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구단일화 절차와 타임오프 범위도 법에 명시됐다. 창구단일화는 우선 노조 간 자율적으로 시도하고, 실패할 경우 과반수 노조가 교섭을 담당하되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조합원수만큼 비례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도록 했다. 교섭단위를 예외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사용자가 동의하거나 노동조건이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거나, 고용형태나 교섭관행을 고려해 노동위원회가 분리신청을 받아 결정한다.
타임오프제도나 창구단일화 모두 논의만 이뤄졌을 뿐 현장에 적용된 경험이 드물어 상당수 노사관계 전문가는 조기안착 가능성에 회의를 품고 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워낙 복잡해서 시행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비관론을 폈다. 논란의 와중에 한 달도 안 돼 급박하게 결정되다 보니 곳곳이 구멍투성이다. 제도 보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예기간 동안 노조설립 막겠다는 노동부
“복수노조 설립은 기본권이므로 더는 유예할 수 없다.”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지난해 장관 후보자 시절부터 꾸준하게 2010년 1월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전임자임금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노조가 난립해 노사관계가 크게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며 반대하는 와중에도 이런 주장은 계속됐다. 같은해 10월 재보궐선거를 의식한 한나라당에서 질타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달 4일 한국노총·경총과는 급기야 복수노조 시행을 2년 6개월 유예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발언의 초점은 기본권에서 혼란 방지로 옮겨 갔다.
그런데 지난 7일 노동부가 공개한 ‘노조법 개정 설명자료’는 장관이 처음부터 단결권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료에 따르면 노동부는 “사업장단위에서 조직대상이 중복되는 노조 설립을 금지하는 규제가 2011년 6월30일까지 유효하다”며 “기존 복수노조 설립과 단체교섭 관련 지도지침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설립신고 반려의 근거로 든 지침은 2007년 12월에 만든 ‘복수노조의 설립·단체교섭 관련 지도’를 말한다. 사업장에 기업별 단위노조가 조직돼 있으면 조직대상을 같이하는 기업별노조나 초기업노조 지부·분회 설치가 금지된다는 내용이다. 이 지침은 법원의 판결 경향과 정반대로 간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노동부는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들어 바꾸지 않았다. 이미 대법원은 2001년부터 사업장에 노조가 존재하더라도 산별노조 지부지회 설립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관련 판례는 수북하게 쌓여 있다. 법 위에 행정지침이 있는 셈이다.
간접고용노동자와는 교섭 말라?
특히 노동부는 사업주에게 기업별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에 산별노조가 새로 조직되더라도 교섭에 응할 필요가 없다고 부추기고 있다. 해당 기업 내에서 조직대상이 중복된다면 복수노조에 해당되므로 교섭권이 인정되지 않으니, 교섭에 응하지 않더라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현실은 노동부의 주장과 다르다. 법원은 초기업노조에게 단결권뿐만 아니라 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다.
지난해 초 서울대병원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노동자 173명이 ‘하루 10시간 일하고 100만원 남짓 받는 저임금’에 항의하며 공공서비스노조 민들레분회에 가입했다. 청소업무는 식당이나 장례식장 업무처럼 하청업체가 맡고 있다. 이들 노동자가 속한 기업은 대덕프라임이라는 청소용역업체로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 232명을 포함해 직원수가 630여명에 달한다.
민들레분회는 지난해 4월부터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복수노조를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본사에 2003년 설립한 대덕프라임산업노조라는 기업별노조가 있다는 것이다. 원청인 서울대병원은 하청 일이라며 모르쇠했다. 결국 분회는 법원에 ‘단체교섭응낙 가처분신청’을 냈고, 지난해 9월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들레분회는 산별노조 소속이므로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아 냈다. 법원은 회사에 “단체교섭에 성실하게 임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똑같이 노동부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문제는 2011년 7월 사업장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더라도 문제가 풀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정 노조법은 교섭단위를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정했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일터에도, 도급업체에도 낄 수 없는 처지다. 노동자가 하청회사와 협약을 체결했다손 치더라도 원청이 계약을 종결하면 방법이 없다. 이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이 함께 겪는 어려움이 될 것이다.
과도한 승자독식, 소수노조 가시밭길
개정 노조법에서 도입한 창구단일화 방식은 앞뒤로 자율단일화와 공동교섭대표단 구성이 붙긴 했지만 교섭대표노조에 권한을 몰아주는 배타적교섭제가 중심이다. 교섭대표노조는 교섭당사자 지위를 갖고 단체교섭권과 협약체결권·쟁의행위 찬반투표 회부권·쟁의지도권까지 갖는다. 쟁의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교섭에 참여한 노조의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파업권도 다수노조가 독점한다.
노동부는 교섭 혼란이나 부담을 이유로 교섭대표노조가 규범적 부분과 채무적 부분 모두를 교섭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단체협약에서 규범적 부분은 임금 등 노동조건이나 고용관계 같은 조합원의 권리를 뜻하고, 채무적 부분은 노조활동과 전임자임금·경영참여 같은 노조의 권리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창구단일화가 도입되더라도 규범적 부분에 대한 교섭이 단일화되는 것이지 채무적 부분까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노동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소수노조는 형식적인 공정대표의무 조항만 기댈 수 있을 뿐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셈이다.
특히 배타적교섭제와 타임오프가 만나면 다수노조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개정 노조법은 전임자임금을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사용자와의 교섭·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유지 및 관리업무’ 활동에는 임금을 주도록 했다. 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에는 조합원수와 타임오프 범위를 고려해 시간단위로 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인원을 제한했다. 시행령안대로 확정되면 노동부는 실태조사를 통해 타임오프 총량과 이를 활용할 전임자수를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제시하고 위원회에서 노사정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분명한 사실은 소수노조가 타임오프 총량을 활용할 여지는 적다는 것이다. 조합원수에 따라 총량을 배분해도 그렇지만, 그마저도 ‘합리적인 차별’을 근거로 다수노조에 뺏길 수 있다. 2008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발전위원회에 보고된 ‘조합원의 유급노조활동 시간’에 따르면 전임 외 조합원 1인당 실제 인정되는 연평균 근로면제일수가 4.5일이다. 교섭참관과 조합원교육이 각각 1일이고, 임원·대의원선거와 조합원총회가 0.8일로 나타났다. 교섭과 노사협의회는 다수노조의 권한이니, 소수노조에게 배분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근로시간 면제가 대부분 노사공동사업에 국한될 것”이라며 “과반수노조가 노사협의회를 독식하고 교섭권을 장악하면 준비시간까지 가져가기 때문에 소수노조가 타임오프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면 받은 중소기업 지원
개정 노조법이 지난해 말 제시됐던 이른바 ‘추미애 중재안’을 토대로 했다면 그 근원에는 노사정위에서 도출한 공익위원안이 있다. 공익위원안은 과반수대표제를 통한 교섭창구단일화와 타임오프제를 통한 전임자임금이 주요 내용이다. 거의 대부분을 원용했지만 지난해 말 논의 과정에서 빠진 내용이 있다. 종업원 300인 미만 사업장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익위원들은 “노조 전임자 제도 변화로 인해 건전한 노사관계형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 특별법을 제정해 별도의 조치를 강구하라는 권고로 결론을 맺었다.
방법도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지난해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공익위원은 위원들에게 재정지원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타임오프제 도입으로 사용자의 전임자급여 지급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면 300인 이하 영세기업의 노조활동이 위축될 소지가 있어 이를 보완하고자 사업신청을 받아 재정지원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노사발전재단과 같은 기관이 노조로부터 재정지원 신청을 받아 지원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당시 공익위원안은 타임오프 허용시간 한도와 관련, 법률로 정하지 말고 단체협약에서 노사자율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보다 유연한 타임오프제를 운영하도록 충고하면서도 중소기업 지원은 빠뜨리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