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노사정 관계자들의 눈과 귀가 모두 노조 전임자임금 문제에 쏠려 있다. 산별노조들은 올해 사업계획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물론 핵심은 전임자임금 문제 대응방안이다. 최근 2년간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경제위기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면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올해 주목해야 할 노동안전보건 이슈가 적지 않다. 정부가 처음으로 위험성평가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지난해 발족된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가 다음달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노동자들은 대규모 소송단을 꾸려 행정소송을 시작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올해 주목해야 할 안전보건 이슈를 짚어 봤다.

올해 첫 위험성평가 시범사업

노동부는 올해 처음으로 위험성평가 제도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위험성평가 제도는 사업장 내 위험요인을 잘 아는 노사가 협력해 지속적으로 유해·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해 나가는 종합적인 위험관리활동을 위해 도입됐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돼 있는 안전보건 관리활동이다. 노동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제조·건설업 등 3천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위험성평가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태지만 아직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확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외국에서 잘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 하더라고 국내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위험성평가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어떤 유해물질이 사용되고 있는지 노사가 함께 찾아내고 유해성의 정도까지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돼야 하고 노동자에게 평가결과가 제대로 전달돼야 한다.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는 노사가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마련한 정책을 관련 기관들이 대행하고 있다”며 “어떤 제도를 도입하느냐보다는 어떤 목적과 내용으로 실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작업환경측정 제도를 예로 들며 “어느 나라도 1년에 두 번 이상 정부가 강압적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하도록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며 “많은 돈을 투자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업장에 안전보건 문화가 정책돼 있지 않고,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국내 상황에 비춰 볼 때 노사자율 안전관리가 과연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조선업의 경우 2006년 노사 자율안전관리 정책이 도입된 후 조선소 내 안전관리가 더 허술해졌다는 주장이 노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조선업 노사 자율안전관리 정책은 사업장 안전관리를 노사가 함께 평가하고 우수업체로 선정되면 안전보건감독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노사자율 안전수준평가에 노동자 대표가 배제된 경우가 86.7%에 달했다. 결국 노사자율 안전관리에 노동자의 참여가 얼마나 보장되고 평가결과가 현장에 반영되는지 여부가 시범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늘고 있는 서비스산업 재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서비스산업 재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집계된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음식숙박업·건물과 종합관리사업·위생 및 유사서비스업 등 기타 산업으로 분류되는 서비스산업 재해자는 2만8천101명으로 제조업(2만4천448명)과 건설업(1만5천106명)을 뛰어넘었다. 2008년 같은 기간에 비해 재해자는 무려 14.7%나 증가했다.<표 참조>
 

 



서비스산업 재해 예방을 위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올해 전담조직인 서비스업재해예방팀을 신설했다. 공단 지역본부와 지도원에도 서비스업무팀이 생겨 올해부터 본격적인 사업이 추진된다. 가장 많은 재해가 발생한 업종을 중심으로 직능단체를 통해 교육과 캠페인을 지원한다.

각종 국책사업으로 인한 산업재해도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희망근로사업으로 인해 임업 재해자가 90% 이상 급증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는 올해는 건설업 재해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7월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주요 국책사업 건설공사 안전관리 개선 종합대책’을 확정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공공발주기관의 재해율을 공표해 공공기관장들이 건설사고 방지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고, 4대강 사업 등 주요 국책사업을 특별관리대상사업으로 선정했다. 또한 건설업체가 선정해 오던 안전진단업체를 발주청이 선정하기로 했다.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 본격 가동

지난해 4월 양대 노총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 노동안전보건단체와 정치권이 참여해 발족한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가 올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현장의 발암물질을 감시하고 대체물질 사용을 확산하는 운동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발암물질 사용실태와 유통현황을 조사해 온 감시네트워크는 다음달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기자회견에서는 지난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20개 사업장을 상대로 시범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된다. 감시네트워크는 올해 금속노조 1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발암물질 사용실태 조사를 벌인다. 4월에는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발암물질을 밝히고 사회적으로 알리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어떤 사업 준비할까

민주노총과 공공노조·노동환경건강연구소·민주연합노조·홍희덕 의원실은 지난해 공동으로 환경미화원 안전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결과는 다음달 말 최종 보고서로 공개될 예정이다. 조사결과 환경미화원이 먼지·미생물 노출로 인해 소방관이나 경찰보다 사망률이 더 높은 위험한 직군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2008년 큰 성공을 거둔 서비스노동자 의자캠페인처럼 캠페인단을 구성해 환경미화원을 위한 탈의실·샤워실 설치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대대적인 홍보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민간위탁 문제도 의제화한다는 방침이다.

한국노총은 지난해에 이어 취약계층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안전보건교육과 방송모니터링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5~6개국의 이주노동자를 강사로 양성해 교육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는 이주노동자 근골격계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안전보건 방송 모니터링 사업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한국노총 조합원을 모니터링 요원으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조기홍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국장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안전보건 부분을 삽입하고 안전보건 평가지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안전보건 우수프로그램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의 현장 실태조사에 한국노총 산하 사업장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는 이 밖에도 11일 시작되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집단 산재소송·석면 관련 질환 인정기준과 보상 문제가 노동계의 주요 안전보건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삼성 백혈병 집단 소송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도입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의 인정기준·업무상 질병의 입증책임 등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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