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명박 정부의 화두는 일자리다. 경기는 회복단계에 들어섰지만 실업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지난 21일 첫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열고“산업정책과 재정∙세제 등의 지원제도 전반을 고용친화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기 틈타 화려하게 부활겉으로 보기에‘고용을 동반한 성장’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경제운용의 키를 쥐고 있는 이명박정부 3기 경제팀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1년 전 이맘때 이명박 정부 앞에 놓인 숙제는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던 실물경제지표였다. 지난해 1월19일 단행된 개각에서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기획재정부장관에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행시 10회)이, 청와대 경제수석에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장관(12회)이, 금융위원장에 진동수 전 재정경제부차관(17회)이 각각 임명됐다. 모두 옛 재무부, 그것도 금융정책라인 출신이다.
재무부 금융정책실(국) 출신 관료의 전진배치는 곧 모피아의 화려한 부활을 의미한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의 영문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강한 인맥으로서 밀어주고 끌어주며 정부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는 형태가 마치 마피아와 같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노동부장관이 기획재정부 인사노무과장이냐”

모피아 경제관료의 장점은 거미줄 같은 인맥과 일사불란한 팀워크다. 뛰어난 실무능력으로 최고인사권자의 가려운 곳을 콕 짚어 긁어 준다. 무엇보다 위기에 강하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경제관료에대해 부정적이었다. 2008년 3월 국무회의에서“기획재정부 조직슬림화를 주문했더니 TF(테스크포스)를 만들어 잉여인력을 한 방에 모아놨다”며“이러니까 모피아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이 부른 촛불시위로 정치기반이 흔들리자 입장이 바뀌었다.‘ 친기업’에서‘친서민’으로 이동하면서 관치기술자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대공황이라는 말이 퍼질 정도로 위급했던 경제사정도 모피아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2기 경제팀의 등장과 함께 노동정책에 대한 경제관료들의 입김이 거세졌다. 윤장관은 지난해 2월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경제위기를 맞아 비정규직 사용기간제한은 폐지하는 것이 옳다”며“기간제한이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말해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윤 장관은‘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올해 경제는 -2% 성장하고 취업자는 20만명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며“노동시장 대책으로 비정규직법 완화와 최저임금법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취업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고용정책의 지상과제가 됐다.

경제관료들이 고용정책을 주도하면서 그나마 노동부가 추진했던 양질의 일자리창출 사업은 대거 칼날을 맞는다. 대표적인 것이 정규직 전환지원금이다. 노동부는 당초 올해 예산안에 정규직 전환지원 명목으로 일반회계 1천245억원, 고용보험기금 3천931억원을 편성했으나 기재부는 단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지난해 이른바‘슈퍼추경’에서 진통 끝에 편성됐던 정규직 전환지원금 1천185억원도 비정규직법이 개정되지 않아 관계법령이 없다는 이유로 불용처리했다. 기재부는 앞서‘2009년 세제 개편안’을 통해 그동안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30만원씩 세액공제를 해 주던것마저 중단시켰다. 이로써 정규직 지원혜택이 모두 사라졌다.


3기 경제팀 출범과 모피아 출신 노동부장관

이렇다 보니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비정규직법 개정논쟁 당시 국회에서는‘노동부장관이 기재부 인사노무과장이냐’는 조롱이 나왔다. 지난해 8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한 야3당 의원 10명은 노동부장관의 사퇴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비정규직법이 본격 시행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영희 전장관이 해고대란설을 굽히지 않고 임시국회 직권상정 처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홍 의원은“노동부가 비정규직법 발효를 대비해 정규직 전환대책은 준비하지 않은 채 터무니없는 100만 해고설을 유포해 비정규직 해고를 조장했다”며“노동부장관이 기재부 인사노무과장이냐”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지난해 8월31일 3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이 정책실장을 겸하고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경제특보로 임명됐다. 그리고 노동부장관에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이 임명됐다. 임 장관은 행시 24회 출신으로 재정부외환정책과∙금융정책과를 거쳐 모피아출신 국회의원으로 분류된다. 당시 개각에서 모피아들의 입지가 굳건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하반기는 13년간 유예됐던 복수노조∙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노조법) 처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막강해진 경제라인의 행보에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됐다.사실상 노조법 처리의 칼자루를 정부가 쥐고 있는 상태에서 청와대가 정책실장을 신설하고 윤 수석에게 겸임하게 함으로써 국가정책 전반을 조정∙총괄하도록 맡겼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임금∙단체협상 정부 개입,민간으로 확대되나

결국 개각 두 달여 만인 10월4일 이른바 ‘청와대 비서관 활극사건’이 터졌다. 사건의 내용인즉 사회정책수석실 소속 비서관이 경제금융비서관실을 찾아 고함을 치고 욕설을 하는 등 소란을 부렸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제비서관들이 노동 파트를 배제한 채 대통령에게 노사관계 업무까지 독단적으로 보고하면서 두 팀 간에 쌓여왔던 갈등이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어 10월8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특별기자회견을 열어“윤증현 장관과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등 정부의 핵심경제관료들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는 노동배제 정책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며‘노조말살 비밀TF 운영’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6자 회담 등 노조법 개정을 위한 대화국면이 열리면서 노조말살 비밀TF 의혹은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경제관료들이 노동정책의 주도권을 쥐고 쥐락펴락하는 것에 노동계가 경고장을 던졌다는 데의미가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경제관료들은 노조법 국회통과 직전까지‘현행법 시행에자신 있다’는 태도로 밀어붙였다”며“비록 노조법 개정안이 부족한 면은 있지만 경제관료들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경제관료와정면승부를 하기에는 노동계의 실력이 너무나 부족한 상태”라며“앞으로도 모피아가 노동정책을 쥐락펴락하는 하는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모피아 경제팀 출범 이후 노사관계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개별 사업장의 임금∙단체협상까지 정부가 일일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철도파업은 당사자인 노사 간의 대화는 실종되고 이명박대통령과 장관들의‘입’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지난해 11월28일 철도노조 파업 사흘째 이명박 대통령은‘공기업노조와 적당히 타협 말라’고 주문했고, 엿새째에는 윤증현 장관 주도로 정부부처 장관 합동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경제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등 합법적인 범위를 벗어난 불법파업”이라며 엄정대응 방침을 밝혔다.

민간 일자리창출이 고용불안 부메랑 될 수도

철도의 공공적 성격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일개 사업장의 노사관계에 대통령과 장관들이 우르르 나서‘타협불가’를 외치는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이에 대해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노동현장에 노동부장관이 3명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윤 장관이 정책집행을 하고 이 대통령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개입은 비단 철도노조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기재부가 공공기관 선진화정책 추진과제 1순위로‘노사관계 선진화’를 꼽은 이후 각 공공기관마다‘사용자의 단체협약 개정 요구→노조 반발→단협 해지통보’로 이어지는 사태가 줄을 이었다.

기재부는 최근 4차 기업환경 개선대책을 통해“현장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해 임단협과 관련한 노조의 불합리한 행태를 개선하겠다”며“공기업의 선도적인노사관행 개선 노력을 민간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7월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시행과 맞물려 개별 사업장 임단협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경제운용 방향은 첫째도 일자리, 둘째도 일자리에 맞춰져 있다. 윤 장관은 21일 국가고용전략회의 기자회견에서“경제가 성장하면 고용이 저절로 생겨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고용을 동반하는 성장’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간에서 투자확대에 따른 고용창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 과정에서 고용안정을 위한 제도적 빗장이 대거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국가고용전략 추진은 2008년대통령인수위원회 당시 노동부가 제안했던 사업이다. 일자리창출 부진에 대한 진단이나 사업방향도 상당부분 노무현 정부말기인 2007년 대통령 직속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가 보고서로 제출했던‘일자리창출과 사회통합을 위한 국가고용전략’내용과 일치한다. 다만 이번 국가고용 전략 내용이 지난 정부와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참여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사회적 대화’를 강조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노동계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이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노정 간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벌써부터 청와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연근무제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근로기준 선진화’를 내걸고 탄력 근로시간제도 확대와 단시간근로 시범실시 등을 검토하고있다.

백성균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이제라도 정부가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국가고용전략회의가청와대‘벙커’회의라고 불리는 비상경제대책회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백 부대변인은 “노동부도 아닌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주무부처로 돼 있고 여전히 민간과 노동의 참여나 협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우려했다. 계산이 빠른 경제관료들의 머릿속에 고용의 질은 없고 고용률만 들어 있다면 고용과 성장∙분배의 선순환 구조는 점점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