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이 경영참가의 최후 보루 아니다

노사 간 합의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노동조합 활동의 일부이다. 노동조합의 모든 단체교섭 사항과 활동은 단체협약에 정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활동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기업을 중심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단체협약을 통한 경영참가는 어려운 현실이 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도 단체협약에 정리된 경영참가에 관한 사항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영진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경영참가에 관한 단체협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변명하고 노동조합은 이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체협약에 정리된 가장 대표적인 경영참가 사례가 ‘사외이사에 대한 선임권 또는 거부권’이다. 그런데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려 해도 노동조합의 추천을 기꺼이 수락하는 사외이사 후보가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회사가 추천한 후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추천인사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런 절차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간이 정해진 상태에서 매우 빠르게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경영진의 의견에 굴복한다. 어떻게 보면 경영진이 단체협약에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러한 실무적인 어려움에 대한 계산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단체협약의 효력에 관한 사항을 살펴보면 노동판례들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경영사항에 관한 내용에 한해 단체교섭을 인정하고 이를 단체협약에 명문화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단체협약에 정리된 사외이사의 선임 및 거부권 행사와 관련한 경영참가에 관한 부분은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 경영진이 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활동이 단체협약을 중심으로 이뤄질 경우 한계가 분명하다. 경영참가에 관한 사항은 가장 민감한 노사 간 충돌 상황에서 진행될 것이므로 최악의 경우 단체협약에 명시됐다 하더라도 경영진은 법적인 문제를 제시하며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운동은 단체협약의 한계를 인식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예를 들어 단체협약에 인수·합병·양도 등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위협할 수 있는 사항을 자세히 명문화해야 한다. 이사의 선임 또는 해임 등 적극적인 경영참가 활동은 노동조합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원화된 경영참가활동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주주권 확보가 유일한 대안이다

단체협약의 한계를 인식했다면 이를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방법으로 노동조합이 실제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 주주가 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주식을 매입해 일정 부분 경영에 참가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한다면 경영진과 경영참가를 위한 단체교섭을 할 필요가 없다. 상법상에 주어진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단체교섭이 진행된다면 이는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교섭이 아닌 경영진이 노동조합에 단체교섭을 요구해 노동조합의 이해를 구하는 교섭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쥐고 교섭에 임하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노동조합의 자사주 매입은 가능하다. 현대증권 노동조합이 AIG 매각 반대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에 질의해 법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2004년 2월18일 현대증권 유상증자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15만주의 실권주를 인수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금융감독원의 허가를 받았다.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더구나 2009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노동조합의 자사주 취득에 관한 문제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자사주를 직접 취득하기에는 자금과 시간이 소요된다. 노동조합이 자사주를 취득해 대주주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 수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때문에 항상 연대할 수 있도록 우리사주조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에도 단점이 있다. 지분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비해 일반 소액주주와 끊임없는 연대와 상호작용이 필요하며, 이러한 보완과정 속에서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는 서서히 가능하게 될 것이다.

경영참가의 성공조건은 ‘안정된 지분’ 확보다

-‘안정화’되고 ‘조직화’된 지분 확보
현대증권 노동조합의 자사주 매입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현실적이지 않다거나 사치스러운 투쟁을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으려면 이를 대체할 만한 지분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노동조합을 지원할 어떠한 대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경영참가를 주장한다. 현대증권 노동조합도 우리사주조합과 관계가 좋은 편이다. 단, 우리사주조합은 지분이 조직적이거나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조합원이 퇴사하거나 주식을 매도하면 일반 소액주주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우리사주의 의무 보유기간이 1년으로 단축된 지금, 우리사주조합을 대체할 유일한 대안은 노동조합이 직접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다.

경영참가의 성공 여부는 ‘조직화되고’ ‘안정적인’ 지분의 확보다. 경영을 감시 또는 견제하려면 상장기업의 경우 최소한 6개월 동안 일정규모 이상을 보유해야만 그 자격이 주어진다. 다시 말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소수주주권1)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이상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보유한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경영에 관한 분쟁이 일어났을 때 6개월 이상을 보유한 지분을 확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법이 규정하고 있는 이의제기 기간이 지나가면 그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심하게 표현하면 투쟁을 앞두고 매입하는 지분은 전혀 쓸모가 없다. 경영참가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중심이 돼 ‘매도하지 않는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소액주주의 도움이나 우호지분은 한계가 있다. 절대적이고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경영참가를 위한 초석이 된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불법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노동조합의 견제밖에 없다. 대부분의 소액주주는 회사의 경영상태에 무관심한 채 단기적인 시세차익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그간 강력한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하긴 했지만, 이제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안정된 지분을 가진 세력이 필요하다. 시민단체가 이러한 조직을 만들어 경영진을 견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영진의 코앞에서 그때그때 경영상황에 맞춰 경영을 견제할 유일한 대안은 노동조합뿐이다.

우리사주조합을 중심으로 경영권을 견제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언제 해산될지도 모르고 주주권을 행사할 때마다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조직화되지 않은 지분’이기 때문에 역시 한계가 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직접 지분을 매입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경영진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회사 안에서 주주가 자신들을 감시한다고 생각하면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노동조합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계속 이어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