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전임자임금 관련 노사정 협상이 진전 없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주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마냥 노사정이 서로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모양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연착륙 방안을 찾자고 말했지만 ‘내년 시행’이라는 입장에서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노동계는 “양보는 없다”며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가 종료되더라도 공이 국회로 넘어가면서 대화구도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협상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동안 공식·비공식 또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협상안을 유형별로 살펴보며 이후 협상전망을 살펴봤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7.20)로부터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11.18 현재)까지 나온 노사정의 입장을 살펴보면 일정정도의 변화가 보인다.<표1 참조>
 


노 “자율교섭” 사 “복수노조 반대”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에서 나온 노동계(한국노총)안을 보면 복수노조 허용시 자율(개별)교섭제를 도입(강제적 창구단일화 반대)하고 노조전임자 급여지급도 노사자율로 결정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를 위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4조 제2항(노조전임자 급여수령 전면 금지)과 제81조 제4호(사용자가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시 부당노동행위로 처벌)가 삭제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경영계는 노사관계선진화위에서 복수노조의 경우 과반수교섭대표제 도입(1사 1교섭 1협약), 전임자임금의 경우 현행법 시행(전면 금지)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영계는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를 거치면서 입장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15일 2차 부대표급 실무회의에서 경영계는 사실상 ‘복수노조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동안 삼성과 현대로 대별되는 기업 간 입장 차 때문에 방침을 정하지 못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내년 시행’ 고수하는 정부

정부는 그동안 변화무쌍한 입장을 보였다.
당초 7월20일 타임오프를 골자로 한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이 제출될 때만 해도 정부는 공익위원안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실제 노동부는 8월 중하순 경 공익위원안 중심으로 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노사가 또다시 유예를 시도할 것을 의심하며 무조건 내년 시행을 기본방침으로 내걸었고, 지난달 1일 임태희 노동부장관 취임 이후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10일 언론사 사회부장단 간담회에서 임 장관은 법개정 없이 시행한다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법개정 없이 시행령이나 내부지침을 통해 과반수대표제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면서 복수노조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또 임 장관은 전임자임금은 지급금지에 대비해 노사재정자립 방안을 제시하라고 노사에 요구했다. 그렇다면 물밑협상은 전혀 없었던 것일까. 노사정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워낙 정부 입장이 강경해서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안 보인다는 게 노사의 공통된 반응이다.

협상안 유형별로 살펴보니

굳이 물밑협상이란 이름이 아니더라도 노사정·학계·정치권 등을 통해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진행되는 협상에 실마리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이후 협상에서 참고사항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복수노조에 대해서는 시행을 전제로 자율교섭·과반수대표제·비례대표제·제한적 허용 등과, 아예 금지하거나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전임자임금의 경우는 자율결정·타임오프·규모별 상한·단계적 시행·대기업만 규제·재정자립기금 등과, 역시 유예나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엇갈리고 있다.

◇과반수대표제·재정자립방안=사실상 정부안이다. 정부는 내년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복수노조를 시행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임자임금도 현행법대로 금지하되 재정자립방안에 대해 노사가 대안을 내놓으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정부기금출연 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재정자립방안으로 노사 매칭펀드 조성·조합비 세액공제·노조 수익사업의 손실보전 등의 확인되지 않은 ‘설’만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2003년 금융노조와 은행연합회가 2007년 시행 전까지 4년간 80억원(1사 기준)의 재정자립기금을 마련키로 합의했을 때, 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으로 막아놓고 지금은 법개정도 없이 재정자립방안을 요구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2006년 한국노총은 유예 합의에 앞서 처벌조항 삭제를 전제로 △대기업은 노사 재정자립기금 설치 △영세중소기업은 정책금융을 통해 1% 저리대출(20년 상환)이라는 재정자립방안을 제시했으나 결국 법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반대= 삼성·LG·포스코 등 대표적인 무노조 또는 유령노조, 노사협력 문화를 유지하는 기업들의 입장이다. 복수노조 시행시 기업 경쟁력 하락과 현장의 혼란이 클 것이라며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영향 탓으로 경제지를 중심으로 ‘해외에서는 복수노조 난립으로 기업이 망했다’는 선정적 기사가 쏟아졌다.

노동계 일각에서도 복수노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노총 내 한국교통운수노동조합총연합회(교운총련)는 7일 노동자대회 장소에 ‘복수노조 반대’라는 거대한 애드벌룬을 띄웠다.

또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도 언론사 기고를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별 복수노조는 노동탄압을 통해 노조를 해체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기업단위 복수노조를 반대하고 초기업단위 복수노조만 허용하는 현행을 사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한적 복수노조·규모별 상한제=최근 한나라당 개혁성향의원모임인 민본21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입법안을 발의한다고 밝히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임자임금 규모별 상한제(축소)는 정치권에서 몇 번 흘러나온 적이 있다. 노동계에서는 역진적 상한제를 제시하는 쪽도 있다. 역진적 상한제는 대기업 규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민본21은 아직 법안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속 의원인 김성태 의원이 4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략 방향을 밝힌 바 있다.
복수노조의 경우 현재의 판례수준과 유령·휴면·대항노조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다. 또 전임자임금은 단계별·차등적으로 적용을 하되 일정 규모 이하는 현재 수준의 전임자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300인 미만 사업장은 전임자 1명, 1천인 미만은 3명, 1천인 이상은 1천명당 1명을 추가하자는 것. 또 전임자수 제한을 받은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은 재정자립방안 확보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현재 수준을 인정하는 규모설정이 핵심 중 하나다.

이밖에 3년 전인 2006년 정부·여당의 전임자 방안과 10월 마련됐다가 폐기된 민주당 초안도 규모별 상한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표 2,3 참조>



◇타임오프=노사관계선진화위의 공익위원안이다. 전임자임금에 대해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 도입과 300인 미만 기업엔 정부재정 지원,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과반수대표제)이 뼈대다.
그러나 노사 모두 부담스러워하며 반대하고 있다.

◇복수노조 찬성=양대노총은 복수노조 시행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창구단일화가 전제될 경우 단결권을 제약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자율교섭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삼성·포스코 등 무노조 기업과 버스·택시·항운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노조가 출현하기를 기대하는 세력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3노총 추진세력인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복수노조 허용과 비례대표 창구단일화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오종쇄 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은 전임자 규모 축소에 찬성하면서 조합비 세액공제와 조합비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아직 노사정 협상의 뚜껑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쉽지는 않다는 전망이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처벌규정 삭제부터 요구했다. 그는 “양보안은 없다”고 못 박았다.

국회에서 제2라운드 맞을까

6자 대표자회의가 당초 논의 시한인 25일 이후로 연장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회로 넘어가게 될 전망이다.

현재 한나라당·민주당·민주노동당은 입법 발의를 위해 대기상태다. 모두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종료되는 시점부터 잇따라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미 민본21이 법안 발의를 예고하고 있고, 안홍준 의원도 일찌감치 법안을 준비해왔다. 안 의원은 복수노조 금지·규모별 상한제를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한나라당 내에서는 추가로 의원 입법 발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도 준비 중이다. 10월에 나온 초안은 폐기한 가운데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모두 자율교섭에 방점을 찍은 새로운 입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동당도 전임자임금 금지·처벌규정 삭제 등 자율교섭에 초점을 맞춘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노사정은 1라운드에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국회에서 제2라운드를 맞을 것인가. 마주 달리는 노사정은 결국 충돌할 것인가. 3자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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