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인 12.23 울산 항만예인선 노조 파업이 139일째를 맞이한다. 사업장에서 쫓겨난 조합원들이 울산 시청 앞 노상에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노동조합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사용자가 항만예선 선장의 사용자성을 이유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용자 주장에는 노동부가 2009.8.6 ‘예선선장은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라는 행정해석 회시로 큰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노동부가 실질적 검토를 하지 않고 선원법에 따라 제정된 취업규칙만을 근거로 판단했던 것이다.
2009.9.17 ‘부산․울산 예선 파업 해결을 위한 야3당 긴급토론회’때 노동부 행정해석 시기에 대한 조합원 질의가 있었다. ‘왜? 노동부의 행정해석 시기가 노사합의 가능성이 있었던 노동쟁의 조정 마지막 날인 8.6 인가?’였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노동부 담당 사무관의 답변은 간단했다. ‘법령질의 처리기간(7일 또는 14일) 때문에 2009.7.29 질의에 대해 사용자가 제출한 서면만을 근거로 8.6에 회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답변에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2008.10.27 ‘항내만을 항행하는 선박’에 대한 행정해석 질의에 대해 노동부는 인터넷 회신 등 기 회신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8.11.27에서야 1차 회시를 줬고, 항밖 항행 실적이 있는 선박에 대한 판단 즉 당시 쟁점 사안이었던 ‘항내만을 항행하는 선박’에 대한 판단은 매우 신중하게 법제처 법령해석을 통해 해를 넘겨 2009.2.3에 최종적으로 회시를 했기 때문이다. 그때 필자의 질의 회시 재촉 요구에 노동부는 민감한 사안이므로 충분히 검토가 필요하므로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했다. 결국 ‘법령질의 처리기간’을 이유로 한 노동부의 ‘8.6 질의회시 불가피성’ 변명은 궁색하기만 하다.
지난 12.14 울산 항만예인선 노조는 130일의 파업과 목숨을 건 노상 단식투쟁 21일째를 맞이했다. 이날 노조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이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동안 울산 남구청 용역 철거반은 천막 뒤쪽을 기습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천막은 구겨져 찢겨졌고 차량에 실려 졌다. 법과 상식이 버려진 현장에는 스치로폼과 농성 잔해가 어질러져 있다. 망연자실한 조합원은 ‘차라리 날 죽여라!’ 외쳤고, ‘예선파업해결 노사정야합분쇄’ 농성단 표찰은 바닥에 내 버려졌다. 바다에 목숨 잡혀 살아온 뱃놈에 대한 대가가 이거냐며 한탄하는 조합원이 노조를 인정해달라고 울부짖는다.
동료 조합원 아들 ‘민준’의 첫 생일 자리에 넉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한 조합원들이 함께 웃고 있어도 입술을 짓누르고 있다.
예선사들이 예선 선장들의 노동조합 가입 자격을 문제 삼아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선원법이 적용되는 선박의 선장은 선원법과 이 법에 근거해 제정된 취업규칙에 따라 사용자 지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장은 노조법상의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에 해당해 노조법 제2조 제4호 단서 및 가목에서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단체는 이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단체교섭 거부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선원법이 적용되는 선박의 선장은 선원법에 의해 다음과 같은 지위1)가 부여된다.
첫째, 선박공동체의 책임자로서 지위가 부여된다. 선장의 선원법상 권한으로 지휘감독권, 명령권, 강제권, 행정기관에 대한 원조 요청권, 징계권이 부여된다. 또한 선장의 직무로서 주의의무, 출항 전 검사의무, 항해의 성취의무, 선장의 직접 지휘의무, 재선의무, 선박 위험․충돌시의 조치의무, 조난선박의 주의의무, 이상기상 등의 통보의무, 비상배치표 및 훈련에 관한 의무, 항해의 안전확보 의무, 수장·유류품의 처리의무, 재외국민의 송환의무, 서류의 비치의무, 선박운항의 보고의무가 부여된다.
둘째, 개별적 근로관계상 지위로 선박소유자의 대리인으로서 해원의 고용·해고권, 승무원명부기재와 공인의무, 선원수첩․신원보증서의 보관의무, 해원의 승무경력증명서의 교부의무, 선내지급임금의 직접 지급의무, 시간외 근로장부 비치의무, 선내급식 관리의무, 기항 중 상병진료 허가의무가 부여된다.
이와 같이 선원법상 선장은 특수한 지위에 있다. 장거리 항행 선박의 경우 가정과 사회로부터 고립돼 해상 항행 등 위험에 직면하고 있고, 해원들의 생활 등이 전적으로 선박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러한 지위는 타당하다.
그러나 항만예선 선장은 매일 출퇴근을 하는 등 육상근로자의 근로형태와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노무관행에서도 사용자로부터 직접적인 지휘·감독 하에 근로를 제공해왔다. 또한 다른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지시를 어기는 경우 시말서 등의 징계를 받아왔다.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의 근태관리는 회사가 직접 지시하거나 근무일(비번일) 조정 필요시 사업장 내지 근무선박 내에서 갑판부, 기관부별로 행해지고 있다. 이처럼 항만예선 선장에게 사용자와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의 근로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없으며 또한 업무상의 명령이나 지휘감독에 관한 권한은 전혀 없다.
그동안 항만예선 선장의 조합원 지위가 문제되는 경우는 없었다. 인천, 평택항의 항만예인선연합 노동조합 설립당시 이를 관장했던 인천광역시 중구청도 항만예선 선장의 조합원 지위를 인정2)한 바 있다. 또한 2008년, 2009년도 노동위원회에서 다투었던 총 14여건의 부당해고및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서 한 번도 선장의 조합원 지위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러함에도 최근 노동부가 쟁점 사안(선장의 사용자 지위여부)에 대하여 가장 민감한 시기에 사용자의 손을 들어 노사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처사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최근의 주객관적 상황은 예선 선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과거 선원법 적용 판단을 했던 인천지법(2009.2.10 선고 2008나11368)과 부산지법(1996.2.16 선고 95가합40)도 최근에 입장을 바꿔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고 판시3)4)한 바 있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불필요한 논쟁만을 내세우며 항만예선노동자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노동부와 국토해양부는 파업 기간 중 예선업무 유지를 위한 타 예선사 대체 업무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지난해 인천․평택항 예선사의 직장폐쇄와 올해 부산․울산항 예선사의 직장폐쇄 상황은 비슷하다. 예선사의 직장폐쇄는 신속하며 단호하고 거침이 없다. 문제는 2달 동안의 직장폐쇄가 있었음에도 인천 D선사의 2008년 매출액은 이전과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부채비율은 줄고 수익성은 높아졌다. 파업에 가담했던 조합원의 200~300백만원 임금 지급대신 대체 예선으로 투입됐던 타사 선원의 수당은 고작 1개월 평균 20여만원 정도 지급됐다. 극단적으로 오히려 직장폐쇄가 예선사의 수익률을 높게 해줬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따라서 예선사들이 단합해 불법적 대체근로를 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노사갈등을 부추기기 보다는 이러한 예선사들의 직장폐쇄 공동 대응과 불법적 대체근로에 대한 의혹을 풀어야 한다.
파업 140여일 동안 사용자는 선원법 적용과 선장 등에 대하여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함을 인정하는 기본 협약안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협약은 체결됐다 해도 무효에 해당함이 상당하다. 협약의 적용대상과 조합원 범위는 구분되며, 노조법 제2조 제4호 단서 및 가목의 규정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노조 가입대상은 규약에 노동조합이 자주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지 사용자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답답하다.
각주
1) 권창영(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선장의 노동법상 지위, 사법논집 36집(2003), p335-460
2) 인천광역시 중구청, 1999.5.11 문서번호 산경68550-2047
3) 인천지방법원 2009.10.8 선고, 2008가합8924/ 2009.12.15 선고, 2009가단33470
4) 부산지방법원 2009.10.16 결정 2009카합1834 조합원지위보전가처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