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노동관계법 강좌와 설명회가 한창이다. 노동연구단체가 발 빠르게 시작한 데 이어 대형 노무법인도 가세했다. 가는 곳마다 노·사 담당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대한 이해와 대응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13년간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을 고려할 때 당연한 반응이다. 최근에는 노동부가 노조법 시행령까지 발표해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연초부터 노조법에 대한 '열공'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13년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노조법은 노·사 모두가 인정하듯 '누더기법'이 아니던가. 노조법 개정은 이제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개정된 노조법은 누구나 인지하듯이 ‘문제점투성이’다. 80년대 초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산별노조를 갈갈이 찢어 놓았고, 하나의 사업장에는 하나의 노조만 인정해 단결권을 제약했다. 기업별노조체제를 강요한 것이다. 노조법 개정은 종전의 구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했어야 했다. 그런데 노조법 개정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사업장에 복수노조를 허용했지만 단결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았고, 산별교섭은 아예 봉쇄했다. 그것도 기업측의 경쟁력 약화와 과잉 교섭비용이라는 볼멘소리에 단체교섭 창구단일화를 명시했다.
노조법 시행령에 노조끼리 자율적으로 결정할 기한(14일)을 명시했기에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사용자가 인정할 경우 예외적으로 교섭할 수 있음을 명시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원리를 빗대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섭대표단의 자율 결정이 교섭 자체를 무력화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교섭대표단과 단일요구안을 만들지 못해 교섭자체가 표류해 온 교직원과 공무원 사례가 그러하다. 앞으로 과반수대표노조가 아닌 소수 노조와 산별노조 지부(지회)는 교섭기회조차 얻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과반수대표노조마저 없을 경우 정부의 개입이 합법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노사 자율교섭이라는 취지는 실종되고, 단결권 보장은 말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조 전임자임금을 금지하고,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지만 ‘산 넘어 산’이다. 노사 대표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서 노조 활동시간의 한도를 정하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과도한 권한 부여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을 보면 근로시간면제심의위는 전임자수까지 제한할 권한을 갖는다.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노동부장관이 선정한 공익위원의 과반수로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노사정 합의체제지만 사실상 정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누더기가 된 노조법도 불만스러운데, 시행령마저도 정부 입맛대로 입법예고돼 걱정이 앞선다. 벌써부터 노조법 재개정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 시행령에는 중소영세노조나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지원안이 포함됐어야 맞다. 당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에도 "중소영세노조에 대한 지원안을 정부가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6자 노사정 협의와 국회에서도 이런 요구가 나왔다. 그런데 국회나 정부는 끝내 이를 외면했다.

노조법 개정의 취지는 노동자에게 단결권을 돌려주고, 노조 스스로가 자립하는 길을 찾아가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선택권을 주되 기업별노조는 산업별노조로 크게 뭉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노조가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시대에 기업별노조가 적합하지 않고, 전체 노조 가운데 산별노조가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정부는 단체교섭 창구단일화와 근로시간면제심의위를 운영하는 데 최대한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전임자임금이 금지돼 위기에 몰린 중소영세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지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노동부는 다음달 10일까지 입법예고된 노조법 시행령에 대한 이런 비판과 제안을 최대한 수렴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노조법을 둘러싼 극한 노사갈등을 줄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노조법을 빠른 시일 안에 재개정하는 것이 맞다.

법 개정 투쟁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법과 시행령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누더기가 된 노조법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과 함께 소외된 중소영세·비정규직 노조를 끌어안는 데 앞장서야 한다. 경영계는 개정된 법에 기대 단체교섭을 일방적으로 미루거나 해태하지 말아야 한다. 노조법 개정 2라운드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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