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지록위마라는 고사가 있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윗사람을 농락한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그 의미가 확장돼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기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다.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슴과 말은 다르다. 종속과목강문계라는 생물분류체계에서 사슴은 소목 사슴과에 속하고, 말은 기제목 말과에 속한다. 굳이 종의 분류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보기에도 다르게 생겼다. 사슴 머리의 뿔만 봐도 구분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조고라는 진나라의 환관은 감히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하고, 뭇신하들은 조고가 두려워 다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한다.

이번 판례는 그동안 사용종속적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사업자로 분류돼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근로자를 근로자로 인정한 것이다. 비록 고등법원 결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슴을 말이라고 하지 않고 사슴이라고 판단을 한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근로자성 판단기준과 징표

근로자이면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있다. 노동부에서는 이들을 특수고용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원, 레미콘 기사 등 지입차주, 퀵서비스 기사, A/S기사 등이 이러한 특수고용에 속하는 대표적인 근로자들이다. 본 판례의 대상인 된 근로자들은 채권추심원이다. 이들은 회사에게 채권추심 사무를 위임받아 채권을 회수하고, 그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이들과의 계약은 위임이나 도급계약을 맺는다. 회사는 이들이 이처럼 독립된 사업자이기에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채권추심원에 대한 근로자성에 대해서는 이미 대법원에서 인정한 바가 있다. 카드회사로부터 채권회수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채권추심원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카드회사에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2008.05.15, 대법 2008두1566)라는 판례다.

또한 판결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대법원 판례(2006.12.7, 선고 2004다29736 판결 참조)의 경우도 계약의 명칭이나 사회보험 가입 여부나 고정급 여부 등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가능성이 큰 부분이나 형식적인 면보다는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 업무지시 및 근로자의 구속성, 제3자 대행, 보수의 성격, 위험 부담 여부 등 실질적인 면을 더 중요시 하고 있다.

채권추심원들의 경우 각자에게 배정되는 연체채권은 회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지고, 회사는 채권추심원들을 사무실의 지정된 자리에 배치하고 책상 등 사무집기와 명함․신분증을 제공하고, 채권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 통제하는 전산망으로 실질적인 업무통제 및 지시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산망 사용은 출근을 해야만 전산망에 접속할 수 있고, 전산망을 활용해야만 자신에게 배당된 회수목표액 및 업무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사실상 근로를 지시하고 명령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퇴근시 실적을 입력해야 하는 구조라든지 회사의 관리자는 출근시간 무렵 지시사항을 전달하거나 업무를 점검하는 조회를 수시로 실시하는 등 업무 지시를 했음도 명확하다.

이러한 실태를 기존의 대법원 판례의 판단기준에 따라 ①업무의 내용이 회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지고, ②회사의 필요에 따라 상당한 지휘∙감독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으며, ③전산망을 사용하지 않고는 업무를 행할 수 없으므로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에 구속을 받았고, ④사무집기 및 업무상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고, ⑤업무대체성도 인정되지 않으며, ⑥수수료가 근로자체의 대가로 인정되며, ⑦근로제공의 계속성도 인정할 수 있으며, 근로제공계약관계의 성립과 유지 및 종료에 대한 주도권이 회사에 있었다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경제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하는 근로자보호법

가진 거라고는 몸밖에 근로자가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였고,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조에서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고, 동법 동조에서 임금을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이며, 근로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라고 하고 있다.

채권추심원들은 양도나 대여할 수 없는 신분증을 교부받은 회사에 소속돼 채권회수를 위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제공해 사업이라는 상행위를 도왔고, 그 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받았다. 이러한 사실만 봐도 이들을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록위마와 다를 바가 아닐 것이다. 이들은 결코 평등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없었고, 그 계약이 도급(위임)인지 고용(근로)인지를 따질 수도 없었으며, 사업소득세를 부과하고 근로소득세를 징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와 권한이 이들의 근로자로써의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왜곡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다시 한번 이를 바로 잡았고, 지연이자에 대해서도 상사채권으로 분류 이자율을 민사채권보다 높게 책정하는 보너스까지 주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