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지난달 28일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공사로 분할돼 새롭게 출범했다. 산업은행이 설립된 지 55년 만의 변화다.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능을 정책금융공사에 넘기고, 민간상업투자은행(CIB)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산은지주의 자산규모는 142조원. 산하에 산업은행을 비롯해 대우증권·산은캐피탈·산은자산운용·한국인프라자산운용 등 5개 자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산은지주는 2012년까지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을 완료하고, 해외 금융기관을 인수해 10년 안에 세계 20위권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산은지주는 산업은행민영화법에 따라 2014년 민영화된다.

산업은행이 보유했던 공기업주식 등을 넘겨받은 정책금융공사의 자산은 23조7천억원 규모다. 공사는 주요 기능으로 신성장동력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 등을 내걸었다.
6개월 만에 진행된 졸속 민영화

하지만 산업은행이나 정책금융공사의 갈 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벌써부터 산업은행의 비전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공사가 도입한 새로운 정책금융방식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당초 산은지주 민영화 목표는 ‘글로벌 투자은행’이었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투자은행업무에 강점을 둔 상업은행’으로 바뀌었다.

정부의 민영화 계획안도 처음에는 산은지주 지분을 정부가 51%, 공사가 49% 가져간 뒤 공사지분 49%를 우선 매각하고, 추후 정부지분도 매각해 완전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통과된 산은민영화법은 산은지주 지분 100%를 공사가 보유하도록 변경됐다. 공사의 재무상황을 개선하고 산업은행의 적정 BIS비율 유지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게 정부입장이다.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정책금융공사 자체로는 독자적인 수익모델이 안되기 때문에 산은지주의 배당이익으로 수익을 메우겠다는 것 아니냐”며 “이는 정부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비판했다.
 

변경된 지배구조로 인해 ‘정부-공사-산은지주-산업은행’이라는 옥상옥이 만들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사가 정부를 대신해 주주권과 경영관리권을 행사하는 구조라는 것. 산업은행은 완전히 민영화 될 때까지 정부 눈치도 봐야하고, 공사 눈치도 봐야 할 처지다.

이처럼 정부·공사·감독기관이 산업은행의 경영과 업무에 중복적으로 관여한다면 민영화법 통과 이전보다 심각한 비효율성을 가져 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특히 공사가 산은지주에 대한 인사권은 없지만 공사 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자의적으로 권한 행사를 할 소지가 있어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무디스 “산은 민영화, 금융시스템 리스크”

3대 국제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최근 산은지주의 민영화에 대해 “한국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정부의 산은지주 지분이 50% 미만으로 떨어지기 전에 취약한 기초여건(펀더멘털)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한국 금융시스템은 불안정(instability)해 질 것”이라고 밝혔다. 산은지주의 취약한 자금조달 구조와 자산건전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산은지주가 보유한 산업금융채권의 규모는 51조8천억원. 국내 전체 은행 자산의 8%에 해당하고,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 규모다. 옛 산업은행은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아 저리에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 왔다. 산업은행 재원의 약 70%는 산업금융채권과 차입금이다. 예수금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무디스의 지적대로 민영화 이후 수신기반 확충이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산은지주는 산업은행을 국내외은행과 인수·합병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지난달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신기반 확충과 산은지주의 경쟁력을 위해 국내외 은행과 인수합병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이나 우리은행의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력이 약한 소매금융 업무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은행과 합병을 하더라도 현재 534%인 산업은행의 예대율(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금 잔액의 비율)은 145% 수준에 머무른다. 시중은행 평균 110%보다 훨씬 높다. 정부가 은행 간 예금고객 유치 경쟁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타은행처럼 지점을 공격적으로 늘리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게 무디스의 분석이다.

주요 대기업 지분을 정책금융공사에 넘겼지만 여전히 대기업 여신이 65.4%에 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산업은행법에는 ‘정부지분이 50% 미만이 되기 전까지는 산업은행에 기존의 정책금융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여신을 다변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은지주의 지분구조도 문제다. 정책금융공사는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 주식 15조1천억원을 포함해 현대건설과 하이닉스·SK네트웍스 등의 구조조정 기업 지분 등 산업은행이 보유한 우량지분을 이관 받았다.

알짜배기는 모두 정책금융공사로?

산은지주 주식도 100% 보유하고 있어 지분이익과 연말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산은지주에 남은 건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종합상사 등 구조조정 기업과 벤처기업 주식뿐이다. 산업은행노조 관계자는 “알짜배기는 정책금융공사에 다 넘겨주고 산업은행은 불량 지분만 갖게 됐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정책금융공사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책금융공사는 정책금융정책을 시행하면서 온렌딩(On-lending)이라는 생소한 방식을 도입했다. 온렌딩이란 정부가 민간위탁을 통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 기술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정책금융정책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은행에다가 돈을 펀딩을 해주고 은행은 그 재원을 고객에게 대출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은행과 리스크를 절반씩 부담하려고 한다. 은행은 대출기업에 대해 리스크 50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에서 책임지는 구조다.

정명희 금융노조 정책부장은 “은행들은 정부에서 기업에 대출을 하라고 해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며 “정부의 의도대로 제도가 운영되겠냐”고 말했다.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업무가 겹치는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노사관계 지형 변화 불가피
금융권 노동계가 지주회사와 관련해 최근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지주회사 설립에 따른 사용자성 문제다. 이 문제는 경영자만 있고 사용자는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산은지주가 출범했지만 당장 사용자성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변화된 지배구조에 따른 산업은행 내 노사관계 지형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주회사는 일반적으로 ‘다른 회사의 사업 활동을 지배하기 위해 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를 말한다. 우리나라 상법(회사법 342조의 2)은 다른 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하는 경우 모-자 관계에 놓인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주회사는 모회사에 해당한다. 모회사가 지분 50%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대기업의 보편적인 지배구조는 재벌-계열사였다. 지난 99년 지주회사가 허용되면서 지난해 8월 현재 40개 이상의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들 지주회사가 거느리고 있는 자회사는 262개이고, 손자회사까지 합치면 398개에 달한다.
2003년 LG그룹이 처음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한진중공업 홀딩스·CJ홈쇼핑·태평양·금호산업 등 재벌그룹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랐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지주를 시작으로 신한금융·하나금융·한국투자금융·KB금융 등이 지주회사가 됐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4월부터 하나은행·하나대투증권·하나IB증권 등 자회사를 사업부문(BU·Business Unit)별로 개인금융·기업금융·자산관리·법인센터(Corporate Center) 등 네 개로 나눠 독립적인 경영을 하는 매트릭스 구조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경영진들은 지주회사의 자회사별 사업통제가 가능하고 사업부문별 의사결정이 빨라 시장 환경에 따른 신속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반면 경영의 최종 권한 및 책임이 분산돼 있어 의사결정의 통합성 문제가 발생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매트릭스 구조는 특히 노사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경영권 행사가 많아지면서 기업단위 노사관계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은행장의 권한이 약해지고 사업부문별 경영이 이뤄지면서 은행 노사교섭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줄어들고 있다”며 “금융지주가 매트릭스를 도입하는 배경에는 노조의 교섭력을 약화시키고 경영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경영진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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