46%인 두 명당 한 명이 잘려나가도록 짜놓았대요. 연구직은 전체의 5%, 사무직은 20%…. 제일 월급 많이 받는 임원들이며 이사들은 그냥 두고, 제일 값싼 생산직을 자른답니다. 높으신 양반들 건드리긴 어려우니, 만만한 생산직들 왕창 잘라 액수 맞추겠다는 건가요? 도대체 누구를 살리기 위한 회생안이란 말입니까?

회생안이 발표된 뒤 2주쯤 지났나요. 회사에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고통을 감수하자고 하더군요. 허…. 단지 그 말뿐이었습니다. 정말 이 말뿐인가 믿기 어려워 꼼꼼히 읽어보았지만, 자기네들이 잘못했고 고통을 안겨주어 미안하다는 소리는 단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정말 단 한 마디도….
 
저, 딱히 성격 좋다, 마음씨 착하다는 소리 못 듣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냥 남 피해 안 주고, 무쏘 산 것처럼 분수에 넘치는 일 따위 범하지 말고 살자, 정도로 욕심 안 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무 가만히 있었나요? 묵묵히 살고 있자니 이렇게 무시하고 마구 짓밟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자본가들은 우리 노동자 가족들을 소리도 못 내고 꿈틀거리기만 하는 지렁이쯤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작년 봄이었습니다. 남편 친구가 창원에 있는 두산중공업 현장에서 지게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런 변을 당하고 만 겁니다. 우리 남편, 소식 들은 그날로 창원으로 달려가, 4박 5일간 장례투쟁하고 왔습니다.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간 일 마치고 아침에 돌아오면 겨우 3시간 눈 붙이고, 벌건 대낮에 일어나 집회에 나갔습니다. 쌍용차 집회만 아니라 평택, 안성, 수원, 서울 등 한나절에 다녀올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투쟁에 한 몸 보태러 간 겁니다. 작년 가을, 급기야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외박을 해야겠다는 남편의 문자 메시지에는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있다면서 서럽게 울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 우리 남편, 이런 사람입니다. 덕분에 제가 그냥 막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정리해고 규모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여기 계신 조합원 여러분들 대부분이 “나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이 싸움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으셨던 걸로 압니다. 지금도 혹여 정리해고 당할 두 명 중 한 명이 나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시는지요. 2주 전 이 자리에서 금속노조 동지들이 많이 연대투쟁 하러 와주셨는데요, 그날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님의 말씀이 귀에 꽂혔습니다. 쌍용차 조합원 동지들의 눈빛을 보니 이 싸움 지겠다고, 눈빛이 글렀다고 하셨습니다. 죽을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가차 없이 지고 말 거라고 하셨습니다. 구호를 외칠 때마다 끝에 ‘결사투쟁’이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기 계신 여러분, 온 힘을 다해, 온 역량을 다해 싸움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계십니까? 지금은 둘 중 한 명인 나만 살아남으면 다행인 싸움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정리해고 자체를 진짜로 박살내서 우리 모두가 살아남는 싸움을 하자는 겁니다. 어젯밤 실직한 가장의 가족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차마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면 결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아서 예전처럼 일하고 월급 받고 가정을 지켜내야 합니다.
 
이 싸움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전처럼 공장에 출근하겠지만, 아마도 그 속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내가 싸움이 한창인 그때 그 자리를 지키면서 동지 손 붙잡고 싸웠고, 그래서 정리해고를 막아냈고,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 없이 우리 모두를 지켜냈다는 엄청난 자부심과 연대의식이 남을 겁니다. 지금 당장 내 입에 풀칠할 생각만으로는 지금의 나도 지킬 수 없을 뿐더러,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 쌍용차 조합원 동지들이 우리 모두의 가족을 지켜줄 거라는 것을요. 그리고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그을린 동지들의 얼굴이 더 그을려지고, 몸 여기저기 상처는 났어도, 다 같이 부둥켜안고 희망을 지켜낸 것을 축하할 그날이 올 것을요.
<계속 이어짐>

2. 굴뚝에 계신 우리 아빠와 아저씨들에게

아빠, 오늘은 무진장 더웠어요.
아빠와 아저씨들은 괜찮으세요?
아빠가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같이 축구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아저씨들, 우리 아빠가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쌍용 사장님, 우리 아빠와 아저씨들이 빨리 일을 하게 해주세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매일 아빠와 아저씨들을 위해 기도할게요.
아빠와 아저씨들이 굴뚝 위에 올라간 모습을 보고 용감하다고 생각했어요.
건강하세요. 꼭 이기세요!
아빠, 사랑해요!
- 시현이가 -
 
아빠, 보고 싶어요.
토요일에 아빠 보러 갔는데, 너무 멀리 있어 볼 수가 없어 속상했어요.
아빠와 아저씨들을 위해 기도할게요.
하루 빨리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도록….
이렇게 만든 쌍용차 사장님과 이명박 대통령이 밉습니다.
왜 이리 우리 아빠와 아저씨들을 힘들게 하는지요?
그리고 왜 우리 아빠가 일하는 곳을 없애려고 하는지….
아빠, 언제쯤 올 거예요?
그날이 빨리 오길 늘 기도할게요.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아저씨들, 모두 힘내세요!
 - 예진이가 -
 
언제부터인가 우리 아들이 동요가 아닌 투쟁가를 부르고 있답니다.
엄마인 저보다 더 많은 가사를 외워 부르곤 한답니다.
아빠를 위해 부른다며….
토요일이 되면 아빠를 만나러 가느냐고, 아빠는 힘들겠다며 걱정이 많답니다.
빨리 이겨서 가정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자식들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이 투쟁을 위해 싸우는 조합원 여러분, 오늘 하루도 승리하세요.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 2009년 5월 25일 시현, 예진 엄마 서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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