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차가 출발했다.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든 정민은 느리게 걸어 집으로 왔다. 뒤집어져 있는 큰 아이 한벗의 슬리퍼,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은 자신의 운동화를 바로 놓고 이젠 날이 덥다며 남편 현구가 던져놓고 간 잠바를 주워 소파에 걸쳤다.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설거지통에는 네 식구가 한 끼 식사를 마치고 담가놓은 그릇들이 수북했다.

한솔이를 얼마나 더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까.
그릇의 거품을 헹구어내던 정민은 손길을 멈추었다. 습관처럼 한숨을 길게 쉬었다. 벌써 5개월째 남편의 월급은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다. 어떤 달은 50%, 어떤 달은 10%가 나왔다. 그나마 회사가 이천육백 명이 넘는 인원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뒤 최근 두 달은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 겨울을 나느라 청약저축도 해약했고 보험도 해약했다. 그것도 모자라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 한벗의 태권도 학원과 학습지마저 끊었다. 가만히 손놓고 지낸다면 이제는 생활비를 생계형 대출을 받아 충당해야 할 판이었다.
전화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얼른 정신을 차리며 쏟아지는 수돗물을 잠근 정민은 고무장갑을 벗었다.

언니 나에요.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남편 현구와 함께 입사해 차체조립2팀에서 근무하는 설기원의 아내 순애였다.
“순애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잘 지내기는. 나 요즘 애 아빠 땜에 불안해서 미치겠어요.”
“왜 농성장에 들어가겠대?”
 

정민이 재빨리 물었다. 회사에서 발표한 정리해고 명단이 나오지 않은 이 시점, 어느 집이든 아내들을 불안하게 하는 건 남편들이 파업에 참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그건 아닌데 자꾸 뒷머리가 아프다고 그래요. 오밤중에 애 기저귀 가느라고 깨보면 베란다에 멍하니 서있고. 하도 놀라서 뭐하는 거냐고 물으니 그냥 먼 산을 보고 있는 거래요. 무서워 죽겠어요. 과장한테 희망퇴직하라는 전화를 받고나서는 벌써 며칠 째 그렇게 서서 한숨 쉬다 담배 피우다 그러기만 해요. 머리 아프다는 사람이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피우는 것도 그런데, 이건 아주 줄담배야. 잠시도 손에서 놓질 못해요.”

순애의 말을 듣던 정민은 베란다에 서있는 설기원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섬뜩하였다. 사위가 깜깜한 어둠 속, 그것도 고층 아파트 20층 베란다에서 남편을 발견한 순애는 오죽 놀랐을까 싶었다.

“어쩐다냐. 다들 그냥 한숨을 입에 달고 사니. 근데 순애야. 담배 피우는 거는 뭐라고 하지 마. 한벗이 아빠도 또 피우잖아. 너도 너무 심하게 걱정 말고. 그나저나 머리가 아프다니 당장 병원부터 가봐야겠다. 신경을 써서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머리 아픈 건 오래 두지 말라더라.”
“알았어, 언니. 괜찮아지겠지? 이제 뭐 차차 다 나아지겠지?”
“그럼.”
정민이 부드러이 순애를 안심시켰다.

통화를 끝낸 정민은 저도 모르는 새 베란다로 향했다. 설기원이 바라보았다는 먼 산을 찾아보았다. 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예 보이지 않는 평택. 드넓은 하늘만이 사막처럼 광활한 가운데 정말 저 끝 어렴풋이 떠있는 낮은 산이 눈에 들어왔다. 안성 쪽이었다. 남편 현구가 떠올랐다. 큰 아이 한벗이 태권도 학원마저 끊어야 했던 것이 충격이 되었는지, 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하고 회사가 이에 맞서 직장폐쇄를 한 후에는 이삿짐 센터 아르바이트를 다니고 있었다. 순애의 남편 설기원이 받았다는 전화가 문득 생각났다. 현구 역시 그 전화를 받았었다. ‘파업에 참여하지 마라. 해고 대상자가 된다.’ 뿐 아니라 ‘참여한 개개인에게는 손해배상을 물어 가압류를 할 것이다.

노조의 눈치도 보일 테니 차라리 이참에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건 어떤가. 희망퇴직을 하면 정리해고자들과 달리 재입사를 시킬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희망퇴직 신청자들이 적으니 협박을 해대는구만! 두고 봐라 이놈들. 절대 내 발로 고이 걸어 나오지는 않을 테다.’ 부서원 대부분이 똑같은 전화나 문자를 받은 것을 안 현구는 별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

이내 한숨을 소리 나게 쉰 정민은 설거지대로 돌아왔다. 회사가 인원 감축을 위해 희망퇴직자를 받고는 있지만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으니 상황은 쉬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서둘러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은 다 줄인다 쳐도 둘째 아이 유치원만큼은 계속 보내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마트가 많이 바쁜가?’
아내 정민에게 세 번째 전화를 하는 현구는 마음이 급했다. 혼자 먼저 갈까 싶어졌다. 이번에도 전화를 안 받으면 아무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기원이 떠올랐고, 반쯤 포기했던 아내 정민의 목소리도 났다.
“자기야 설기원이 죽었댄다. 나 지금 일하다 말고 병원에 가는 중이야. 빠져나올 수 있으면 자기도 얼른 와.”

설기원을 떠올리고 있던 현구는 다짜고짜 정민에게 그의 부음을 알렸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야 누가 죽었다고?” 정민 역시 몹시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설기원!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아침에 병원 가려고 나섰다가 쓰러졌다는데 평택병원이라니까 얼른 나왔다 가.”
“지금?”
“그래 지금. 그러니까 전활 여러 번 한 거지 달래 그랬겠어? 마트 사장도 설기원을 아는 사람이니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거 아냐.”

현구가 짜증을 내는 듯한 투로 대답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러나, 싶어졌다.
세상에, 소리를 연발하던 정민은 손전화 뚜껑을 닫았다. ‘괜찮아지겠지? 이제 뭐 차차 다 나아지겠지?’ 묻던 순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게 무슨 일이니. 뭐가 어떻게 돼 가는 거니! 순애를 향해서인지 자신을 향해서인지 아니면 남편 현구를 향해서인지 모를 말이 절로 나왔다. 바나나 위에 랩을 씌우는 손이 후들거렸다.

“순애야.”
현구와 함께 조문을 마친 정민은 넋을 놓은 채 앉아있는 설기원의 아내 순애에게로 갔다. 정민을 보자마자 순애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정민은 말없이 순애를 끌어안았다.

“언니 어떻게 살아. 나 어떻게 해야 돼?”
곧 눈시울이 뜨거워진 정민은 순애의 등허리를 토닥였다. 순애의 쌍둥이 아이들과 한솔이와 함께 유치원을 다니던 영지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젖먹이들의 분유 값이 만만치 않다며 영지가 유치원을 그만 둔 것은 벌써 석 달 전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뇌출혈이 생긴 거래. 그래서 머리가 그렇게 아팠던 건데, 나아지려니 하고는 그냥 며칠을 참았던 거야. 답답하다며 노조 사람들을 한 번 만나러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러라고 할걸. 진짜 해고가 되면 어쩌냐고, 회사 말대로 가만히 기다려보라고 내가 말렸거든. 곧 해고자 명단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내가 그랬어. 가보라고 할걸. 이럴 줄 알았으면 일이야 어찌 되든 속이나 시원하게 가보라고 할걸.”
잠시 눈물을 멈추었던 순애가 한탄을 하듯 말했다.

“자책하지마. 네 잘못이 아니잖아. 나도 한벗 아빠한테 너처럼 말을 한걸 뭐. 그냥, 그냥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보다 생각해. 정신 놓지 말고. 응? 애들이 있잖니.”
정민이 부들거리는 순애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순애가 겁먹은 아이처럼 정민의 손을 마주 꼭 잡았다. 떨리는 것은 손뿐이 아니었다.

“순애야. 영지 엄마야!”
한 손으로는 순애의 어깨를, 또 다른 손으로는 순애의 손을 감싸고 있던 정민이 고개를 돌렸다. 노조 대의원 민영식의 아내 경희였다. 순애는 같은 나이인 경희를 부르며 다시금 오열을 터뜨렸다.
“그래 우선 이거 먹자. 애들 생각해야지. 니가 자꾸 이러면 걔들은 어쩌니.”
경희가 우황청심환을 꺼내 순애 앞에 내밀었다. 순애가 눈물 젖은 얼굴을 끄덕이며 입을 벌렸다.

영정 앞에서는 작업복을 입은 이들 몇이 절을 올리고 있었다. “아이고 형님, 해고가 되어 밖에 나가면 뭘 해 먹고 사냐고 만날 걱정이더니. 그래도 힘내자고 언제나 우리한테 그러더니. 이게 웬일이세요!” 곧이어 통곡하는 소리도 났다.
“도장팀에서 일하는 고향 후배래요.”

영정 앞에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섰는 정민의 어깨를 경희가 쳤다. 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희와 함께 남편 현구와 민영식이 앉은 자리로 갔다. 자리에는 어느새 밤에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택시운전 면허 시험공부를 한다는 명남도 와 있었다. 김승철 네만 아직 안 왔을 뿐 설기원 네를 비롯하여 모두 틈만 나면 모여 어울리는 입사동기 가족 친목계였다.

“그렇다고 덥석 희망퇴직을 할 수는 없잖아. 재입사를 시킨다고 하고선 안 시키면 그땐 어떻게 하는데? 그러니까 회사 말 한 마디에 울고 웃지 말고 우리 스스로 상황을 변화시켜야지. 노조 입장도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 길밖에 없어. 함께 가야지. 노동시간이 반으로 줄어서 당장은 좀 임금이 적어지더라도 누구 하나 해고되는 사람 없이 같이 가는 길을 열어야지.”

이미 이야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던 듯 민영식이 말했다.
“그래, 우리야 일한 죄밖에 더 있냐. 나쁜 놈들. 대주주라는 상하이차 놈들은 4년 동안 왜 투자약속도 하나 안 지키고 신차 개발도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법정관리를 신청한 거야? 정부에서는 왜 또 그걸 받아들여서 노동자들만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하고?”
현구가 민영식의 말에 동조하며 입을 열자 민영식이 다시 말을 받았다.
“처음부터 쌍용차 기술을 자기 나라인 중국으로 빼 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지. 제대로 키울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거야. 대우차 하고 비교하면 확연하잖아. 소위 말하는 먹튀자본인 거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기술을 빼 가는데도 정부는 손 놓고 있었고.”
마주 앉은 명남에게 눈인사를 한 경희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국가에도 책임을 물어야죠. 관리감독의 책임. 쌍용차 기술을 몰래 유출하고, 연구소 직원들까지 중국으로 불러들여 일 시킨 게 밝혀졌는데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어. 쌍용차가 이전 정부 때 매각됐으니 이전 정부라면 이부터 벅벅 갈고 보는 현 정부로서는 잘 된 일 아닌가요? 이 문제를 책임 있게 잘 해결하면 노동자들에게 정부 이미지 자체가 달라질 텐데.”
“바랄 걸 바라야지요. 부자들을 위해서 법까지 바꾸는 판인데 노동자가 눈에 들어오나요.”
명남이 경희의 말에 대꾸를 했다. 근심 일색이던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슬며시 배어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던 정민은 유채꽃이 노랗게 장관을 이루던 평택항이 생각났다. 지난 초봄 회사가 인원을 대량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때였다. 우리가 이제 언제 어떻게 뿔뿔이 흩어질지 모르니 마지막으로 놀러나 한 번 가자는 제안이 나왔고 아이들까지 대동한 채 평택항에 갔었다. 몇 해째 보아온 유채꽃이건만 그토록 어여쁜 줄 몰랐고 자주 보는 서해대교건만 그리 웅장한 줄 몰랐으며, 개펄이며 바다를 물들이는 황금빛 노을이 그리도 고운 줄 몰랐던 그날. 술에 취해 조개구이집이 떠나가라 노래 부르던 남자들 중 설기원은 남편 현구와 함께 눈물까지 글썽였었다. 뿔뿔이 헤어진다한들, 이렇듯 영 헤어지게 되는 사람이 생길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우리가 이젠 이런 데서나 얼굴을 보게 되네요.”
침묵을 깨고 정민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요. 김승철 씨네만 아직 못 오고 다 모인 셈이네요.”
우울한 얼굴로 앉았던 명남이 맞장구를 쳤다.
“고인이, 설기원 씨가 답답하다며 노조 사람들을 한 번 만나러 가고 싶다고 그랬대요.”
정민이 다시 말을 이었다. 노조 대의원인 민영식이 눈가를 훔쳤고 사람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궜다.
“나야말로 공장에 좀 가봐야겠다. 속이 터질 것 같애서 여기 있는 것도 고역이다.”
현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같이 가! 놀란 정민도 현구를 따라 일어났다.

정민은 공장으로 들어가는 남편 현구와 민영식의 뒤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정문 옆 천막 앞에는 네댓 살 된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뛰어놀고 천막 뒤에는 우리 아빠의 일자리를 지켜주세요, 라고 쓴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어 코가 시큰해졌다. 아이 하나가 엄마를 부르며 들어가는 천막 안에는 일제히 연두색 옷을 입은 여자들이 무슨 이야기인가를 심각하게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 옆에 붙어 있는 ‘울 남편 짱!’이란 글귀를 보자 정민은 금세 감정이 바뀌어 웃음이 났다. 저이들이 말로만 듣던 가족대책위원회 사람들이구나 짐작하며 삼거리를 향해 돌아섰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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