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취업 관련 인터넷사이트가 직장인 6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10명 중 7명은 회사에 출근만 하면 우울해진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4.4%가 회사 밖에서는 활기차지만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회사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우울증을 겪는 원인으로는 ‘불확실한 회사의 비전’,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과도한 업무량’, ‘상사와의 관계’, ‘조직에서의 모호한 위치’, ‘업적성과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 임금인상’ 등이 지목됐다. 경제위기 때는 고용불안 등으로 우울증을 겪는 직장인들이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는다면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08년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노동자를 감시하고 조합원들만 별도 라인에 배치한 사업장 사건과 관련해 "차별이 불안과 우울반응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의 발병원인이 됐다"며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쟁의행위 후 조합원만 별도 라인 배치

서울시 금천구에 있던 한 전자부품 생산업체에는 2002년 당시 생산직 여성노동자가 50여명,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남성노동자가 40명 정도 근무하고 있었다. 노조는 여성 생산직 노동자 2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같은해 4월 노조는 기본급 일당 4천500원과 직무수당 월 5만원 인상, 상여금 100% 인상안을 가지고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당시 노사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상견례를 했지만, 이후 수차례에 걸친 교섭에 대표이사가 출석하지 않아 교섭은 결렬됐다.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그러나 사용자측은 조정회의에도 불참했다. 결국 지노위는 조정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조정을 종료했다. 이에 노조는 파업과 위원장 단식농성, 선전전 등을 벌였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던 회사측은 같은해 11월, 노조의 업무 복귀를 허락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회사는 1층 부서의 특정 라인에만 조합원들이 모여 일하도록 전환배치를 했다. 회사측은 “전환배치에 불응하면 복귀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제조본부장은 노조와 면담을 갖고 노동자와 노조에게 사전에 충분한 양해를 구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고, 조합원들은 별도의 라인 작업에 응하기로 했다.

잇단 징계·CCTV 설치·야유회 지원금 거부…

노동쟁의가 끝난 후 회사는 세 차례에 걸쳐 징계위원회를 열고 업무방해, 비조합원 협박 등을 사유로 이듬해 2월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 5명을 징계해고했다. 나머지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견책 징계를 했다. 이들은 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법에서 모두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이 회사는 2000년 12월 종합사무실에 CCTV 6대를 설치했고, 2002년 12월에는 생산 1층 현장과 생산 2층 현장, 옥상 등에 10대의 CCTV를 설치했다. 노조는 “회사가 CCTV를 설치해 조합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한다”며 2003년 7월 서울관악지방노동사무소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생산시설에 CCTV를 설치한 것은 조합원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회사측은 비조합원들에게는 팀별로 야유회 행사 실시에 따른 지원금을 지급해 왔으나, 조합원들에게는 지원금 지급을 거부하는 등 조합원을 차별했다.

불안·우울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 발생

조합원들은 사업주의 폭행과 폭언, CCTV 설치 등 지나친 감시와 통제, 단체교섭 해태, 조합원 차별, 해고·징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불안과 우울반응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2005년 5월 근로복지공단에게 요양을 신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근로자들이 주장하는 사유는 사업주의 사업과 대립되는 노조 활동 또는 쟁의단계에 들어간 이후부터 연속되는 노조활동 중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업무적 사유라 할 수 없어 업무와 상병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불승인했다. 하지만 서울행법은 2008년 4월 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용자와 대립관계가 되는 쟁의단계에 들어간 이후의 조합원들의 활동은 회사의 업무라고 볼 수는 없어 쟁의행위 과정에서 나타난 사업주와의 갈등은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쟁의행위 후에 있었던 일련의 행위들, 즉 CCTV 설치를 통한 감시와 통제, 조합원 별도 라인 배치 등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 등의 수단과 방법·기간, 그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의 과정, 해고된 5명의 구제신청·행정소송 과정·부당해고 구제 이유 등을 참작하면, 쟁의행위 종료 후에 있었던 회사의 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질병의 발생원인 중 일부가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쟁의행위 중에 일어났더라도 쟁의행위가 종료된 이후에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상당한 정도에 이르러 이 사건 상병의 발생 또는 악화에 상당한 정도로 기여했다면 이 사건 상병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이 상당하다.”

관련판례
서울행법 2008년 4월4일 선고 2005구단11619 요양불승인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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