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의 명동예술극장 앞은 건물 틈새를 비집고 나온 바람이 살을 파고 들었다. 21일 갑자기 얼어붙은 날씨 탓인지 오후 3시햇볕도 바람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명동의 한 건물 옆 파라솔을 씌운편의점 식탁과 플라스틱 의자 주위로 인파가 몰려 있다. 추미애(52)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이른바‘국민과의 대화’를 열고 있는 곳이다.

‘추미애 중재안은 국민을 위한 결단입니다. 국민과 끝까지 함께 가겠습니다.’손팻말을 든 중년의 지지자들이 바람을 막아 주는 병풍이 됐다. 대화라지만 처지를 생각하니 영락없이‘유형지’다. 친정인 민주당은 그에게 당원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릴 태세다. 최고위원회까지 거쳐 조만간 열리는 당무위원회의결정만 남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키던 지난달 30일 낮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억울하죠. 한마디로 어이없고. (당이) 중재안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중재를 왜 했는지를 문제삼는가 봐요. 기이한 상황입니다. 국민과 불통하는정당이 되고 있는 거죠.”

추 위원장은 그날 일을 상세히 복기했다. 환노위원장실에서 당론을 놓고 언쟁을 벌였던 일부터 전체회의 처리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퇴장과 소란의 와중에서 일어났던 해프닝이 그것이다. 그는 민주당이 끝까지 당론을 제시하지 않았고, 민주당 환노위원들의회의장 진입을 막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퇴장해서 들어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위원장과 위원들의 진술은 여전히 엇갈렸다.

그는“지난 20일 대변인이 당 윤리위원회 결과를 브리핑하면서‘당론을 위배하고’라고 말을 시작했다”며 “(당은) 당론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이라도 알려 주고 공당으로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론이 없는데 어떻게 당론을 위배할 수 있는지 설명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 듯하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개정 노조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노동계의 불난 가슴에 기름을 부었다“. 월권”적 조항이 시행령에 삽입됐고, 재계쪽에 유리한 법 해석을 내놓고 있다.

타임오프 인원제한 잘못

-노조법 시행령을 보셨습니까. 노동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직 정확히는 못 봤어요. 보고를 받기로 한 와중에 소명서 쓰느라 밤을 샜어요. 시행령에 대한 각계의견이 있다고 해서 그것까지 보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명동)에서 보고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할일은 해야죠.”

그러면서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시행령 조항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 들어갔다.

“시간총량을 숫자(인원)로 제한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산업형태∙종업원수 이런 것을 봐서, 예를들어 서비스 업종 같으면 고충처리나 산업안전 중에 고충처리에 더 많은 시간 배정이 필요합니다. 건설현장이나 기계를 많이 다루는 제조업현장은 고충처리보다 산업안전에 더 많은 시간이 배정돼야 하고요. 숫자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총량제에서어떻게 분배할지 문제는 노노∙노사 간에 동의한다면 숫자로도 확보할 수 있고, 파트타임 식으로 분배할 수도 있습니다. 5시간 일하고 3시간은 노조활동하겠다고 분배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는 오는 5월까지 확정될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시간총량에 앞으로 새로 진입할 노조를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향후에 생길 미래의 노조 몫이 있어야 합니다. 노사가 이번에 설정되는 총량이 마치 끝이라는 식으로 보면 사용자는 될수록 빡빡하게,노조에서는 좀 더 여유 있게 하려 할 텐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3년마다 한 번씩 고치는 것이니까요. 처음에는 시험적인 것이니까 산업현장을 제대로 살펴서 서로 상의해 결정할 필요가 있어요. 미래노조의 몫도 고려해야 하니까 너무 빡빡하게 하거나 너무 많이받아 내려고 죽기살기로 하면 안 됩니다.”

심의위 참여 자격조건 바꿔야

-민주노총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자격조건으로 공무원법 33조를 든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근로자위원을 두도록 했지요. 최저임금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도 공무원처럼 자격요건이 있는데요. 근로시간심의위원회는 전제 자체를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통령령에 위임하지 않고 막바로 법에다 넣어 버렸거든요. 노조활동을 하다 보면 공무원 자격요건처럼 맞출수 없는 상황이 있어요. 불가피하게 현장에 있어야 하고, 현장에 있으면 형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있어요. 그런 활동으로 인한 전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격요건 때문에) 근로자위원이 못 된다는 소지는 없애 놓았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민주노총을 배제한다는 것도 민주노총의 오해입니다. 전국 규모의 총연합단체로 해 놓았기 때문에 한국노총, 민주노총 다 참여해야죠. 참여는 그분들의 자유니, 안하는 것까지 어떻게 할 수 없죠.”

-전국 규모의 총연합단체가 아니라 노동단체라는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요? 제가 시행령을 살펴볼 겁니다. 원래는 전국 규모의 총연합단체로 해 놓았는데. (노동부의) 월권입니다. 시행령 검토하면서 바꿔야죠. 대표성 있는 양대 노총에서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뜻으로 들어간 겁니다. 자구수정 권한이 저한테 있었는데 (처리과정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단체교섭 유효기간 논란도 있습니다. 입법자의 의도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법해석을 아주 축소해서 해석하려는 이해관계자들과 노조활동이라는 근본취지가 노조법이기 때문에 노조활동을 보호하려는 것으로 확장 해석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어요. 이런 예민한 문제에 대해 입법자 의도를 먼저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않아요. 법은 만드는 순간에 입법자의 손을 떠나는 것이고 법을 해석하는 기관의 권한이 되는 것이죠. 법해석을 해 주는 기관이 판단해 줘야 합니다.”

“임태희 장관에게 중소기업 지원 당부했다”

-300인 미만기업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듯 합니다. 노사정위 공익위원들도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습니다.

“중재안을 내면서 헌법 원칙과 현실과의 조화를 고민했습니다. 복수노조 시대에 교섭권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먼저 자율로 하고 창구단일화가 안 될 때강제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산별교섭권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근로조건이나 조직형태를 달리하거나 교섭관행이 판례에서 주어졌다면 존중할 수 있도록 신청이 있을 경우 노동위원회 결정에 따라 분리교섭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래야 비정규직도 분리교섭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중소기업의 노조를 보조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을 했어요. 세액공제 방식이 어려워서 근로시간면제로 했다는 것인데, 장관에게‘소득공제 방식으로라도 하든지 지원해주는 해법을 찾아봅시다’하고 따로 부탁했어요. 어쨌든 노조라는 제도 자체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제도이기 때문에 마치 정당의 활성화와 육성을 위해 정당활동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지원이 필요합니다. 당장 기대는 하기 어려워요. 지난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전환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한시법으로 1인당 30만원정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는데 그것을 연장해 달라고 했더니 정부가 거절했단 말이에요. 정부성격상 그런 지원을 안 하고 신경도 안 쓸 것 같은데이후 과제로 염두에 둬야 할 겁니다.”

지원책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특별법 형태로 제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추 위원장은 노조법 시행령과 관련한 국회 논의가 시급하다며 다시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며 말을 흐렸다.

“정부는 탑다운 식으로 강제하기 전에 노사의 법이기 때문에 근로시간면제제도를 배정받기 위해 서로현장을 파악해 놓고 기업별로 비교도 해 보고 사업장형태나 종업원 규모별로 조합원수를 조사해야 합니다. 심의위원회에서 타협이 안 되면 국회에 들고 오는과정이 있을 텐데 그러려면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있어야 합니다. 여야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야죠.그런데 지금 당내 문제 때문에….”

비정규직법 보완할 점 많아

-이명박 정부가 일자리 문제를 화두로 삼았습니다. 법제를 바꾸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근로기준법과 직업안정법 등 유연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은데요.


“1929년 대공황 때 오늘날 공업 강국이라고 알려져 있는 스웨덴도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저임노동으로 공장을 간신히 유지하는 기업이나 동종산업에서 근로자의 임금을 깎으면서까지 근근이 버티는 기업들은 다 문을 닫게 했어요. 정리해고를 거꾸로 한 거죠. 근로자를 희생시키는 상황에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문을 닫게 했어요. 가장 경쟁력 있는 공업강국으로 기회를 잡았던것도 그때 산업현장에 있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정책이었어요.
우리나라도 사람∙인적자본∙기술이 뛰어난 나라예요. 고등교육을 받은 기술인재들이 폭넓게 분포돼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희망이고 미래입니다. 그분들을 비정규일자리로 내몰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것처럼 노동의 질이 하락하면서 경쟁력이 약해지는 거겠죠. 젊은 기술인재를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비정규직법이 지켜졌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도 보완할 점이 많죠. 그런데 반대로 한나라당은 지금도 계속 개정하자고 하면서 개악하려는 안만 꺼내요. 그게 힘들어요.”

추 위원장은‘국민과의 대화’를“당이 국민과 소통할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과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이 다녀갔다. 행인 중에는 서명운동을 하면 동참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꽃다발을 가져다주는 이도 있었다. 추 위원장이 스스로‘유형지’를 선택한 이유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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