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김영희(가명·31)씨는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닌다.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있지만 아이가 아플 때면 회사와 친정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한다. 김씨는 "부모에게 또 아이 양육을 맡기는 게 죄스럽고 아이에게도 미안하다"며 "회사에서도 '역시 여자는 결혼하면 핑계가 많아진다'는 식으로 눈치를 준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수진(가명·32) 씨는 '엄마'가 되는 게 꿈이다. 이씨는 출산을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를 보며 정규직이 될 때까지 임신을 미루고 있다. 이씨는 “기존의 모성 관련 보호법도 허울뿐”이라며 “이런 현실은 모르고 출산과 육아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분위기가 원망스럽다”고 푸념했다.

이들의 우울한 자화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14일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 1천6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4.7%가 "산전후휴가 신청에 직장 상사나 동료들의 눈치가 보인다”고 답했다. 또 15.8%는 산전후휴가 신청에 퇴직압력을 받았고, 8.6%는 실제로 퇴직을 당했다. 조사결과가 보여 주듯 제아무리 모성 관련 보호법과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문화적인 부분의 변화 없이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 해결을 위한 대대적인 공익광고를 하며, ‘일-가족 양립’을 위한 각종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의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임신하는 순간부터 회사 눈치를 보고, 아이를 낳는다 해도 맡아 키워 줄 곳이 없고, 양육을 맡긴다 해도 그 비용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에 대해 사회는 아무런 대안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유연근무제’도 마찬가지다. 경력이 끊긴 여성들에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주기보다 처음부터 법에 보장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불이익 없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근본 대책이지 않을까. ‘아이는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말 대신, ‘출산과 양육은 사회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실천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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