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4일 경남 통영 SLS조선. 선박 모터용 프로펠러를 점검하던 스쿠버업체 소속 서아무개(54)씨가 갑자기 높아진 수압에 의해 질식사했다. 서씨가 수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SLS조선 노동자들이 엔진을 가동했고, 물 속에 있던 서씨는 엔진용 프로펠러가 돌면서 수압이 높아지는 바람에 변을 당했다.

원·하청업체 근무자들이 작업 전에 기본적인 소통만 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사무처장은 “동네에 상가건물 한 채 지을 때도 신호수를 따로 둬 작업내용을 조율하고 사고를 방지한다”며 “조선소 같은 거대 사업장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다니 황당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SLS조선에서는 지난해에도 11명의 노동자가 작업 도중 추락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업체는 노동자가 다친 사실을 경찰에 즉시 신고하지 않는 등 늑장대응으로 산재은폐 의혹을 받기도 했다.

#2.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은 연초부터 줄초상을 치렀다. 올 들어서만 무려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일 선박의 파이프 모터를 점검하기 위해 탱크 안에 들어갔던 협력업체 노동자 박아무개(28)씨와 남아무개(53)씨가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숨졌고, 엿새 뒤인 8일에는 이 회사 생산지원팀 조아무개(42)씨가 선박 승강용 서비스타워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20일에는 협력업체 소속 도장공 이아무개(44)씨가 도장공장에서 선박 블록에 스프레이 작업을 하던 중 폭발에 의한 화상으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지난해에도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0월 노동부의 특별안전감독을 받았다. 하지만 사망자수가 보여 주듯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특별안전감독 당시 노동부가 시정을 지시한 부분조차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월 한 달 사이 조선소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6명이 작업 도중 목숨을 잃는 등 조선소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지난 25일에는 전남 목포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 내에서 연삭기로 선박 블록작업을 하던 강아무개(42)씨가 작업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병원측에 따르면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매년 평균 40여명(2008년 45명)의 노동자가 조선소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조선소가 사고 다발지역으로 전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위험한 작업공정이 일차적 원인이다. 선박 건조작업의 ‘꽃’으로 불리는 용접 과정에서 가스가 폭발하거나, 협소한 공간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질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고공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철판이나 각종 구조물에 깔려 중상을 당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단 관계자는 “옥외 작업과 중량물 작업이 많고, 일반제조업과 달리 이동식 설비를 주로 사용하는 작업환경이 사고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공단에 따르면 조선업종 재해율은 2008년 기준 1.76%로 전 산업 재해율(0.71%)의 2.4배에 달한다.

 


조선업 재해율 1.76%, 전 산업 재해율의 2.4배

한 달 사이 4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초비상이 걸렸다. 회사측은 8일 조업을 중단하고 임직원 3만여명이 한데 모여 산재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노사 합동토론회를 벌였다. 회사측은 10억원에 달하는 ‘안전 마일리지’제도 도입을 제안했고, 직원들에게 제도 운영방안을 공모한 상태다. 정승대 대우조선해양 이사는 “회사 매각이 추진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업무 집중도가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작은 부주의가 큰 사고로 이어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지난해에도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노동부의 특별안전감독을 받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특별안전감독 하면 뭐 하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속노조와 대우조선노조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20일 발생한 도장공장 폭발사고의 경우 작업에 사용된 ‘LED 랜턴’에서 불꽃이 튄 것이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 도장작업을 할 때는 폭발을 방지하는 ‘방폭등’을 사용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 관련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지난해 진행된 특별안전감독에서 노동부가 LED 랜턴 사용에 대한 시정지시를 명령했지만, 회사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특별안전감독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어떤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로 구성된 특별안전감독관이 해당 사업장에 파견된다. 감독관 구성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문길주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은 “헤쳐모여식으로 구성된 감독관들이 재해발생 원인을 제대로 짚어낼지 의문”이라며 “조사 자체가 허술하니, 조사에 따른 행정조치도 시정권고나 벌금 등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 마나' 특별안전감독…'있으나 마나' 자율안전관리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조선소에 한해 노사가 안전감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한 ‘조선업 자율안전관리정책’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이 제도는 안전 시스템을 갖춘 대형 사업장 노사가 자율적으로 안전관리를 하고, 정부는 영세한 사업장의 안전관리에 집중한다는 취지로 2007년 도입됐다. 사업장 안전관리를 노사가 함께 평가하고, 우수업체로 선정되면 안전보건 감독이 면제된다. 감독이 면제되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출입할 수 없다.

제도에 대한 작업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류성일 금속노조 현대삼호중공업지회 사무장은 “제도 도입 이후 오히려 사고가 늘었다”며 “사용자의 안전감독 의무를 면제해 주는 제도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산재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도입한 정책이 도리어 산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재해율은 줄지 않고 관리도 부실한 데다, 사업주가 노동자를 배제하고 거짓자료를 제출해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속노조가 조선소 자율안전관리정책 실태를 조사한 결과, 노동자 대표를 배제한 채 사용자 독단으로 안전평가를 진행한 경우가 무려 86.7%에 달했다.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사무처장은 “자율안전관리정책 자체는 좋은 점도 갖고 있지만, 안전 관련 규제완화와 생산제일주의 등과 맞물려 역효과만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재 신청하면 ‘블랙리스트’ 오르는 조선업 사내하청

원-하청 기업 노동자가 섞여 근무하기 때문에 이들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스쿠버업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24일 SLS조선의 사고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하청업체 소속일 경우, 제대로 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조선업에 만연한 이른바 ‘물량도급’ 관행이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을 빨리 많이 할수록 하청업체 몫으로 떨어지는 수익이 증가하는 물량도급 구조 자체가 사고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물량도급 불이익을 우려해 산재 자체를 은폐하는 경우다.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근무하는 한 노동자는 "도급 물량이 줄어들까 봐 각 하청업체들은 사고가 날 경우 공상처리를 해 버린다"고 말했다. 이 노동자는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게 되고, 타 업체 이직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노동부의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하도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1만9천800명, 삼성중공업 1만5천320명, 대우조선해양은 1만4천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원청업체 노동자 대비 각각 79%, 147%, 1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조선업종 전체로 놓고 봐도, 300인 이상 조선소 전체 노동자 가운데 55%가 하청노동자였다. 어림잡아 조선업종 노동자 2명 중 1명은 산재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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