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이가 탄 유치원차가 떠났다. 마트로 향하던 정민은 현구가 있는 공장께를 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는 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뭉실거렸다. 공장 상공에 떠돌던 두 대의 경찰 헬기 역시 바쁘게 떠다녔다. 경찰병력도 삼천 명이 넘게 동원돼 문이란 문은 모조리 봉쇄한 채 공장을 포위하고 있다고 했다. 간다 해도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 공장 밖 시위나 막고 집회를 해산하던 경찰이 직접 공장 안으로 투입된다는 날이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 근방을 한 번 더 돌아본 정민은 마트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은 이미 나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평상시처럼 앞치마를 걸친 정민은 청소도구함이 있는 화장실로 갔다. 바짝 마른 마대 걸레에 물을 적신 후 물기를 짰다. 이제는 굳이 긴장을 하고 할 일들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아도 몸이 먼저 해야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바닥 걸레질을 마친 정민은 전날 팔다 남은 쪽파를 다듬으려고 야채 매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뿌리부터 칼로 도려냈다. 마트 밖 계단과 바닥을 물청소 하던 팀장이 다급하게 손짓하며 정민을 불렀다.

“저것 좀 봐.”
밖으로 나온 정민은 팀장의 손끝을 따라 공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늘을 향해 치솟던 시커먼 연기는 훨씬 더 많아져 있었고, 공장 위를 선회하던 헬기도 한 대 더 증가 되어 있었다. 가슴이 후둘둘 떨렸다.
“이렇게 그냥 일만 하고 있어도 되는 거야? 뭔 일 날까봐 내가 불안해죽겠네. 뉴스에서도 계속 저 얘기뿐이고. 안 가봐도 되겠어? 내가 사장님한테 얘기해줄까?”
“비행기가 한 대 더 늘었네요. 온통 다 막아놓았다는데 제가 간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어야죠.”

정민이 대답했다.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이구나. 경찰이 투입된다는데 어떻게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느냐마는. 짐승 같은 놈들. 식료품이며 약품까지 못 들여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단수까지 시켜놓고 저 난리니. 그러고 보니 단수를 시킨 게 벌써 며칠째야, 이십 일 됐나?”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민은 매장으로 들어왔다. 펼쳐놓았던 쪽파 앞에 앉아 시들거리는 잎을 뜯어냈다. 하늘 위로 솟구치는 시커먼 연기 자락은 매장 안에서도 환히 보였다. 지하가 아니고 창문이 없는 곳이 아니라면 이 지역 어느 곳에선들 보이지 않으랴. 팀장의 말처럼 정말 무슨 일인가가 터질 것만 같아 다시금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 사이 노동자들은 벌써 두 명이나 운명을 달리했다. 한 명은 희망퇴직을 하고 나서 강원도 수목원에서 목을 맸고, 또 한 명은 희망퇴직 후 승용차 안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했다. 보름 간격으로 연이어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형국이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서나마 잠시 대면할 수 있었던 현구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도 어느새 보름이 지나 있었다.

현구에게 문자를 보내던 정민은 한숨을 길게 내리쉬며 전화기 뚜껑을 닫았다. 전화기를 아예 꺼놓았으니 문자를 보낸다 해도 당장은 볼 수 없을 터였다.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모든 걸 운명에 맡기고 초연해지리라 다짐하면서도 눈은 검은 연기가 끊이지 않고 올라가는 공장 쪽으로만 향했다.
 
공장 안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알린다. 불법 행위를 멈추고 지금 나온다면 최대한 선처하겠다. 새총으로 볼트를 쏘거나 화염병을 던지지 마라. 쇠파이프도 휘두르지 마라.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 경찰이 농성 노동자들을 향해 선무방송을 했다. 불법? 법 좋아하시네. 합법적으로 파업하는 게 왜 문제란 말이냐. 그럼 노동자가 공장에서 파업을 하지 정부청사에 가서 파업을 하리? 너희 놈들이나 일방적으로 회사 편들면서 불법 저지르지 마라. 현구 옆에 있던 민영식이 중얼거렸다. 정문 근방에서는 타이어의 불을 끈 경찰들이 방석망을 앞세운 채 조금씩 밀려왔고, 건물 위 농성자들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볼트를 쏘아대고 있었다.

제 국민을 상대로 정부가 기어코 전쟁 놀음을 하겠다는 것인가?
현구는 먼지를 일으키며 낮게 나는 헬기를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경찰과의 대격돌이 일어난다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용산 철거민들이 남일당 빌딩에 지었던 망루 속처럼 불길만 닿으면 폭발할 수 있는 곳이 지금 자신이 서있는 도장공장 건물이기 때문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내 죽음이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이 천박한 사회의 흐름을 끊어낼 수 있다면 괜찮은 일 아닌가? 마음을 다잡던 현구는 또다시 아내 정민이 생각나고 두 아들 한벗이와 한솔이가 생각났다. 외로웠다. 그들에게 설기원이 그랬던 것처럼 인사도 못 하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코가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경찰이나 회사의 선무방송이 아니어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맘 간절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 달 반이 넘게 고락을 함께 해온 동료들을 두고 어찌 떠난단 말인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정민의 목소리를 들으면 경찰에 맞서 싸우다 말고 마음이 약해질까 봐 전화기마저 껐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야 사랑한다. 김정민 내가 혹시 떠난다 해도 날 잊지말아줘. 한벗아, 한솔아 사랑한다. 너희들도 아빠가 떠난다 해도 기억해다오. 좀 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미안한 점이 너무 많다. 그래도 이런 내 마음 오래도록 알아줄 사람은 당신이랑 아이들뿐이겠지? 고립이 되면 될수록 자기랑 아이들 생각뿐이다.

헬기가 바람을 세차게 일으키며 건물 위로 다가왔다. 경찰이라고 쓴 글씨가 점점 뚜렷해졌다. 멍청히 앉아 불안한 생각을 거듭하던 현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며 정문 근처를 내려다보았다. 도장공장 건물을 향해 진전하는 경찰은 이미 운동장의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뒤에는 사측 관리자들이 여유 있게 따랐다.
“이리 줘봐. 잠깐 쉬어.”

동료가 쏘던 새총을 뺏아 든 현구는 볼트를 찾았다. 경찰을 향해 조준하고 힘껏 당겼다. 동시에 회사 측에서 쏜 볼트가 소리를 요란히 내며 발밑에 와 떨어졌다. 야 이 새끼들아. 회사에서 쏘는 새총은 되고 노동자가 쏘는 새총은 안 되냐? 현구는 전경들의 새까만 헬멧을 내려다보며 욕을 퍼붓고는 두 번째 볼트를 겨냥했다.
정민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난 오후. 도장공장 쪽에서는 검은 연기가 여전했다. 파업노동자들이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하는 행위이니 아직 농성자들에게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저러다 정말 갑자기 펑 소리가 나면 어떻게 하지? 그리고 불길이라도 치솟으면?
마트 앞에 나와 초조히 섰던 정민은 손전화를 꺼내들었다. 남편을 아예 만날 수 없게 되자 아르바이트까지 때려치우고 공장 앞에서 살다시피 하는 경희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렇잖아도 내가 언니한테 전활 하려던 참이야.”
경희가 울먹이며 전화를 받았다.
“왜? 무슨 일 생겼니?”
정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경희가 울음을 섞어가며 말을 이었다.
“전에 왜 언니가 아저씨 보러왔다가 가족대책위원회 천막에 들렀었잖아.”
“그래.”
“그때 노조간부라면서 왔던 남자 생각나?”
“그럼 생각나지. 세상에, 그럼 그 분이 또 돌아가셨다니?”
정민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을 급히 해놓고는 아차 싶어 입을 막았다. 여자들이 돌아가며 질문을 퍼부어대니 얼굴이 빨개지던 모습이며 일일이 대답을 하던 겸손한 모습이 눈앞을 선연히 스쳐갔다.

“아니 그 노조간부 말고. 그 분 부인이 목을 맸는데 좀 전에 돌아가셨대.”
“뭐? 부, 부인이?”
정민은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꿈에서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가족대책위원회 천막으로 그녀의 남편이 들고 온 붉은 장미송이들만 눈앞 가득 커다랄 뿐이었다.
“언니 얼른 와. 무조건 와. 아침부터 회사 안팎이 전쟁을 벌이는 것 같은 상황인데 어떤 부인이 맘 편했겠어? 당장 내 남편이 저 안에서 죽을지 모르는데 어떤 여자 맘이 제 마음이었겠느냐고. 이럴 순 없어. 언니 이건 아니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일단 빨리 좀 와. 경찰하고의 싸움은 지금 소강상태인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 우리 남편은 걱정 말라고 하는데. 어쩌냐? 아, 언니 어쩌냐. 애들이 이제 겨우 4살짜리 하고 8개월 된 젖먹이가 있다는데 이걸 대체 어떡해야 하냐?”
말을 하던 경희가 도로 울먹였다. 경희의 말을 듣던 정민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경희야. 갈게. 내가 당장 택시 타고 갈게. 이젠 다 죽이려는 모양이다. 현장 노동자들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가족들까지 전부 죽이려는가 보다.”
정민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었다.
“왜 그러세요? 쌍용에 기어코 뭔 일이 났대요?”
어느새 옆에 와 서서 이야기를 듣던 사장이 근심스런 얼굴로 물었다.
“네, 공장은 아직 괜찮은 거 같은데. 농성하는 노조간부 부인이 자살을 했대요. 사장님 저 좀 다녀올게요.”
정민이 또다시 솟아오른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어허 참. 이거 참.”
사장은 대답 대신 혀만 찼고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춰 서서 이야기를 듣던 손님 하나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끼어들었다.
“참 걱정이네요. 이러다 제2의 용산참사 난다고 모두들 이만저만 걱정이 아닌데. 얼른 가보셔야겠네요.”
“가봐야지요. 그러게 적당히들 하지, 적당히. 오늘 아침엔 도장공장에 단전까지 시켰다던데. 허 참 이거 참. 도시 하나가 몽땅 상갓집이 되게 생겼으니. 팀장님, 김정민 아주머니 택시 좀 태워드려요!”

사장이 멀찌감치 서서 세 사람을 흘낏거리는 팀장을 불렀다. 팀장이 얼른 다가와 정민의 어깨를 감쌌다. 용산참사라는 말을 들은 까닭일까. 정민의 귀에는 도장공장 쪽에서 펑!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고 눈에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용산의 상복 입은 부인들 모습이 줄줄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일어서 마트를 나서는 몸이 저 혼자 비틀거렸다.
공장 앞 공터에는 경찰력 투입으로 아들이 다치거나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된 노인들과, 남편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는 여자들이 곳곳에 서서 공장 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전할 수 있을까 싶어 가져온 얼음물은 뜨거운 볕 아래 미적지근해졌고, 행여 먹일 수 있을까 싶어 싸온 밥은 뜨거운 날의 열기 속에 빠르게 쉬어갔다.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는 삼거리를 피해 정문 앞 공터에 닿은 정민은 가족대책위원회 천막으로 갔다. 전에 보았을 때보다 한층 마르고 볕에 탄 농성자 아내들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그녀들 속에서 연두색 옷을 입고 있지 않아 눈에 바로 띈 여자를 발견한 정민은 반가운 눈빛을 하고 다가가 손을 잡았다.
“순애야! 순애야 탈상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왔어?”
“언니 고생이 많네. 애 아빠 때도 여기 분들이 많이 오시고, 또 부인이 돌아가셨다니 남의 일 같지도 않고 그래서. 오면 내 마음이라도 좀 편할 것 같아서. 그래서 왔어요.”
“그래 잘 왔다.”
정민이 설기원의 아내 순애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이내 순애도 정민도 눈물을 떨구었다.
“애들은 잘 있지?”
정민이 눈물이 떨어진 순애의 손등을 문지르며 물었다.

“응. 참 경희는 화장실 간다고 나갔어요. 금방 올 거야. 뭣도 모르고 좀 전에 김승철씨네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영숙이는 미안하다고 못 온다고 그러더라고. 당분간은 전화도 하지 말라던데. 경희한테 들으니 김승철씨가 회사측에 서서 데모도 하고 그랬다면서요?”
“음, 일이 어떻게 그렇게 됐어.”
순애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정민은 남편 현구가 문득 떠올랐다. 다시 손전화를 꺼냈다. 문자를 빠르게 썼다.

자기야 나 오늘부터 가족대책위원회 활동할 거야. 말려도 소용없어. 애들은 잘 챙길 테니 걱정마. 그깟 돈 몇 푼 번다고 가만히 앉아서 걱정만 하다가는 말라죽을 것 같아. 더 이상은 남편들이 죽는 것도 볼 수 없고 아내들이 죽는 것도 두고 볼 수 없어. 따지고 싶은 거 있으면 싸움 다 끝난 후에 따져. 사랑해. 알지? 참, 여기 설기원 처도 왔어. 민영식 처도 있고.

기자들이 가족대책위원회 천막 옆으로 몰려왔다. 가족대책위원회 사람들과 시민단체 사람들이 모여 노조간부 오정훈씨 부인의 죽음에 대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불안한 얼굴로 하염없이 공장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가족대책위원회 천막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후부터 노조에서는 ‘민들레꽃처럼’이라는 노래를 내보내고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불법집회이니 당장 해산하라는 경찰의 경고방송이 울렸다. 회사 측에서는 노래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오 필승 코리아~헤이 오 필승 코리아~헤이 오 필승 코리아~헤이 오오오오오 오레오레오레 오 필승 코리아~헤이 오 필승 코리아~헤이 오 필승 코리아~헤이 오오오오오 오레오레오레. 확성기를 통해 울리는 경쾌하고 흥겨운 노래가 공장 근방을 집어삼킬 듯 쩌렁거렸다.

기자회견이 중단됐다. 가족대책위원회 대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농성자 아내와 가족들을 향해 외쳤다.
“가족 여러분, 아내 여러분! 모두 팔짱을 끼고 정문 앞으로 갑시다. 항의합시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15년 넘게 이 회사에서 일한 노동자의 아내가 돌아가셨는데 저들이 인간이라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기자회견하는 자리에 둘러섰던 아내들이 순식간에 서로의 팔짱을 꼈다. 아들을 보려고 왔던 노인들과 남편을 보려고 왔던 아내들이 이들의 옆으로 늘어섰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정부는 공권력 투입 말고 공적자금 투입하라!
누군가의 선창에 여자들의 목소리가 윤도현의 노래를 압도하며 울려 퍼졌다. 대열을 본 회사측 관리직원들이 하나둘 방송차량 옆에서 일어났다. 전투경찰 또한 지휘관의 지휘를 받으며 방패와 곤봉을 집어 들었다. 가족들을 향해 전투대형의 대오를 갖췄다.
고막을 찢는 오 필승 코리아에 부들부들 떨던 정민은 앞으로 나갔다. 맨 앞에 선 임산부,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두렵지 않았다. 경희와 순애가 어느새 정민의 옆으로 달려와 팔짱을 꼈다.
 
상집간부 아내의 죽음에 침울해 있던 현구는 정민이 걱정되었다. 꺼두었던 전화기를 켰다. 이미 정민에게서 여러 통의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마지막에 온 문자를 막 확인하고 났을 때 정문께에서는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세차게 울렸다.
현구는 전화기 뚜껑도 닫지 않은 채 도장공장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연두색 옷을 입고 팔짱을 낀 여자들이 주위에 노인들과 여자들을 끌고 도로를 향해 나오고 있었다. 맨 앞줄 중간에는 연두색 옷을 입지 않은 두 여자도 끼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그토록 보고 싶던 아내 정민이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현구는 자신이 그러했듯 정민이 언제쯤 열어볼지 알 수 없는 문자를 급히 써내려갔다.
그래 나도 자기를 사랑한다.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내가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줄은 여기 와서 알았다. 서럽고도 서럽구나. 그러나 나 여기에 굳건히 서 있다. 다치지만 마라. 나의 아내 정민아.<계속 이어짐>

홍새라 
1965년 강원도 횡성 출생. 1996년『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민들레꽃 사랑』, 장편소설
『새터 사람들』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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