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최근 한국은행 신입사원 교육을 위해 작성한 글이다. 실제 교육은 이 교안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근로자로서 최소한의 법률지식조차도 습득하지 못한 채 취업을 하고 있는 근로자에 대한 노동법 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 정리해 본 것이다. 근로자로서 권리와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해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전달하기 위해서다.

"당신은 근로자입니다"

당신은 태어나면서 권리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됩니다(민법 제3조). 이처럼 당신이 권리능력을 갖게 된 것은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법에 의해 보장됩니다. 이렇게 사람이면 권리능력을 갖게 된 것은 그러나 옛날부터 당연히 보장됐던 것이 아닙니다. 노예·노비·천민·농노 등은 권리능력이 없었거나 제한됐습니다. 근대시민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법질서가 확립되고 나서야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권리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으로 취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사람으로서 권리능력을 갖게 된 것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작업의 결과이지 당신이 선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이 되면서 당신은 ‘근로자’가 됐습니다. 사람으로 권리능력을 갖게 된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근로자가 된 것은 당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근로자는 우리 사회에서 당신이 갖는 사회적 신분이고 법적인 지위입니다. 법은 이제 당신을 근로자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사람으로 태어나 민법 제3조를 아느냐와 관계없이 권리능력을 갖는 것처럼 당신은 근로기준법을 아느냐와 관계없이 근로자로서 보호됩니다.
당신이 근로자가 된 것은 당신이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이 계약을 통해 당신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당신에게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근로기준법 제2조제4호). 사용자는 당신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당신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합니다. 왜 사용자가 당신의 근로에 임금을 지급할까요. 당신의 근로 제공으로 사용자가 임금 지급에 따른 손실보다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근로 제공을 사용자에게 함으로써 사용자는 어떤 이득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이 취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만약 근로자인 당신이 그 이득을 취득하게 된다면 사용자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당신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용자는 당신이 제공한 근로를 통해 상품·서비스 등을 제3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일정한 대가를 받게 됩니다. 사용자가 제3자로부터 지급받게 되는 대가는 사용자가 당신에게 지급하는 임금보다 많은 것이어야 하겠지요. 여기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당신이 제공하는 근로의 결과물은 당신에게 귀속되지 않고 사용자에게 귀속됩니다. 당신은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지만 당신이 제공하는 근로의 결과물은 당신이 받는 임금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이것은 당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근로자로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생활하고 그래서 다시 근로를 제공합니다. 예전에 당신처럼 누군가를 위해 일해 주고 그 대가로 생존하면서 그 일의 결과물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는, 당신과 같은 상태에 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결과물을 차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는 지위에 있던 자들이지요. 당신과는 전혀 다른 지위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해 일해주는 그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고대사회의 노예이고 봉건사회의 농노, 반봉건사회의 소작농이 당신처럼 노동하고 그 대가로 생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소유주·귀족·영주·지주가 이 사람들에게 노동하게 하고 결과물을 차지한 사람들, 그 누군가입니다. 그러나 당시 노동하던 사람들은 당신과는 현저하게 다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당신이 노예·농노·소작농과는 당신 자신은 다르다고 확고하게 생각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서 노비나 농민은 당신과는 전혀 다른 비천한 사람들이고 왕과 장군·귀족들이 오히려 당신과 같이 사람같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들의 모습에 즐거워합니다. 노예·노비·농노·소작농 등은 채찍 등 폭력·협박을 통해 노동이 강제되거나, 관습과 국가법에 의해 토지를 소유한 귀족·지주의 토지에 결박돼 생존을 위해 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자유롭게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사용자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겠다며 근로자가 됐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다릅니다. 근대시민혁명에 의해 근대시민법체제가 확립된 이후 당신과 사용자는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게 됐습니다. 더 이상 당신은 앞선 시대에 노동을 제공하고 그 결과물을 빼앗기던 사람들과는 달리 당신의 의사에 의한 자유롭게 사용자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근로자가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자유’를 획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유는 헌법에서도 당신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헌법 제10조·제15조 등). 그러나 이 자유는 당신이 임금을 받고 근로를 제공할 것인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아닙니다. 당신은 생존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임금을 받아야 합니다. 당신이 임금이 없이도 생존을 할 수 있다면 굳이 당신은 당신 노동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겠지요. 당신이 일정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당신이 어떠한 사용자와도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는 당신에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생존을 해야 하고 임금 외에는 달리 생존할 수단이 없으므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보장된 자유는 당신의 생존을 위한 자유가 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보호해 주는 최저기준, 노동법

당신이 사용자와 체결하는 근로계약에 의해 당신의 근로조건을 사용자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4조). 폭력·협박·감금 등을 통해 노동을 강제당하지 않습니다(근로기준법 제7조). 하지만 당신은 사용자와 법적으로 동등할지라도 사회경제적으로는 결코 동등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노동의 결과물을 사용자가 차지해 당신에게 지급하는 임금보다 큰 이득을 챙기도록 할 이유가 없겠지요. 이와 같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법으로 근로조건을 정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당신을 직업종류를 불문하고 사용자에게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제2조제1호 등).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면 당신은 근로자입니다. 당신이 은행에서 사무직으로서 정신노동을 하든지 아니면 자동차공장에서 생산직으로서 육체노동을 하든지 관계없습니다(근로기준법 제2조제3호). 당신이 과장·부장·차장으로 승진한다고 해서 당신의 법적 지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가는 근로자인 당신에게 적용될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해 놓고 사용자가 이보다 못한 근로기준을 가지고 당신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근로기준법 제3조). 만약 사용자가 당신에게 근로기준법에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해 당신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부분은 무효이고, 근로기준법상 기준을 적용받게 됩니다(근로기준법 제15조). 국가는 근로자인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정해 놓았습니다(최저임금법). 2010년에는 시급 4천110원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입니다. 국가가 법으로 보호해 주는 것은 시급 4천110원 수준이고 근로기준법상 최저기준뿐입니다. 이를 넘어 근로자로서 당신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는 당신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당신이 능력이 된다면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통해 법보다 상회하는 내용으로 얼마든지 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능력이 된다면 하루 1시간 일하고 현재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고 하여 위법하다고 이것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계약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능력을 갖춘 근로자는 정말 극소수일 뿐이고 신입사원인 당신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부모님과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적어도 십여 년 동안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해 보다 좋은 근로조건을 갖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보다 나은 대우가 보장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말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당신이 이렇게 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보다 나은 대우가 보장된 직장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직장 중 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사용자와 당신이 자유롭게 근로계약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이미 근로기준을 정해 놓고 당신은 그 기준에 따라 근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신에게 ‘계약 자유’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근로기준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계약 체결 여부의 자유일 뿐입니다. 이렇게 근로자가 된 당신에 대해 국가는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근로기준법 등으로 최저수준을 보호하고 있을 뿐이고 이 최저수준을 넘어선 부분에 대하여는 당신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이 당신을 위해 보장돼 있습니다(헌법 제33조). 이것을 알아야 당신은 법이 정해 놓은 이상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당신과 유사하지만 당신과 동일하지 않은 노예·농노 등과는 달리 당신에게는 노동기본권이 보장돼 있습니다. 당신이 노예·농노와 다를 수 있는 것은 당신에게 보장된 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사용자에게 맞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장받고 있는 기본권임에도 이 나라에서 10%의 근로자만이 행사하고 있는 이 노동기본권에 관해서는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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