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건소개

소개할 판결은 선박에서 혼자서 일을 하던 근로자 A씨가 실종된 지 50일만에 발견됐는데 부검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28%로 나왔다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이 유족보상청구를 거부하자 제기된 소송에 관한 것이다. 사고발생 당시 목격자가 없었고 음주상태였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사건의 판결은 명백한 증거가 없거나 업무수행 중 음주상태에 있다가 발생한 사고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 사건의 경위

가. 망인은 정박 중인 준설선(이하 ‘이 사건 선박’)에서 페인트칠, 간단한 선박수리, 갑판청소 등을 하는 기관사였음.
나. 이 사건 선박에는 난간 등이 설치되지 않았고, 승·하선하려면 정박 중인 다른 선박을 거쳐야 하고 대형선박이 옆으로 지나가면 파고가 높아져 심하게 흔들렸음.
다. 망인은 평소 음주를 많이 하는 편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일주일정도 연속하여 마시기도 하였음.
라. 사건발생 일주일 전부터 매일 저녁 소주 2병 이상씩을 마신 망인은 사건발생 당일 술냄새가 심하게 나는 상태로 출근하여 속이 좋지 않아 점심식사도 하지 못한 채 페인트칠 작업과 갑판 청소를 하였음.
마. 15:00경 최00이사가 퇴근한 후 선박에 혼자 있던 망인은 15:44경 처와 통화를 한 후 실종되었다가 50여일만에 이 사건 선박 밑에서 익사한 채 발견됐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0.28%였음.

2.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은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망인이 어떤 경위로 익사하게 되었는지 명백하게 밝힐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원고(망인의 처)는 ① 사건발생 당시 망인이 음주를 하였다는 증거가 없었던 점, ② 사체발견 당시 작업복, 작업화, 목장갑 등을 착용한 상태였던 점, ③ 사체발견지점도 이사건 선박 바로 아래 해상이었던 점, ④ 선상에서의 추락사고는 선상근무에서 통상 예견되는 위험의 범위내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주장인 데 반해,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은 망인의 과도한 음주행위에 의해 발생한 것이므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였다.

3. 엇갈린 1,2심판결, 대법원에선 업무상 재해 인정

(1) 1심판결의 요지
① 최00이 퇴근한 이후 망인이 선박에서 어떤 작업을 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② 15:20경 원고에게 전화를 하여 술을 마시고 있다고 말한 점, ③ 선박에서 술병 등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인근에 음식점, 가게 등이 있었던 점, ④ 50여일만에 사체로 발경된 망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8%였던 점 등에 비추어보면, 망인은 15:00경부터 17:20경 사이에 업무와 무관하게 과도하게 술을 마셨고 그 결과 선박에서 추락사한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2) 2심판결의 요지
① 사고발생일 15:00경 망인의 행동은 정상적으로 보였고, 이 사건 선박에서 술병 등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망인이 술을 마셨다는 인근식당도 발견되지 않은 점, ② 망인은 목장갑을 착용한 상태로 발견되어 추락 당시에는 술을 마시고 있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여기에 작업화, 작업복까지 착용한 상태였으며 기관실의 출입문도 시정되어 있지 않고 작업도구들도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던 점을 더하여 보면 추락 당시에는 무엇인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점, ③ 망인의 출ㆍ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고, 원고도 망인을 만나러 인근식당이 아니라 이 사건 선박으로 갔던 점, ④ 대형선박의 통행 등으로 파도가 높아져 심하게 흔들리는 경우 난간 등 추락방지시설이 없던 이 사건 선박에서 음주 여부와 관계없이 몸의 균형을 잃고 추락할 가능성이 있는 점, ⑤ 혈중 알코올농도만으로 망인이 실종 당일 15:00경부터 17:20경 사이에 과도한 음주를 하고 그와 같은 음주행위가 주된 원인이 되어 바다로 추락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망인이 추락한 경위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망인은 술에 취한 상태로 청소 등 작업을 하던 중 몸의 균형을 잃고 난간이 없는 이 사건 선박에서 추락하여 바다에 빠져 사망하게 되었다고 추론함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보이고, 이 사건 사고 경위가 이와 같다면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3) 3심판결
피고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에서는 재판을 하지 않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려 2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4.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었던 요인

(1) 혈중알코올농도만으로 음주를 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법원에서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데 있어 반드시 명백한 증거를 요구하지 는 않는다. 즉 재해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하여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하여 업무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일관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50일이 지나 발견된 사체에서 0.28%의 혈중알코올농도 검출, 일주연속 매일 소주 2병씩 마신다는 회사동료의 진술, “실종직전 망인이 술을 마시고 있다며 원고에게 전화를 하였다”는 진술이 담긴 경찰 수사기록 등은 망인이 술을 마시다가 추락하였다는 추정이 가능하게 하였고 1심은 그렇게 판단하였다. 그렇지만 선박에서 음주를 한 흔적이 전혀 없었고 사망당시 목장갑, 작업복, 작업화 등을 착용한 상태였으며, 사고발생전에 이미 일주일동안 하루 소주 2병씩 마셨던 상태였기 때문에 추락직전 음주를 하지 않았더라도 혈중알코올농도는 높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이어서 추락전 작업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2심판단).

(2) 추락의 위험이 높은 작업장소
법원은 ① 사업주가 관리하고 있는 시설의 결함 또는 사업주의 시설관리소홀로 인하여 재해가 발생한 경우 또는 ② 시설의 결함이나 관리소홀이 다른 사유와 경합하여 재해가 발생한 때에는 피재근로자의 자해행위 등으로 인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업무상재해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판단기준에 비춰볼때 망인은 선박에 난간 등 추락방지시설이 없어 대형선박의 통행 등으로 파고가 높아져 심하게 흔들리는 경우에는 음주여부와 관계없이 몸의 균형을 잃고 추락할 가능성이 있는 등 위험한 작업장소에서 근무하다가 추락하였으므로 망인이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것이 타당했다.

(3) 술에 취했더라도 업무상 재해 가능
또한 법원은 업무수행 중 사고를 당한 근로자가 사고당시 술에 취한 상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재해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하며 업무의 위험성과는 별개로 오로지 음주가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자료가 없는 이상 업무수행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즉 망인의 경우도 비록 추락직전 만취상태였으나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였고 주취상태가 아니더라도 추락방지시설이 없어 추락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으므로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에 부합한 것이다.

5. 마치며

위 사건에서 만취한 상태였더라도 작업환경 자체가 추락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였다는 점이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주요요인으로 작용하였는데 법원에서는 작업환경의 위험범위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오로지 업무외적인 사유가 원인이 돼서 발생한 사고라는 명백한 입증이 없을 경우 업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밝혀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업무시간 중에 또는 업무장소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 특별한 반증이 없다면 업무와 인과관계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근로자의 과실유무를 불문하고 업무상 재해에 대해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비추어 타당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