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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가족대책위 이야기-연두색 여름[1부] 그 여름의 붉은 장미-세 번째 이야기
"와 재밌겠다.”
한솔이가 소리를 지르며 깔개가 길게 깔린 공장 안에서 뛰어다녔다.
“재밌긴 뭐가 재밌냐 이 바보야.”
역시 호기심 어린 얼굴로 공장 안 조립라인을 구경하던 한벗이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했다. 고민이 있는 얼굴이었다.
“아빠. 아빠는 산 자에요 죽은 자에요?”
바닥에 깔린 깔개의 은박지 모퉁이를 잡아대던 한벗이 인상을 잔뜩 그으며 현구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이상한 말을 하고 그러니. 산 자는 뭐고 죽은 자는 또 뭐야?”
눈이 휘둥그레진 정민이 큰 아이 한벗을 쳐다보았다.
“학교에서 애들이 만날 그 얘기 하는데 뭐. 김주영은 나한테 너네 아빠 죽었다며? 죽은 자라며? 우리 아빤 산 자야. 안됐다, 그러면서 막 놀려.”
“김주영이? 김승철이 아들 말이구나.”
이번에는 현구가 아들 한벗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응, 그 아저씨 아들.”
한벗의 대답을 들은 정민과 현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놀 때도 죽은 자는 죽은 자끼리 놀고 산 자는 산 자끼리 놀아. 근데 아빠. 아빠가 죽은 자가 돼서 이제 쌍용차도 못 다니고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며? 그게 진짜에요?”
아니야.

정민과 현구가 또다시 동시에 대답했다. 현구는 연이어 아들 한벗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아빠가 회사 계속 다니려고, 아무 잘못도 안 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공장을 지키고 있는 거야. 저 멀리 부산에 있는 아저씨들까지 와 있잖아.”
“그럼 아빠는 아무 잘못 안 했는데, 회사가 죽은 자로 만들려고 해서 다른 아저씨들이랑 공장에 와 있는 거야?”
“그럼!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거지.”

현구가 재차 대답을 하자 고뇌에 찼던 한벗의 시무룩한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현구와 한벗이 이야기 나누는 걸 듣던 정민은 벽을 따라 널려 있는 빨래에 시선을 두었다. 김승철이 떠오르고 명남이 떠올랐다. 휴일이면 회사 운동장 가에 나와 삼겹살을 구워먹던 게 몇 번이던가. 여름이면 통복천 끝 낚시터에서 일박이일의 휴가와 낚시를 즐기던 게 몇 번이던가. 툭하면 평택항에 나갔던 것 또한 몇 번이던가. 멀게는 회를 먹자고 삽교까지 갔던 적 몇 번이던가.

그러나 이제 정말 모두가 뿔뿔이고 모두가 제각각이 되었다는 게 실감났다. 설기원은 세상을 떠났고 노조 대의원인 민영식과 남편 현구는 농성장에 있으며, 명남은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은 후 희망퇴직 신청과 함께 전셋집까지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큰 아이 한벗이에게서나 소식을 듣게 되는 김승철 역시, 해고가 되지 않은 까닭인지 명단이 발표된 후로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이들과 놀던 현구가 일어나 작업복을 걸치고 작업화를 신었다. 헬멧과 마스크를 쓴 후에는 쇠파이프까지 챙겨 들었다.
“얘들아 아빠 훈련 갔다 올게. 기다려.”
말을 남긴 현구가 문을 향해 급히 뛰어갔다. 아빠의 모습이 갑자기 낯설어진 한솔이 울먹이는 얼굴을 했다.

“아빠 금방 올 거야. 왜, 무서워?”
정민이 물었다. 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벗도 겁먹은 눈으로 문 쪽을 봤다.
아이들과 함께 남편 현구가 사라진 어둠 속을 바라보는 정민도 무서워졌다. 어찌 되려나. 이 싸움이 과연 어떻게 흘러가려나. 잠시 잊었던 근심과 불안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어제, 회사 임직원 결의대회에 억지로 참석한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는 부산의 한 조합원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정민언니. 오늘 비해고자들이랑 관리자들이 농성장을 깬다고 쳐들어온댔잖아. 말이 아냐. 숫자가 점점 불어나. 천 명이 넘는 것 같애. 얼른 좀 나와. 나도 오늘 아르바이트 하루 제끼고 나왔어. 영숙이는 제 남편이 비해고자라고 안 나오겠대. 빨리! 급해 언니.
정민은 아홉 시경에 걸려온 민영식의 아내 경희 목소리를 떠올리며 발을 굴렀다. 한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장은 사우나에 다녀오겠다며 마트에서 나갔다. 두 시간 이상은 있어야 올 것이었다.

살짝 나갔다 올까. 직원들하고 맞서다 다치면 어쩌지? 근데, 또 나갔다 와도 괜찮은 건가? 지난번에 괜찮았다고 요번에도 괜찮으리란 법이 어딨나. 팀장이 이해를 해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정민은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마트를 빠져나왔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머릿속으로는 그 염려를 하면서도 손은 어느새 택시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택시가 앞에 와 서자 이번에는 몸을 넣었다. 창고에 들어가 있는 팀장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 이러면 되냐. 나도 책임은 못 지니 최대한 빨리 오라, 라는 답신이 왔다. 허락을 받은 셈이긴 하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혹시 사장이 자리를 비운 걸 알게 되면? 그래서 힘들게 얻은 일자리에서 쫓겨나면? 한솔이 유치원은? 무수한 상념이 연이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파업철회! 정상조업!
정민이 공장 정문에 도착했을 때는 공터에 몰려선 비해고자들이 팔을 들어 올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펼침막을 앞세운 농성자의 아내들 역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거나 더 이상 공장으로 진입하지 말라며 대응을 했다. 대부분 흰 상복을 입고 있거나 장미꽃을 몇 송이씩 들었다. 정문 앞에도 장미꽃을 들고 상복을 입은 농성자의 아내들이 있었다. 긴 끈을 잡고 서서 문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들의 옆으로는 전투경찰들도 모여서서 언제든 뛰쳐나갈 듯 부동자세를 취했다.

경희는 어디 있지?
어찌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정민은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있거나 멜빵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들 곁으로 갔다. 현구가 있을 공장을 넘겨다보았다. 붉은 깃발들이 휘날리는 가운데 헬멧과 마스크를 쓴 이들이 정문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업철회, 정상조업이라는 구호가 회사 측 방송차량을 통해 날카롭게 울렸다. 공장 안의 농성자들은 한솥밥 먹던 동료들에게 비수를 꽂지 말고 돌아가 달라는 맞방송을 했다. 경찰 또한 경찰대로 사측 노동자들은 집회신고를 않았으니 당장 해산하고 농성노동자들은 위험물질을 던지지 말라고 방송했다.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들이 한꺼번에 공장 근방을 에워쌌다. 정민의 곁, 유모차 안에 있던 아이 하나가 숨넘어갈 듯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뒤를 이어 요란히 따라 울었다.

방송차량이 정문을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공터에 있던 회사 측 직원들도 조금씩 앞을 향해 이동했다.
“함께 살자구요!”
정문께에서 긴 끈을 잡고 있던 농성자 아내가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직원들에게 장미꽃을 주며 공장에 들어가지 말 것을 호소하던 한 농성자의 아내가 뛰어나오며 회사 측 차량 앞에 붙어 섰다. 제발 우리 함께 살자고요! 하는 외침이 공장 앞에 재차 커다랗게 울렸다.

유치원에 같이 애 맡기는 103동 현지 엄마 아니야?
정민이 놀란 눈으로 차를 막아선 농성자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또 한 아내가 뛰어나오며 차량 앞에 아예 드러누웠다. 그 사이 무수한 붉은 장미들은 바닥에 떨어져 밟히고 있었고, 더 이상은 못 들어간다고 외치는 농성자의 아내들은 두 팔을 벌리기도 하고 몸으로 밀치기도 하며 필사적으로 회사 측 직원들을 대적했다.

어떡해야 하지? 경희는 대체 어딨는 거지?
마음이 급해진 정민은 상복 입은 여자들을 살피다가 다시금 사람들이 얽혀 있고 기자들의 사진기 불빛이 터지는 공터 근방을 보았다. 그리고는 놀란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리 멀지않은 앞줄에서 친목계원 김승철을 발견했고 동시에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승철 씨, 승철 씨. 김승철 씨, 왜 거기 있어요? 승철 씨가 어째서 거기 있는 거에요!”
정민은 자신도 모르는 새 입가에 손나팔을 만들어 큰소리로 외쳤다. 얼굴이 벌개진 김승철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방송차량에서 나오는 구호를 따라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어이가 없어진 정민은 망연한 눈길을 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외쳐대는 김승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회사 측의 강요에 못 이겨 임직원 결의대회에 참석한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는 부산의 노조원 이야기가 생각났다.

경찰 쪽 차량에서는 회사 측 노동자들은 후문에서만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으니 어서 후문으로 이동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공장 정문으로 향하던 회사 측 선두는 동광아파트 쪽인 서문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김승철도 곧 모습을 감추었고 농성자의 아내들도 다급하게 이들 뒤를 좇아갔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데로 서서 걸음을 옮기던 정민은 연두색 옷을 입고 앞서 걷는 경희를 발견했다. 반가움에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언니! 왔구나. 언제 왔어?”
경희가 뛰어와 정민을 끌어안았다. 정민이 경희를 마주 안으며 대답했다.
“열시 좀 지나서. 근데 경희야. 나 좀 전에 회사 쪽 편에 서 있는 김승철 씨 봤어.”
“김승철 씨? 세상에, 그랬구나. 난 축구동호회 회원들 여러 명 봤어. 또 여러 명은 공장 안에 있다던데 비참하더라고.”

“글쎄 말이다. 충격이더라. 그나저나 참 난 이제 가봐야 돼. 몰래 나온 거야.”
경희와 나란히 걷던 정민이 동광아파트 앞 오거리에서 멈춰 섰다.
“그래 언니. 뭔 일 있으면 전화할게. 어서 가봐. 어떻게 되겠지 뭐. 사람들이랑 기자들이랑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자기들이 더 어쩌겠어. 경찰도 중립을 지키고 있는 거 같고.”
경희가 정민의 등을 떼밀며 대꾸했다.
<계속 이어짐>

홍새라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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