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휴가 끝나자마자 기록적인 폭설이 서울을 삼켰다. 무릎까지 쌓인 눈길 위에 버스와 자가용들이 뒤엉킨 채 멈춰 섰다. 도로는 기능을 잃었고, 서울은 마비 상태에 놓였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6일. 꽁꽁 얼어붙은 날씨 탓에 쌓인 눈은 녹지 않았지만 도로는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과의 전쟁’을 벌인 서울시 도로보수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9시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성동도로교통사업소. 김영철(58)씨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4일 출근한 후 이틀을 꼬박 새웠다는 김씨는 아침이 밝은 뒤에야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날 밤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을지로 4가 중앙분리대에 쌓인 눈을 치우고 왔어요. 중앙분리대는 제설장비가 못 들어가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 손으로 치워야 합니다. 어찌나 춥던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되면 장갑을 두 장씩 끼고 털장화를 신어도 소용이 없어요. 아직도 손발에 감각이 없네요.”

4일과 5일 을지로 일대 통행량을 확보하기 위해 임시로 길가에 밀어 놓은 눈들이 얼음으로 변했다. 김씨는 삽으로 눈덩이를 쪼개 가며 치웠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장 특별지시라서 야간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며 지친 얼굴로 사업소를 나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폭설이 내린 4일 기자들 앞에서 눈삽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자리를 노리는 야당마저 이에 가세해, 시의 제설작업은 어느새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덕분에 밤새 눈을 치워야 하는 도로보수원들만 죽을 맛이다.



1년치 염화칼슘 하루에 동나

김씨와 교대한 김진홍(58) 반장은 사업소 뒤편 야적장에서 염화칼슘을 담은 포대들이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날 하루 동안 사업소에 보관 중이던 300톤의 염화칼슘이 모두 동이 났다. 텅 빈 야적장으로 부는 바람소리가 매섭다.
“1년치 염화칼슘을 하루 만에 다 뿌렸어요. 3년 동안 1톤짜리 포대에 나눠 담아 차곡차곡 모아뒀는데 없으니까 허전하네요. 김 반장의 등 뒤로는 염화칼슘 포대 대신 부서진 플라스틱 팔레트가 나뒹굴고 있었다. 몇 년간 4~5톤의 염화칼슘 무게를 받치고 있다가 깨진 것들이다.

김 반장의 휴대전화는 수시로 울렸다.
“수도관이 동파됐다고? 오늘은 힘들어. 눈 때문에 신경 쓸 틈이 없어.”
“도로 파손된 건 좀 이따 하자고. 지금은 너무 바빠.”
서울시에는 이곳을 비롯해 6곳에 도로교통사업소가 있다. 사업소의 업무는 다양하다. 시가 관리하는 주요도로(이면도로는 구 관활)의 보수와 관리는 물론 주·정차 단속도 한다. 김 반장과 같은 도로보수원은 보통 1개 사업소에 15명이 근무하며, 3개 근무조로 편성돼 있다. 평상시에는 보도블럭도 교체하고, 움푹 파이거나 갈리진 간선도로를 아스콘을 사용해 수선하는 게 주 업무다.

하지만 연말부터 눈 때문에 교통마비 증상이 지속되면서 도로보수원들은 제설작업에 총동원됐다. 언론들은 "기록적인 폭설 앞에 제설작업이 무용지물이었다"고 보도했지만, 지난 연말(12월27일) 고작 2.2센티미터의 눈이 내렸을 때도 도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인력이 크게 부족한 탓이다.


염화칼슘 상·하차는 상용직, 살포는 하청노동자

이동엽 공공노조 서울시상용직지부장은 “보통 1개 사업소가 4~5개 구 주요도로와 간선도로·외곽고속도로 등을 관리한다”며 “5년 전만 해도 30여명이 근무했는데 신규채용이 없어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도 사업소당 20명을 적정인력으로 보고 있다.
성동도로교통사업소는 야간에 이어 이날 오후에도 을지로 일대 중앙분리대 잔설 제거작업을 할 예정이었지만 취소했다. 인천항에 도착한 중국산 염화칼슘 27톤이 이곳을 향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 제설작업 나가기는 틀렸네요. 염화칼슘 하차작업만 해도 보통일이 아니에요. 을지로는 원래 우리 관할이 아닌데 워낙 통행량이 많은 곳이라 긴급지원을 요청받았거든요. 근데 우리 코가 석자라….”
곳곳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서울시는 부족한 도로보수원 채용 대신 장기적으로 업무를 민간위탁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실제 도로에서 염화칼슘을 뿌리는 일은 건설기계·장비업체 소속 하청노동자가 맡는다. 도로보수원들은 살포 전까지의 업무를 담당한다. 염화칼슘을 물에 녹여 염수를 만들어 살포기에 싣는 작업이다. 살포기(스프레더)를 운전하는 하청노동자들은 소금과 함께 염화칼슘이 든 물을 도로에 뿌려 눈을 녹인다.
“독성이 강한 염화칼슘이 가로수를 죽인다고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하는데요. 그걸 다루는 우리는 오죽하겠습니까. 염화칼슘 옮기고 물에 녹이고 한 날이면 비누로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가 않아요.”
더 고달픈 건 시민들의 항의전화다. 김 반장은 “염화칼슘 뿌리면 환경오염시킨다고 뭐라 하고, 안 뿌리면 일 안 한다고 뭐라 해요.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고 우리만 들들 볶여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안 보인다”

오전 11시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 스키장갑과 털장화로 중무장한 북부도로교통사업소 박종환(56)씨의 얼굴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다. 경광등을 손에 든 박씨는 차량통제하랴, 작업지시하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 치고 있었다.
1미터가 넘는 삽날을 부착한 페이로더가 눈을 쓸어 담으며 지나간다. 그 옆에서 도로보수원 4명이 눈삽으로 잔설을 몰아 교차로에 쌓는다. 오전 10시부터 1시간 가까이 작업했지만 1킬로미터 정도 밖에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15톤 트럭 3대가 치워 놓은 눈을 싣고 떠났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안 보이네. 살다 살다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 봤어요.”
박씨 뒤에 서 있던 꼬리를 문 차들이 시끄럽게 경적을 울린다. 제설작업 때문에 도로 1개 차선이 막히자 운전자들의 짜증은 고스란히 도로보수원들을 향했다.
오후 들어 맑게 게인 하늘에 모처럼 얼굴을 비춘 태양이 반갑다. 김성수(50)씨가 인도 위에 시커먼 돌덩이처럼 굳은 눈더미를 부수고, 점자블럭 사이에 끼어 얼어붙은 눈조각을 하나하나 쪼갰다. 쌓인 눈이 말끔히 치워지자 저 멀리 조심조심 걸어오던 할머니의 표정도 함께 녹는다.
오후 6시께 이들의 일과가 끝나자 교보문고 앞에서 경복궁 사거리까지 도로 위에 쌓인 눈들도 사라졌다. 박씨는 “오늘 밤 근무조도 고생 꽤나 하겠다”며 혀를 찼다.
도로보수원들에게 겨울은 낭만의 계절과는 거리가 멀다. 어렸을 때 눈을 좋아했던 박씨의 아이들은 철이 들면서 눈이 오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아빠가 눈만 오면 새벽에도 집을 나가니까 애들도 눈 오면 지긋지긋하다고 하더라고요.”


일용직에서 상용직, 다시 무기계약직 그러나 ‘단순노무원’

서울시 도로교통사업소에서 일하는 도로보수원은 서울시가 직접고용한 무기계약직이다. 지난 91년 일당을 받는 일시사역인부(일용직)에서 상용직으로 전환된 뒤 2007년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행정안전부는 이들을 ‘상근인력’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상근인력이란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직접 고용하는 환경미화원·도로보수원·공원관리원 등 단순노무에 300일 이상 상시 고용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기관장이 직접 고용했다. 보통 1년 정도의 계약기간을 설정한 후 형식상 재계약 절차를 두고 대부분 반복갱신했다. 성동도로교통사업소 김 반장의 경우 80년 5월부터 30년째 서울시 도로보수원으로 일하고 있다.
상근인력의 직종은 매우 다양하다. 환경미화부터 도로보수·하수관리는 물론 한강과 남산 같은 공원을 관리하거나 시청 앞 잔디밭을 가꾸는 등 안 보이는 곳에서 도시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고 있다. 시청과 구청의 기관장 비서업무나 행정보조업무도 대부분 상근인력이 담당한다. 서울시에만 약 1천180여명의 상근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공공노조 서울시상용직지부는 지난해 장기파업을 벌였다. 서울시가 잠정합의안을 뒤집고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지부가 맺은 단협에는 ‘업무의 일부를 외주로 처리하거나 하도급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노조와 교섭을 통해 결정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서울시는 이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보수 업무는 앞으로 효율적인 민간위탁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며 “신규채용을 안 하는 식으로 정원을 줄여 왔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단협 해지 통보는 노조활동을 대폭 축소하는 선에서 타결됐지만 민간위탁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도로보수 업무가 민간위탁될 경우 어렵사리 전환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다시 일용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광화문 제설작업 현장에서 만난 김발현(55) 북부도로교통사업소 도로교통팀장은 “이번 폭설에 인력부족으로 곤혹을 치렀다”면서도 “인력 문제가 만성화돼 있지만 시는 신규채용보다는 용역을 투입해 해결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재난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서울시는 이번 폭설이 ‘재난’ 수준이었기 때문에 제설작업이 무용지물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심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까지 무분별하게 민간에 위탁할 경우 재난은 ‘인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서울시도 이번 폭설이 재난이라고 밝혔습니다. 재난에 대비하려면 상용직의 인원충원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지난 6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동엽 공공노조 서울시상용직지부장은 “최소한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까지 제설작업을 해야 하는데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2차선 도로에 1개 차선이 눈이 쌓여 교통이 지체되고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도로교통사업소당 최소한 30명의 도로보수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평균 15명꼴인데 매년 5~6명이 정년퇴임으로 줄어들고 있어요. 신규채용이 멈춘 지는 벌써 5년이 넘었어요.”
이 지부장은 서울시의 제설작업이 염화칼슘 살포에 집중돼 환경피해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눈을 치우는 장비와 도로보수원들이 부족해 발생하는 문제"라며 “상용직을 줄이고서는 결코 서울은 맑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도로보수원뿐만 아니다. 한강과 남산을 비롯한 서울시 산하 자연공원을 가꾸고 청소하는 공원관리원, 하천별로 구역을 나눠 맨홀과 빗물펌프장을 치우는 하수관리원도 오염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이 지부장은 인력충원과 함께 “상용직에게 직제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밖에서 직업을 소개하더라도 ‘상용직’이나 ‘무기계약직’이라고 할 때마다 비애가 느껴진다고 했다. 고용형태가 아닌 업무로 자신의 직업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상용직이 그동안 해 온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용직의 보수는 높은 편이다. 91년 상용직 전환 당시 건설협회에서 정한 일용인부의 일당을 기본으로 임금을 산정했기 때문이다. 공무원 초봉(2천200만원)보다 500만원 정도를 더 받는다. 이 지부장은 “환경미화원의 경우 2006년 전국적으로 임금을 통일시키고 체계도 개편했다”며 “도로보수원을 비롯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상용직도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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