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의 한 사업장. 사업주가 기계에 절연장치를 하지 않아 막힌 부품을 청소하던 노동자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사업주는 안전보호조치 의무 위반으로 1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양벌규정에 따라 사업주의 법인에는 3만파운드의 벌금이 부과됐다. 이 사건은 텔레비전과 라디오·온라인 뉴스 서비스를 포함해 주요 지역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끌었다. 영국 안전보건청(HSE)은 이러한 공표효과가 사업주와 대중들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고 보고 있다.

#2. 노동자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 수원지법은 같은해 7월 이 사건으로 기소된 시공사 대표 등 7명에게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코리아2000 대표에게는 벌금 2천만원, 현장소장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방화관리자에게는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코리아2000법인에는 벌금 2천만원이 선고됐다.

노동자 1명을 사망하게 한 영국의 사업주와 노동자 40명을 사망하게 한 한국의 사업주가 사뭇 다른 처벌을 받은 것이다. 영국은 안전보호조치 의무 위반으로 사업주가 12개월의 징역형(실형)을 선고받은 데 반해, 한국은 벌금 2천만원이 전부였다.

우리나라는 2006년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를 최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으로 사업주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산안법 위반사건은 대부분 경미한 벌금형으로 처리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사업주가 실형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번주 안전포커스에서는 지난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수행한 ‘세계 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 제도와 처벌사례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산안법 형사처벌 현황을 분석하고 해외 제도와 사례를 국내와 비교했다.

법 위반 4천490건 중 구속은 고작 3건

연구원이 2004년부터 2007년 사이 산안법 위반 건수를 분석한 결과, 총 4천490건 가운데 구속된 경우는 3건에 불과했다. 1천건은 불기소처리돼 범죄가 인정되지 않았다.<표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결과’ 참조> 연구원은 “산안법 처벌규정이 미약해서라기보다는 산안법 위반사건을 사업주의 고의보다는 과실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5년에는 사망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법조치(955건)보다 행정조치(1천93건)가 더 많았다. 2007년에도 사법조치(732건)가 행정조치(758건)를 앞질렀다. 사법조치도 대부분 불구속 수사로 진행됐다.

산안법 위반내용에 따른 검찰의 구속 기준을 살펴보면 안전·보건상의 조치 의무 위반(7년 이하 징역,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인한 노동자 사망은 동시에 2인 이상 사망 또는 1년에 3건 이상 사망사고 발생시, 안전·보건상 조치 의무 위반, 유해·위험기구 등 방호조치 등 의무 위반(5년 이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은 3개월 이상의 중대재해자가 동시에 5명 이상 발생시 혹은 직업병환자 또는 중독자가 동시에 20명 이상 발생시에만 구속 수사를 한다.
 
작업중지 등 불이행, 유해작업 도급, 보건유해물질 제조, 보건유해물질 무허가 제조, 감독기관에 신고한 노동자 해고, 영업정지명령 위반 등(5년 이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관해서는 재범자 혹은 산재다발사업장이면 구속을 하고 나머지 위반사항의 법정형에 관해서는 구속하는 기준이 없다. 즉 불구속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평균 범칙금 두 배 증가

최근 영국에서는 처벌방법을 신체형(실형)보다 벌금형을 중심으로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HSE에서 나온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산안법(HSWAct)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1천28건이었다. 2002년·2003년에 비해 기소율은 줄었지만, 이 중 80% 이상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평균 범칙금은 1만2천896파운드로 2002년(5천890파운드)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개정 시행된 영국 안전보건법에 따라 처벌조항이 강화돼 앞으로 평균 범칙금이 더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의 산안법은 벌금 규정에 대해 제한이 없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의 벌칙 규정에 따르면 이 법을 심각하게 위반했을 경우 벌금의 제한이 없다. 다만 의회 지침을 통해 기업의 1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벌금의 규모를 정하고 있다. 의회 지침에 의하면 벌금액은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5%에서 시작하고 대략 2.5~10% 수준에서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심할 경우 그 이상이 부과될 수도 있다. 법원은 벌금 외에도 기업에게 그들의 범죄사실을 지역 혹은 국가의 언론에 광고하게 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공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산안법 처벌에 배심제 적용

연구원은 산안법 위반 사업주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국민 참여재판 현황을 살펴보면 살인·살인미수·강도·성폭행 등 중범죄에 관해서만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연구원은 국민참여재판을 산안법 위반 사업주에 대해서도 적용해 판결을 할 경우 산안법 위반의 심각성을 일반 국민들에게 알려 산안법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사업주의 위반사항이 고의적이고 계속적인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경우 산안법 벌칙규정의 최고형량을 적용할 수 있어 산압법 처벌을 실질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또 사업주의 법규 위반사항을 명백히 하기 위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에서 정한 구체적인 의무부과 사항에 관한 위반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우리나라 산안법은 산재 발생에 따른 안전조치 위반을 단순한 기술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어 처벌이 경미하다”며 “의무준수 규정을 좀 더 세부적으로 제정하면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시 위반이나 명시 위반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입증을 사업주가 하고, 사업주가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이에 따라 영국의 경우처럼 산안법 위반에 대해 벌금 하한선을 두고 상한선을 없애 경제적인 압박을 통해 벌금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산재발생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거나 중대재해 발생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공표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산업안전보건을 행정지도하고 감독하는 전문가인 근로감독관에게 위반사례를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국 기업살인법과 오바마의 ‘노동자 보호법’
영국은 지난 2008년 4월부터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한 노동자 사망사고를 단순 과실치사로 보지 않고, 살인죄를 적용해 사업주와 경영층을 구속함으로써 사업주의 책임의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주요 내용을 보면 기업이 행한 행위, 기업경영상조직 및 활동에 관한 위법행위나 주의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행위가 사람을 사상하게 하거나 사망하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법은 일반적인 기업 외에도 정부부처·왕실단체·군대·경찰·노조 및 경영자단체에도 적용된다. 일반 기업 외에도 사람을 고용해 업무를 행사는 기관이나 단체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한편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노동자 보호법안(PAWA)을 통해 산안법 규정을 강화하는 등 노동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PAWA에서 산안법 위반에 관한 벌칙을 대폭 강화했다. 고의적인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했을 경우 6개월의 징역형을 10년으로, 재차 위반했을 경우 1년의 징역형을 20년으로 늘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