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신종인플루엔자 관련 기사를 쓰던 노동안전보건 담당 조현미 기자가 떡하니 신종플루에 감염됐다. <매일노동뉴스>의 첫 타자다. “장시간 노동자에게 신종플루는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말이 노동계에서 회자되던 즈음, 조 기자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 때마침 양대 노총이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있던 터라 조 기자는 주말 내내 쉬지 못한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쉬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는데.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건 왕따였다”고 고백하는 그의 체험기를 들어보자.

지난 4일 저녁. 모처럼 일찍 퇴근했다. 집에 돌아오니 5살 조카와 큰언니가 집에 와 있다. 그런데 간헐적으로 기침이 나온다. ‘감기에 걸렸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뭔가 심상치 않다. 오전부터 약간의 두통과 근육통이 시작됐다. 오전 토론회를 취재하고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에게 계속 물었다.

“두통하고 근육통이 있는데 신종플루일까요?”
평소에 감기도 잘 안 걸린다며 신종플루는 걱정 없다고 자랑하던 차에 이게 웬일이람. 점차 열이 오르기 시작하니 불안해진다. 기자실로 돌아와 기사를 쓰려는데 점점 근육통까지 심해져 앉아 있기도 힘들다. 기사는 써야하고 몸은 아프고 죽을 것 같다. 병원에 다녀오자니 마감이 늦을 것 같고, 기사를 안 쓰자니 중요한 내용이다. 아픈 몸을 진정시키며 겨우 기사를 마감했다. 인근 신종플루 치료 거점병원을 찾았다. 토론회 취재 때 만난 보건의료노조 간부에게 “과다진료를 안 해 진료비가 저렴하다”는 고급 정보를 챙겨 듣고서.

기침시작하다 … 이튿날 38.9℃

병원 앞마당에 신종플루 환자만 진료하는 가건물이 있다. 저녁시간이라 환자는 대여섯 명 정도. 그런데 응급실에 갑자기 급한 환자가 생겼다며 의사가 자리를 비운다. 끊어질 듯한 허리 근육통에 고열까지 겹쳐 앉아 있을 힘도 없다. 대기 의자에 가방을 놓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30~40분 기다렸을까. 의사가 돌아왔다.

“열은 미리 체크하셨나요? 주위에 신종플루 환자가 있나요? 가래는?”
증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체온을 재보니 38.9℃다. 37.8℃ 이상의 발열과 함께 콧물·코 막힘·인후통·기침 가운데 1개 이상의 증상이 있는 경우 신종플루를 의심해봐야 한다. 확진검사(RT-PCR)를 받기로 했다. 의사가 면봉으로 콧속과 입안에서 액을 채취했다. 아뿔사, 타미플루는 확진판정이 내려져야 처방받을 수 있단다. 하지만 타미플루 처방받으러 여의도까지 왕복 세 시간을 왔다갔다할 수는 없는 일. 참고로 집은 경기도 구리다.

“선생님, 집이 너무 먼데 오늘 처방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열이 높아 의사가 5일치 타미플루를 처방해 줬다. 타미플루는 저녁부터 바로 복용하되 검사 결과가 양성이 아니면 감기약만 먹으면 된다고 했다. 마스크를 끼고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다. 집에 와보니 조카가 아직도 집에 안 갔다. 신종플루일지도 모르니 조카를 데리고 빨리 집에 가라고 언니를 재촉했다. 가족들에게 약국에서 사온 마스크를 나눠줬다.

예고 없이 이별통보처럼 날아든 문자

다음날 오전.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역시 가벼운 감기 몸살이구나 생각했다.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렸다. 오후 1시30분 점심을 먹었다. 식기와 수건·화장실은 따로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쓴 그릇을 다른 사람이 만지지 않도록 설거지도 직접 했다. 밥도 따로 먹었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문자가 와 있다.

“조현미님 신종플루 검사결과 양성입니다.”
문자메시지를 본 후 2초간 멍했다. ‘에이 설마 나에게 이런 일이….’ 아무런 예고 없이 이별을 통보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정신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일단 어제 만났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종플루 증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가세요.” 데스크(편집국장)에게도 알렸다. 바로 지시가 떨어진다. “신종플루 체험기 써라.” 소식을 전해들은 선배가 “몸 조리 잘하라”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왠지 부럽기도 하다”는 여운을 덧붙여서…. 이날 저녁 아버지는 항균 스프레이를 사오셨다.

신종플루보다 괴로운 건 ‘두통’과 ‘왕따’

타미플루 복용 3일째. 오전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 감기 증상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아 타미플루 부작용인 듯 싶었다. 아버지께서 또 항균스프레이를 사오셨다. 이번엔 ‘아로마’란다. 옷에 뿌려도 되고, 먹어도 된단다. 방에 격리된 지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답답했다. 저녁에 잠깐 집 앞에 나갔다 들어왔다. 외출하면 안 되는데 반칙이다. 조카는 괜찮은지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평소 늦게 들어오는 애가 그날따라 왜 일찍 들어왔냐”며 언니에게 구박을 들었다.

타미플루 복용 4일째였던 8일. 마스크를 너무 오래 끼고 있었는지 입술이 부르텄다. 신종플루 때문에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병원노동자들의 고충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꼈다. 무엇보다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답답해서 죽을 맛이다. 밥도 혼자 먹어야 하고 가족들도 나를 피한다. ‘가족에게까지 왕따가 된 기분이란 이런 것이구나.’

“타미플루를 복용하는 5일 동안만 쉬고 출근하라”는 대표이사의 지시가 떨어졌다. 완치됐는지 병원에서 확인하고 오라는 얘기와 함께. 11일 오전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하루 더 격리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증상이 없는 것 같아도 타미플루를 복용한 날로부터 일주일은 무조건 격리돼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이건 환자와 주변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재택근무(기사 마감)를 하고 12일 출근했다. 마스크를 끼니 출입처 사람도, 선배들도 나를 피한다. “다 나은 거 맞니?”

같은 교회에 다니는 초등학생은 신종플루를 치료하고 학교에 복귀하자 “살아 돌아와 기쁘다”며 친구들이 대환영해줬다는데, 역시 어른들의 인심은 야박하다. 그래도 좀 ‘아는’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이제 항체가 생겼으니 좋겠네. 백신도 못 맞고 벌벌 떠는 우리보다 낫네.”
‘달콤 살벌한’ 5일간의 휴식이었다. 덕분에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Challenging The Chip-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책을 읽고 소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조 기자의 신종플루 체험 일지]

■ 4일
-저녁 간헐적으로 기침 시작

■ 5일
-오전 두통·근육통 전형적인 몸살 증세
-오후 열이 오르기 시작, 극심한 근육통
-저녁에 치료거점병원 찾아 확진검사 받음. 열 38.9℃. 마스크 쓰기 시작
-외래진찰료 1만6천220원(전액 본인 부담)+검사료 13만2천548원(본인 부담 7만9천529원)+5일치 감기약과 타미플루 4천100원+일회용 마스크(6개) 3천500원=10만3천349원
-타미플루(75㎎ 한 알씩·아침·저녁 하루 2회) 복용 시작
-가족들과 따로 식사

■ 6일
-오전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옴
-오후 신종플루 확진판정.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림
-기침도 줄고 근육통도 거의 없어짐. 경미한 두통 시작
-화장실·식기·수건 등 따로 씀.
-가족들과 격리 생활

■ 7일
-오전 내내 극심한 두통에 시달림.
-방을 환기시키고 이불을 햇볕에 소독
-방 구석구석 청소
-마스크 때문에 답답함.

■ 8일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 교회 빠짐. 머리는 여전히 아픔. 무기력감

■ 9일·10일
-재택근무를 시도했다가 포기
-집에서 시체놀이

■ 11일
-병원을 찾아 문진, 타미플루 복용 후 증상 없으면 완치된 것으로 봐도 됨. 따로 병원을 찾을 필요 없음. 일주일간은 격리돼 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로 집에 돌아옴.
-진찰료 1만2천570원

■12일
-출근. 이틀간은 마스크 더 착용


신종플루 걸린 ‘워킹맘’의 고민
맞벌이 주부인 홍진이(33·가명)씨는 요즘 일주일째 아들(생후 4개월)을 못보고 있다. 신종인플루엔자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12일부터 콧물이 나기 시작해 이틀 뒤 집 근처 내과에서 간이검사를 받았는데 신종플루 양성반응이 나왔다. 다행히 친정이 윗층이어서 급한 대로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아이에게 신종플루를 옮겼을까봐 며칠째 노심초사했던 것.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주무시는데 엄마 없는 걸 아는지 새벽까지 안자고 버틴데요. 6개월 미만이라 백신도 못 맞추고….”
한 달 전에도 신종플루 유사 증상이 나타난 홍씨는 응급실에 가서 15만원가량을 내고 검사를 받았다. 아이에게 옮길까봐 걱정이 돼서 검사를 안 받을 수도 없었다.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이번에 또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것이다.
내과 두 군데에 들렸다가, 밤에 응급실까지 찾아 20만원이나 썼다.
13일 처음 갔던 회사근처 내과에서는 열이 36.8℃라 타미플루를 처방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튿날 감기 증상이 심해졌다.
“저는 친정이 근처에 있어 다행이지만, 직장도 그렇고 아기도 그렇고 워킹맘들은 정말 답답하죠. 모든 여성들은 이 사회에 반기를 들어야 해요.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어요.” 조현미 기자




노동자를 위한 신종플루 매뉴얼은 없다?
신종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는 일찌감치 사업장에 신종플루 대응 매뉴얼을 배포했다. 신종플루가 대유행할 것에 대비해 업무지속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신종플루에 감염된 노동자를 위한 매뉴얼은 찾아볼 수 없다. 신종플루에 감염됐다면 타미플루를 복용한 날로부터 일주일은 무조건 격리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도 치료하고 주변 사람의 감염도 막을 수 있다.
신종플루에 걸릴 위험성이 높은 직업에 종사한다면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산재로 인정받는 게 쉽지만은 않다. 지난 9월 근로복지공단이 발표한 신종플루 감염 산재인정 지침에 따르면 △업무 때문에 고위험국가에 출장을 다녀온 경우 △보건의료종사자나 집단수용시설 종사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감염됐을 경우 △공항·항만 등 검역관이 감염됐을 경우 △동료와의 접촉으로 신종플루에 감염된 경우 등만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라도 △업무활동 범위와 신종플루 전염경로 일치 △업무수행 중 신종플루에 전염될 만한 명백한 행위 △신종플루 노출 의학적 인정 △업무 외에 가족·친지 등에게서 전염되지 않을 경우에 모두 해당돼야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조현미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