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재용씨에게 450억원대의 사모전환사채(CB)를 발행한 데 대해 법원이 "편법증여로 보이지만 현행법상전환사채 발행 자체를 무효화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려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변동걸촵卞東杰부장판사)는 23일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전환사채 발행무효확인 청구소송항소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번 전환사채 발행은 이사회 의결 정족수 미달 등 절차상 하자가 있고 내용상으로도 제도 자체의 목적에 어긋난 것으로서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전환사채가 발행돼 유통될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된 만큼 거래의 안전과 법적 안전성을 고려할 때 발행 자체를 무효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현행 상법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은 인정하면서도 전환사채에 관한 모든 사항을 이사회 결의에 맡기도록 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기업의 지배주주들이 2세들에게 회사의 지분을 넘겨주기 위한 합법적인 도구로 전환사채발행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입법상 맹점이 있지만 현행 상법에 이를 통제, 제어할 수 있는 유효적절한 규정이 없는 만큼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재벌의 편법증여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전환사채발행 무효소송이 아니라 이사들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어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97년 3월 재용씨가 삼성전자가 발행한 600억원 어치의 사모전환사채 중 450억원 어치를 매입한 뒤 같은해 9월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자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 변칙증여"라며 본안소송과 함께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에 대한 1심 판결은 엇갈려 본안소송을 맡은 수원지법 민사합의10부는 같은 해 12월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같은 법원 민사합의30부는 "전환사채 발행은 지배권 승계가 주목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장교수가 재용씨와 증권거래소를 상대로 낸 주식상장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CB는 일정 기간 후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 채권으로 매입자를 사적으로 모집하는 CB를 사모CB라고 부르며 재벌 총수의 아들 등 특수관계에 있는 인물에게 지분을 몰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재벌들의 재산증여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한편 재용씨는 이번 전환권 행사로 삼성전자 주식 90여만주(97년 당시전체 주식의 0.9%)를 주당 5만원씩 모두 4백50억여원을 주고 취득할 수 있으며 삼성전자의 현재 주가(35만여원)와 비교할 때 2천7백억여원의 이득을 얻게 됐다.

이번 판결에 대해 참여연대측 김진욱 변호사는 "전환사채가 이미 발행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렵다"며"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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