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공사는 기계가 합니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만든다카는데 외려 낙동강서 일하는 농민이나 어부·골재채취원같이 멀쩡한 일자리를 없애 뿌는 기 4대강 사업입니더.”

골재채취노동자 전상식(53)씨는 4대강 가물막이 공사가 한창인 낙동강 22공구 달성보 앞에서 한숨을 내뱉었다. 가물막이공사는 보 건설을 위해 하천의 물을 막는 작업이다. 지난 18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그는 공사로 탁해진 낙동강 물을 가리키며 자신의 미래라고 말했다.
 

“돈 덩어리들이(아이들) 아직도 새파란데, 이젠 부모 노릇도 못하게 돼 버렸습니더.”
30년간 낙동강에서 골재를 채취했던 그는 현재 달성보 공사를 진행하는 대형건설사와 기계임대 계약을 맺은 골재업체에서 일한다.

전씨는 “2년 안에 공사를 마치기 위해 공사현장의 기계가 24시간 돌아간다”며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인력사무소 등을 통해 들어온 임시 신호수뿐”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전씨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니 건설사 현장 관리 감독관 외에는 덤프·크레인 등의 건설기계만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움직일 뿐이었다.

전씨는 낙동강에서 골재를 끌어올리는 준설선(배)의 선장이다. 골재채취는 수중골재를 파이프로 퍼 올리는 준설선 선장, 골재를 덤프에 상차하는 로우더·굴삭기 기사, 먼지를 가라앉히는 살수차 기사 등 5~6명이 한 팀을 이뤄 작업한다. 이들을 골재채취노동자라고 부른다. 전국적으로는 130여개의 수중골재업체에서 1천여명의 노동자가 일을 한다. 그 중 약 70%(74개 업체·700여명)가 낙동강에 모여 있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에 위탁을 받은 골재업체의 정규직이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12월 말 일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공사를 주도하면서 낙동강 내 기존 골재업체는 일감이 없어졌다.

정부가 건설사들과 이들 업체의 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입찰 시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미 기계를 보유하고 있거나 거래업체가 있는 대형 건설사들은 굳이 이들 업체와 계약을 맺을 이유가 없다. 설사 계약을 맺더라도 4대강 공사가 끝나는 2년 후에는 더 이상 퍼낼 모래가 없다. 따라서 골재업체의 대거 폐업이 예상된다.

정부는 공사기간 2년 안에 향후 34년간 채취할 수 있는 모래를 퍼 올릴 예정이다. 골재업체들은 현재 정부와 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폐업과 함께 퇴출되는 노동자에 대한 보상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업체와 정부 간 논의내용도 노동자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농민·어민 등에게는 별도의 보상 기준이라도 있지만 골재채취노동자는 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국토해양부 관계자조차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골재재취노동자 문제가 대표적”이라며 난감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골재업체들은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미루고 있다.

골재채취노동자들은 이곳에서만 20~30년가량 일을 해왔다. 평균연령은 40대 후반이다. 골재채취를 그만두면 딱히 갈 곳도 없다.<박스 기사 참조>
 

“사람이 죽고 난 뒤에야 우리를 봐줄랍니까?”
이날 만난 골재채취노동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지자체·국회·국토해양부 등을 방문해 대책을 촉구했다.
17일 국토해양부와 첫 면담을 가졌지만, 골재업체 참여를 위해 건설사에 가산점을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뿐이다.

지난달 21일.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농성을 하던 이인기(43)씨에게 관할 형사가 물었다. “골재채취노동자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대책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선지 7개월 만에 받은 첫 질문이었다고 했다.

11일 달성보를 방문한 민주당의 한 유력 인사도 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4대강 국감’이라 불릴 만큼 국감기간에도 온갖 의혹이 제기됐지만, 골재채취노동자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대책은 고사하고 존재조차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4대강 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벌인 정부도, 골재업에 대해 보상을 촉구하는 골재업체도, 4대강 사업을 결사반대하는 야당들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이씨는 낙동강에서 일하는 골재채취노동자들의 존재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씨처럼 살수차 기사로 일하는 노동자는 골재업체가 4대강 사업에 참여한다고 해도 굴삭기 등의 전문기계 조종사가 아니라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살수차 기사인 이상길(58)씨의 속도 탄다. “골재채취노동자는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피해당사자입니다. 정부는 형식적으로라도 우리 상황이나 실태가 어떤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씨는 “똑같은 사람인데, 사람의 목숨 갖고 차별해서 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준설선 선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퍼낼 모래가 없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한 골재장에서 만난 준설선장 문수진(49)씨는 일도 일이지만 낙동강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낙동강은 제 인생의 희망이었습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강물 냄새를 맡는 게 낙이었는데 이젠 그것도 끝이네요.”

통상적으로 골재업체가 40만세제곱미터를 퍼내는 데도 길게는 1년가량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물며 일천배 이상 되는 양을 퍼내는 4대강 사업을 진행하는데 환경영향평가는 고작 4개월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골재채취노동자들의 염려와는 상관없이 골재장 어귀에서는 4대강 공사 착공 기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20년차 로우더 기사 남상윤(38)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멈출 공사가 아니라는 걸 안다”며 “그래서 더 암담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을 성토했다.
“적게는 20년, 많게는 30년 이상 일했던 삶의 터전을 정부가 단 한 마디도 없이 그냥 뺏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는 대기업에게, 대기업은 업체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죠. 사람들이 살아갈 대책을 같이 논의해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게 무리한 요구입니까.”
 
[Tip]
· 골재
: 콘크리트 재료로 쓰이는 모래와 자갈
· 보 : 하천에 저수공간을 확보하고 유락지 등을 조성하기 위한 일종의 둑
· 턴키방식 :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발주하는 것
 
골재채취 단가를 놓고 골재업체와 대형건설사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골재업체 보상 대책으로 기존 업체의 준설선을 이용할 경우 입찰 시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골재업체를 4대강 사업에 참여시키면 노동자들의 고용도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4대강 턴키공사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들의 담합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단가를 놓고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골재협회 관계자는 “국책사업이라 참여하려고 했지만 대형 건설사의 하청을 거쳐 계약을 하면 가격이 50%로 떨어져 수지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예측한 준설선 임대비용은 1세제곱미터 준설에 5천200원이었는데 건설사는 2천500원가량을 제시했다”며 “우리와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에게 대책을 요구하면 건설사로 책임을 돌리고, 건설사는 하청업체에게 미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정부의 중재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고용된 노동자들의 향후 대책에 대해서는 “협회의 존폐도 위태로워 현재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이대로 가다간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날 수 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논란을 지켜보는 골재채취노동자들은 속만 탄다. 골재채취노동자 김 아무개씨는 “골재업체들은 폐업할 것에 대비해 과도하게 비싼 단가를 제시하고 건설사들도 하도급을 통해 터무니 없이 단가를 낮춘다”며 “고래싸움에 노동자들의 등만 터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정부 뿐”이라며 “국책사업인 만큼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현 법적 체계로는 단가를 놓고 벌어진 민간 사이의 갈등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동자들의 향후 대책에 대해서는 “현 골재업체들이 4대강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 하겠다”고만 답했다.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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