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은 정문 옆 가까이에 붙은 쪽문 근방으로 갔다. 초소까지 높고 둥글게 이어져 있는 철조망 앞에 섰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기야 나 도착했어. 어서 나와.
그래 금방 갈게.
현구가 답신을 보내왔다.
아직 저녁 전이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자장면.

정민은 미소를 지으며 정문 맞은편에 있는 중국집 황제에 전화를 걸었다. 자장면과 짬뽕 한 그릇씩을 시켰다. 모두가 같은 심정인 걸까. 농성자를 만나러 온 가족들은 너나없이 마주 앉아 무언가를 먹었는데 그 중에는 자장면과 짬뽕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삼팔선에서 헤어진 가족을 만나듯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정민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투경찰들이 한쪽에 열을 지어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측 관리자들과 비해고자들이 가족대책위원회 사람들과 부딪히던 날보다 더 많은 수가 배치돼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가족대책위원회의 대표가 청와대까지 가서 항의 서신을 전달한 후로는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공장 앞에서 촛불집회라도 있을라치면 곧바로 집회 인원의 서너 배가 넘는 경찰을 동원해 강제 해산시켰고, 농성노동자들의 가족은 물론 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사람들마저 외부인이라며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까닭으로 인해 공장 앞은 며칠에 한 번씩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공장 안 정문 옆에 있던 가족대책위원회 천막도 그 와중에 부수어져서 공터에다 다시 세웠다. 한편, 회사 측에서 고용한 용역들은 노동자들이 기거하는 공장 안으로 식품과 비상약이 반입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공장 안으로 통하는 인터넷 선도 끊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검은색 옷과 모자를 쓰고 문마다 서 있는 용역들, 길을 장악하고 앉은 전투경찰들의 모습이 위압적이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올 엄두는 낼 수조차 없었다.

“잘 지냈어?”
현구의 목소리가 났다. 정민이 돌아섰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아, 며칠 만에 마누라 얼굴 본다고 급히 이빨 닦고 수염 깎느라 그랬지.”
“그냥 오지 뭘. 뽀뽀할 것도 아닌데.”
정민이 깔끔해진 현구의 얼굴을 살피며 히죽이 웃었다.
“혹시 알아? 완전히 어두워지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한 수 더 뜨는 현구에게 그럼 오죽이나 좋겠냐고 대답한 정민은 자장면 그릇을 넘겼다. 현구가 이내 감동한 얼굴로 그릇을 받아 랩을 벗겼다.
“우리 조에 있는 놈이 마누라가 자장면 사줬다고 자랑을 하는데 어찌나 먹고 싶던지. 크 맛있겠다.”
자장면이 다 비벼지기도 전에 한 젓가락 집어든 현구가 입속 가득 면을 넣었다. 정민도 짬뽕 그릇의 랩을 벗겼다.

“애들 보고 싶지?”
“당연하지. 그래도 안 데려오길 잘했지 뭐. 이런 꼴 보면 상처 입을지도 모르는데. 한벗은 아직도 애들이랑 산 자와 죽은 자 놀이한대?”
“애들이 그렇지 뭐.”
대충 대답을 한 정민은 며칠 전 마트에 찾아와 울고불고 하던 한벗이의 모습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급식비를 지원해준다면서 아빠가 쌍용차에서 해고된 애들은 손을 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젠 우리 반 애들이 다 알아버렸단 말이야. 아빠가 죽은 자라는 걸 몽땅 알게 됐단 말이야. 엄마가 책임져. 어떡해! 책임지란 말이야, 마트가 떠나가라 소리치면서 난리를 쳤었다.
“자기야 근데 우리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 꼭 데이트 하는 거 같지 않아?”
현구가 네 젓가락 만에 비운 자장면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경찰들 깔려 있고 용역들 서 있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
한벗이의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정민이 퉁바리를 주듯 했다.
“적당히 긴장감도 있고 좋구만 뭘 그래. 긴장! 자고로 그게 중요한 거라니까. 또 하나는 유머. 적당한 유머!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 상황이니까 쟤네들을 그냥 개인 경호원이라고 생각해. 기분이 아주 180도로 달라진다니까. 긴장과 유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풍요롭고 우아하게 견디게 한다, 내가 요새 안에서 읽는 책 구절 중 하나다.”
“불안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현구를 뻔히 쳐다보던 정민이 걱정스레 물었다.
“약간.”

대답을 하던 현구는 화장실 풍경이 느닷없이 떠올라 구토증이 일었다. 금방 먹은 자장면 면발이 식도를 타고 거꾸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 단수가 된 화장실 변기마다 차고 넘치다 못해 볼록볼록 치솟아 있던 대변의 모습과 흡사했다. 소화전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던 물줄기를 생각하며 침을 삼켰다. 구토증은 가라앉았으나 자장면과 함께 먹은 양파 냄새가 쇳내처럼 진하게 목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소화전의 물을 끌어다 쓸 생각을 못했던 하루 동안은 배설하는 것, 숨 쉬는 것 자체가 어려워 생지옥이었다. 물을 아껴야 했으므로 밥할 때 나오는 수증기와 에어컨의 물을 받아 끓여 먹었다. 끊여도 쇳내가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먹을 수 있으니 양파 냄새처럼 참을 만은 했다.

잠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현구가 얼굴을 폈다.
“당연하지 뭐.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데다 점점 고립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잘 견뎌서 이겨내야지. 또 그래야 하고. 여하튼, 자기는 나 없는 동안 애들이나 잘 챙겨. 가족대책위원회 같은 덴 얼씬거리지도 말고.”
“내가 어디다 애들 팔아먹을까 봐 걱정이야? 영감탱이도 아니고 어째 말이 그 모양이야!”
내내 근심스런 표정이던 정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뭐 영감?”
“그래 영감.”
정민이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활동은 못하더라도 대책위원회 천막 좀 들여다보고 가라고 하면 어디 덧나나 싶어 얄미운 마음마저 솟았다. 잘 나가는가 싶다가도 가끔씩 저리 꼴통 같은 소리를 할 때면 손톱을 길게 세워 확 할퀴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소리 했다고 삐친 거야? 내 말은 한 사람이라도 애들을 잘 챙겨야 된다는, 그런 뜻이지. 누구 딴 집 애들이 아니잖아. 우리 애들이잖아. 별걸 다 가지고 신경질이네. 근데 자기야 우리 오랜만에 봤는데 이럴 게 아니라 손이라도 좀 잡아보자. 아 씨 되게 보고 싶더라고.”


말을 하던 현구가 철조망 사이로 손을 내밀며 헤벌쭉 웃었다. 그 모습이 금방 또 안쓰럽고 불안해진 정민은 현구의 손을 마주 잡았다. 뜨거웠다. 난데없이 서러운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무조건 조심해. 다치지 말고. 난 애들 땜에 그만 가볼게.”
정민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손을 빼고 돌아섰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전화하고.”
현구의 젖은 목소리가 정민의 뒤통수에 와 닿았다.
 정민언니.”

정민이 천막 안으로 주뼛거리며 들어서자 미리 와 있던 경희가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우리 대동아파트에 같이 사시는 분이세요. 아저씨는 요번에 해고됐는데 농성장에 계시구요.”
농성자 아내들이 돌아보며 반갑다는 소리를 한 마디씩 했다. 경희가 끌어 앉히는 대로 엉거주춤 앉은 정민은 누가 대표일까 생각하며 여자들을 빙 둘러보았다.
“대표님이 청와대까지 다녀왔다고 소문이 나서 대표님 얼굴 좀 보려고요.”
연두색 옷을 맞춰 입은 농성자 아내들이 한꺼번에 웃었다. 임신한 태가 뚜렷한 한 여자가 나서며 장난스레 자신을 소개했다.
“제가 이번에 청와대까지 구경한 대표입니다.”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천막 안을 휘돌았다. 놀란 눈을 한 정민은 대표의 부른 배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세상에, 임산부셨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다들 도와주시니까요.”
대표가 싱긋 웃었다. 뒤에는 여섯 명이나 되는 각 집의 어린 아이들이 일찌감치 잠들어 있었다.
“저, 안녕들하세요?”

천막 안으로 키 큰 남자 하나가 들어섰다. 붉은 장미꽃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천막 밖에서 놀던 아이들 넷이 남자를 따라 들어오며 호기심 어린 눈을 빛냈다. 어서 오세요! 농성자의 아내들도 합창하듯 인사하며 일제히 남자를 바라봤다.
“저는 노조 상집간부 오정훈이라고 하는데요. 전부터 한 번 온다고 하구선 늦었습니다. 고생들 많으십니다. 이거 받으세요.”
남자가 안고 있던 장미꽃을 내밀었다. 남자 앞에 있던 안경 낀 여자가 얼른 일어났다.
“어머 우리 주시는 거예요? 아유 뭐 이런 걸. 안에 계시는 분들이 더 고생이 많으시지요. 아유 호호호호.”

장미꽃을 받아든 안경 낀 여자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혼자 꽃을 받은 것 같은 여자의 모습에 천막 안은 웃음이 가득 찼다. 정민도 오랜만에 소리를 내 웃었다.
“저희 집사람도 여기 계시는 분들이랑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참 죄송스럽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남자가 말을 이었다.
“어머 왜요? 애기가 아직 갓난쟁인가요?”
이번에는 앳된 얼굴의 여자가 나섰다.
“아뇨. 둘째 애가 좀 어리긴 한데 그보다는 아내가 몸이 좀 아픕니다. 나아지면 꼭 나가서 함께 하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부인께서 남편을 보러 전혀 못 나오세요?”
뒤를 이어 대표가 남자에게 물었다.
“아뇨. 가끔 오긴 옵니다. 전화도 자주하고요. 오늘은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제가 잠깐 다녀오는 길입니다.”
“다행이네요. 얼른 나으라고 전해주세요. 뵙고 싶다고도 말씀드려주시고요.”
“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노조의 상집간부라는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꽃 좀 보자!

여자들이 이내 소란을 떨며 안경 낀 여자 옆으로 모여들었다.
귀를 세워 이야기를 듣던 정민도 안경 낀 여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가족대책위원회 같은 데는 얼씬도 말고 애들이나 챙기라던 남편 현구가 떠올랐다. 똑같은 남자이고 똑같은 공장에서 똑같이 농성 중인 두 사람이 어쩌면 저리 다를 수 있을까 싶었다. 현구가 그런다고 해서 현구의 말을 무조건 따를 자신도 아니지만 섭섭하고 야속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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