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 몇 년 간 공공부문에서 소위 퇴출조직(퇴출프로그램) 문제가 논란이 돼 왔다. 퇴출조직을 통한 인력감축은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됐다(서울시의 현장시정 추진단, KT의 부진인력 관리 프로그램, 지하철분야 서비스지원단 등). 직관적으로 퇴출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부서의 설치와 인사배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판례는 퇴출조직 인사배치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공공부문에서 만연된 퇴출 프로그램의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상판례=검토할 판례는 서울메트로에서 징계해고된 근로자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2009구합18271, 서울메트로 판결 혹은 사건이라 한다)과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서비스지원단소속 근로자 10명이 제기한 인사명령무효확인소송(2009가합4655, 서울도시철도공사 판결 혹은 사건이라 한다) 두 가지이다. 공통적으로 퇴출부서에 배치된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 준 판결이다. 서울메트로 판결은 부당한 인사배치에 대해 회사측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징계해고는 부당하다고 판단했고 서울도시철도공사 판결은 퇴출조직의 존재이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사건의 경위=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08년 4월부터 8월, 비슷한 시기에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서비스지원단’이라는 조직을 설치하고 약 100여명의 근로자들을 인사배치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사건은 서비스지원단으로 배치된 근로자 중 10명이 ‘인사명령취소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한편 서울메트로 사건은 서비스지원단 발령에 대해 노조가 해당 근로자들과 함께 노동위원회에 부당전직구제신청을 제기했다가 구제절차 진행 중 노조와 회사측의 합의에 따라 ‘화해’로 대부분 현업에 복귀됐지만(청원경찰 60명 제외), 본 사건의 당사자인 1명은 부당발령에 대해 농성·항의 등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돼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퇴출조직으로의 인사배치는 정당한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는 효율적 사업 운영을 위해 근로자를 적절한 곳에 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인사배치는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3조 위반의 문제와 배치 과정에서의 신의성실에 원칙․권리남용 여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사건들의 경우 배치부서가 통상적인 인사부서에 해당되지 않는 점 등이 추가돼 몇 가지 쟁점을 만들어 냈다.

◇퇴출조직인가=만일 사업주가 정년제 근로자의 자발적 퇴직 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퇴출부서’라는 명칭의 부서를 설치하고 특정 근로자들을 배치했다면 정당한 인사권 행사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회사 경영사정이 악화돼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있다면 경영상 해고 혹은 순환 휴직 등 경영합리화를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퇴출부서라는 명칭의 부서가 있을 리 없다. 결국 특정부서가 퇴출조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업무내용과 배치대상 근로자들의 기존 업무와 근로조건, 실제 퇴출여부 등을 근거로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법원은 서울도시철도 판결에서 서비스지원단이라는 부서 소속 129명 중 17명이 전출되고 55명이 퇴직하고, 57명이 남아있다는 점, 자체 평가를 통해 성적이 우수한 근로자들을 현업에 복귀시킨 점, 근로내용이 기존 부서와 중복되는 점 등으로 볼 때 이 부서가 근로자들의 퇴직을 유도하기 위한 부서였다고 판단했다. 해당부서의 업무, 평가와 전출제도, 실제 퇴직한 근로자들의 비율 등을 고려해 퇴출유도를 주된 목적으로 부서라고 판단한 것이다.

◇불이익 클수록 엄격해야 할 대상자 선정기준·절차=경영상 필요에 의한 부서의 설치는 사업주에게 속한 권리이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배치할 것인가는 사업자가 임의대로 결정할 수 없고 절차와 과정 역시 신의성실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법원은 서울메트로 판결에서 ‘근무부적응’이라는 인사권 남용의 소지가 있는 포괄적·다의적 개념은 정당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고,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평가기준에 대한 회사측 입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도시철도 판례에서 법원은 선정기준의 문제보다 사전협의를 중시하고 있다. 즉 선정기준이 구체적일지라도 ‘근로자들과 사전 협의를 하거나 그 필요성을 설명하고 고려기간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선정과정의 신의칙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인사배치에서 근로자의 불이익이 클수록 엄격한 대상자 선정기준의 객관성·공정성과 절차의 신의칙이 요구된다고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사배치 항의 행위에 대한 징계해고 정당성=서울메트로 사건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부당한 인사배치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무단결근․소란행위 등이 징계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판결은 인사배치가 무효라면 부당한 인사배치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은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해 주목된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근로자들이 부당한 인사배치를 당할 경우 법의 구제를 호소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적시에 구제받지 못해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두 판례의 파장과 과제

◇파장=기존 판례들은 대상자의 선정기준과 절차에서 부당성을 근거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서울도시철도공사 판례는 퇴직유도를 목적으로 특정부서가 운영되고 있다면 징계해고 및 정리해고의 요건을 법으로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는 취지의 근로기준법을 잠탈할 여지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퇴출유도 부서가 부당한 해고를 금지한 근로기준법을 형해화시킬 위험성이 있음을 경고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판결과 차이점이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퇴출부서를 운영하는 경영관행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 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메트로의 판례는 전직명령이 무효라면 배치부서로 출근하지 않은 행위를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록 지방법원 판결이지만 회사측의 부당 인사배치에 제동을 걸린 판결이다. 또한 두 판례에서 근로자의 불이익이 큰 퇴출조직으로의 배치문제에서 선정기준과 배치과정의 신의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점도 주목해 볼만한 대목이다.

◇과제=서울도시철도공사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원직복직을 시키지 않고 항소했다. 판결에서 퇴출부서가 근로기준법을 잠탈할 여지가 있는 위법한 부서운영이라고 판결했음에도 여전히 서비스지원단이 운영되고 있고 소송 당사자들의 원직복직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주목해야 할 것은 퇴출부서로 배치된 근로자들이 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의 고위직 근로자가 전환배치 될 경우 수치심과 자멸감 등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부 근로자가 스트레스로 인한 뇌혈관계 질환이 발생해 산재신청을 하기도 했다. 또 젊은 직원들의 경우 경력개발에서도 큰 손실을 입게 된다. 향후 임금손실분을 제외한 정신적 위자료와 손해배상 등이 가능할지도 주목해봐야 한다.

◇유의할 점=첫째 행정법원과 지방법원 판결로서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기존 판례보다 근로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항소심 등에서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서울메트로 사건 당사자의 경우 2008년 11월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전직명령은 인사권의 남용으로서 무효’라는 전직명령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졌고 근로자의 소란행위가 노조 활동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유의해한다. 근로자의 개인적인 항의행위 등에 대해 징계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한 기존 판례가 다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셋째 사용자의 인사배치 권한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만일 대상자 선정기준과 절차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올 경우, 다른 절차와 기준으로 인사배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근로자는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복귀했으나, 다시 다른 사유로 재차 서비스지원단으로 배치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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