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노숙농성’이라는 단어는 없다. 한뎃잠이라는 뜻의 명사 ‘노숙’에,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위한다는 뜻의 명사 ‘농성’이 합쳐진 말이다. 지난 16일 밤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 400동의 천막이 들어섰다. 노동자들은 영하 10도의 혹한을 견디며 한뎃잠을 잤다. 민주노총은 이날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노사자율 쟁취”, “정부의 노조탄압 분쇄”, “MB정권 퇴진”을 외쳤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숙농성을 벌인 것이다.

들어주고 받아주는 상대가 있을 때 농성은 효과를 발휘한다. 고공농성·단식농성·연좌농성·철야농성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눈 감고 귀 막은 상태라면, 그 어떤 농성도 헛헛한 몸부림에 그칠 뿐이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17일 아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군부독재 시절보다 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노동계를 탄압하면서도 점진적으로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했던 예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노동계에 대한 적대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적대시하는 정부 밑에서 교원과 공무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1차 피해자가 됐다.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86명의 전교조 교사들이 징계를 앞두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시국대회에 참석한 98명의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완료했다. 교원과 공무원의 말할 권리는 봉쇄된 지 오래다.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공격적 단체협약 해지와 직장폐쇄는 다시 민간부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현재 38개의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이 해지된 상태다. 이 중 22곳이 공공기관이다.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 이후 최장기 파업으로 기록된 철도노조의 파업 역시 단협 해지가 배경이 됐다. 내년 7월부터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키로 한 노사정 합의사항이 그대로 입법화될 경우 기존 전임자 처우 관련 합의사항을 축소하려는 사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노조 사이의 갈등이 예상된다. 벌써부터 중소 제조업체 노조에서 단협이 해지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러다가 민간부문에서 단협 해지 도미노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농성을 통해 얻어 낼 만한 것이 과연 있기는 할까.

농성은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킨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공세적 쟁취가 어렵다면 수세적 방어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자학에 가까운 노숙농성을 벌이며 노동자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쨍하고 깨질 듯이 차가운 여의도 문화마당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노동자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보편적 상식이 무시되는, 야만의 계절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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