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5일 강릉에 다녀왔다. 최근 수임받은 업무위탁금지 가처분사건의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관할법원인 강릉지원에 당직접수를 하고 온 것이다.
강릉시가 이번주에 면지역 음식폐기물 수집차량 매각을 위한 입찰절차를 진행하면서 일정이 다급하게 돌아갔다. 음식폐기물 수집업무를 하는 조합원인 환경미화원의 업무차량이 매각된다면 그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 벌써 수개월 동안 노동조합은 강릉시가 음식폐기물 수집업무를 민간위탁하려는 것에 대해 반대해 투쟁해 왔다. 그럼에도 강릉시는 면지역 음식폐기물 수집업무를 기존 동지역 수집업체에게 확대·대행하도록 추진해 왔고, 급기야 면지역 수집차량을 매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직영으로 운영하는 청소시설 관리업무에 대해 강릉시는 민선 4기 출범 당시부터 민간에 위탁하고자 했다. 이에 반발하자 민간위탁이 아니라면서 위와 같은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수개월 동안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는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대립하고 있다. 환경미화원인 조합원들은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불안해하면서 노동조합에게 법적 대응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가처분신청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연휴 첫날이어서 고속도로는 계속 정체였다. 이날 오랜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보낸 후 저녁 무렵에야 강릉지원에 접수할 수 있었다.

2. 이날 강릉법원에서 접수는 간단했다. 당직접수자에게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났다. 면지역 음식폐기물 수집업무를 이미 민간위탁한 기존 동지역의 수집업체에게 확대 대행하도록 하는 것에 대한 현재 노사 간 논란도 사실은 복잡하지 않다. 노동조합과 강릉시는 조합원의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노동조합과 합의해 할 수 있도록 이미 단체협약에서 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면지역 음식폐기물 수집업무를 기존 동지역 수집업체에 확대 대행이라는 방법으로 위탁하면서, 강릉시는 노동조합과의 아무런 합의 없이 추진하고 있다.
 
강릉시는 단순히 환경미화원의 민간위탁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단체협약은 조합원의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조합원을 위탁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비록 조합원을 민간위탁업체로 이전시키지 않더라도 조합원의 업무를 위탁하는 한 조합과 합의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강릉시가 추진하고 있는 면지역 음식폐기물 수집업무를 동지역 수집업체에 확대 대행토록 하는 것은 단체협약상 당연히 노동조합과 합의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런데도 강릉시는 이것을 무시하고 조합원의 업무를 위탁하고자 하고 있다. 단체협약을 준수한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강릉시가 단체협약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단체협약은 무시됐고 노동조합은 무시당했다. 강릉시에서 노사 간 신뢰는 무너졌다.

3. 단체협약에서 노동조합과의 합의·동의 등의 조항을 두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의 행위에 대한 절차적 규제를 통해 조합원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강릉시 환경미화원에 관한 단체협약 조항도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 기존 조합원의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고자 할 경우 조합과 합의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합의조항은 무시됐다. 합의조항·동의조항은 많은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에 규정돼 있지만 사용자들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강력히 대응할 수 있는 사업장에서는 드물게 발생하고, 그렇지 않은 사업장에서는 빈번히 발생한다. 이 때문에 노조간부들은 노사관계에서는 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체협약으로 아무리 체결해 놓아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충분히 제압할 정도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추고 있는 사업장이라면 사용자가 함부로 단체협약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단체협약상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도 노조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사용자가 요구를 들어주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떤 경우라도 단체협약으로 확보해 두는 것은 필요하다. 단체협약에서 정하고 있음에도 사용자가 이를 무시해 조합원을 보호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번 강릉시 환경미화원 업무의 위탁건도 마찬가지다. 결론은 역시 힘이 없으면 단체협약도 소용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과연 그 단체협약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단체협약에서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고 정했다면 당연히 사용자는 조합과 합의해야 한다.
 
노조와 합의 없이 사용자가 했다면 사용자는 단체협약 위반으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단체협약 위반에 따른 손해 등이 구체적으로 특정된다면 그 손해를 청구하는 방법으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후적인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환경미화원 업무의 위탁에 관한 건도 그렇다. 이처럼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으니 다시 단체협약으로 규정해 놓아야 소용없는 것으로 돌아가는가. 그러나 문제는 법적 책임을 묻기 쉽지 않다는 것이어서 법적 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도록 한다면 해결된다. 또한 단체협약 위반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그 규정의 취지 등을 고려해 사용자 행위의 효력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노조는 단체협약에서 그 위반의 효력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해 둘 필요가 있다.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함부로 위반할 수 없도록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를 두고, 단체협약 위반시 위약금·행위효력 무효 등 법적 책임과 효력 부인에 관한 규정을 두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단체협약은 이러한 점에서 너무도 틈이 많다. 단체협약의 이행을 담보하기에는 법적으로 대단히 부족하고 내용은 부실하다. 사안이 발생해 조합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단체협약을 들여다보면 마땅한 규정이 없고, 사용자의 위반에 법적 대응을 하기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노조 간부들은 힘이 없으면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4. 우리의 경우 단체협약은 천편일률적이다. 수만 명이 적용받는 단체협약도 불과 100여개 조항으로 몇십 명이 적용받는 단체협약과 차이가 없다. 노조의 조직력 정도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슨 모범 단체협약에 따라 요구안을 제출하고 그에 따라 교섭을 진행해서 체결하기 때문에 어느 사업장이나 단체협약조항들은 그 체계와 규정 대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강릉시 환경미화원에 관한 단체협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체협약이 이러니 결국 사업장에서 근로조건 등 근로관계의 대부분은 사용자가 정하는 취업규칙 등 제규정에 의한다.
 
단체협약에서 징계에 관한 내용이 있어도 징계규정·인사규정 등 취업규칙에 의해 징계가 결정된다. 강릉시에서 집회참석에 대한 조합원 징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번에 문제가 된 조합원 업무의 위탁에 관한 단체협약도 위탁의 경우 조합과 합의를 거치도록 하였을 뿐 그 사유, 절차 및 효력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실정이니 노동조합이 있어 단체협약이 존재하더라도 결국 사용자가 조합원에 대한 처분의 근거는 단체협약이 아닌 취업규칙 등 사용자가 제정한 제규정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고용·근로조건 등 근로관계상의 제반 문제에 관해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정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 헌법과 법률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단체교섭을 하고, 이를 위해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이라면 조합원의 근로관계는 단체협약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취업규칙서 등 회사의 제규정에 의하고 있다는 것은 노동조합이 헌법과 법률이 보장해준 지위와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 노동조합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근로관계상의 제반사항은 마땅히 사용자와 교섭 내지 협의해 단체협약서 등을 통해 정해 둬야 한다. 사업장에서 조합원에 관한 사항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노조운동에 대해 위기를 말한다.
 
노조운동이 위기라면 지금까지 노동조합이 어떻게 해 왔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것이 과연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필자는 오늘날 노조운동은 위기이고 그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온 노동조합의 활동부터 뒤집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활동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것들에 대해 뒤집어 보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노동조합이 당연하게 체결해 온 단체협약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릉시 환경미화원의 고용위기를 단체협약으로 저지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조차도 단체협약으로 노동자의 고용위기를 실질적으로 저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단체협약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힘이 없어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절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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