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화재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29일 오후 10시께 경북 경산시 진량읍의 한 폐비닐 재생공장에서 불이 나 폐비닐 50톤이 타는 등 9천8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30일 오후 8시쯤에는 경북 경주시 내남면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전기 합선으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31일 새벽에는 경북 경주시 안강읍 공설운동장 인근 풍산해고자협의회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불이 나 정아무개(46)씨와 권아무개(45)씨가 숨졌다. 이들은 89년 1월 풍산 안강공장에서 파업농성을 벌이다 해고돼 20년 넘게 복직투쟁을 벌이던 노동자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2008년 복직 권고결정을 내렸지만 회사측에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노동자들이 단체로 묵는 숙소에서 종종 화재사고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건설노동자, 숙소에서 자다 2~3도 화상

지난해 3월20일 충남의 한 마을 조성공사 현장. 시공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한 업체에 소속된 일용직 배관 노동자 5명이 이날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한 농가주택의 사랑채였다. 그런데 이날 밤 잠을 자던 도중 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들이 전신에 2~3도의 화상을 입고 말았다.

이 회사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배관 노동자들의 숙소로 제공하기 위해 한 농가와 월 10만원에 숙소를 임차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임대료와 전기요금은 업체가 부담했다. 부엌은 따로 없어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때만 이용했고 식사는 인근 지정식당에서 해결했다. 노동자들은 야식 등을 조리하기 위해 숙소 바깥에는 엘피 가스통을 설치했고, 숙소 안에서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전기장판 등을 사용했다.

화상을 입은 노동자들은 이 화재가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같은해 4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승인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사업주가 현장 노동자들의 숙소로 제공하기 위해 건물주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대료·전기세를 부담해 숙소가 지배·관리하에 있는 시설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숙소 내부에 있던 휴대용 가스레인지·전기장판·텔레비전 등의 물품은 사업주가 제공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생활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가져와 사용한 것으로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 물품을 사용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는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물의 하자나 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양신청을 불승인했다.

당시 화재를 진압한 소방서는 화재가 숙소 내에서 발화됐고, 그 원인은 숙소에 있던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장착된 부탄가스통 폭발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그러나 경찰서 의뢰로 현장을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현장의 화재 상태가 심하고, 전기제품이나 가스레인지·부탄가스통 등에서 휴즈 용단·누전·폭발 등의 발화 관련 특이점을 확인할 수 없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어렵다고 감정했다.

법원, 시설 결함·사업주 시설관리 소홀 인정

이 사건의 원고는 노동자 5명,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대법원은 이전 판례에서 사업주가 관리하고 있는 시설의 결함 또는 사업주의 시설관리소홀로 인해 재해가 발생하거나, 시설 결함이나 관리 소홀이 다른 사유와 경합해 재해가 발생한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노동자의 자해행위 등으로 인한 경우는 제외한다.

법원은 “이 사건 숙소는 회사가 임차해 소속 근로자인 원고들에게 숙소로 제공한 것으로 위 회사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시설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사업주는 해당 시설물을 미리 점검해 안전성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 있을 경우 시설물의 관리주체에게 그 시정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안전한 다른 시설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즉 “사업주가 이런 주의의무를 게을리 했다면 사업주가 관리하고 있는 시설의 결함 또는 사업주의 시설관리 소홀에 해당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묵던 숙소에서는 사고 발생 며칠 전부터 전기콘센트에서 불꽃이 튀는 등 누전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었다. 법원은 “숙소가 오래된 농가주택의 사랑채로 전기시설이 오래되고, 난방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전기장판을 사용함에 따라 전기 사용량이 증가해 전기콘센트에서 불꽃이 튀는 등 누전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었다”며 “사용주가 숙소의 전기시설을 점검하거나 엘피가스·휴대용 가스레인지 이용에 주의를 주거나 화재경보장치·소방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안전관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사업주의 시설관리 소홀과 노동자들의 부주의가 결합해 재해가 발생한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한 것이다.

[관련판례]
서울행법 2009년11월24일 선고 2009구단7458 요양불승인처분취소
대법원 2009년3월12일 선고 2008두19147 유족급여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대법원 1999년1월26일 선고 98두10103 유족보상일시금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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