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거동이 불편하시면 간호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렇다고 요양시설에 맡기기도 힘들죠. 부모를 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고 나서 사회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7월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어느덧 1년을 훌쩍 넘어섰다. 아직은 우리에게는 낯선 노인장기요양보험. 하지만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기간호에 지친 보호자들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지난 13일 <매일노동뉴스>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용인지사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용인운영센터를 찾았다.


“노인 지원과 가족 부담 경감”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신청이 들어오면, 우선 센터 직원이 인정조사를 나갑니다. 어르신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때 자식들이 자신을 갖다 버린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들이 꽤 있어요. 우시는 분들도 많죠.”
용인운영센터의 황병두(46) 과장. 그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만 19년을 근무한 베테랑이다. 지난해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될 때 자원해서 이 일을 맡았다. 황 과장은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질병 등으로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65세 이상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이나 가사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지급하는 사회보험제도다. 노후의 건강증진과 생활안정 도모는 물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인정신청이 접수되면 센터 직원이 현장을 방문해 노인의 상태를 직접 살피는 1차 인정조사가 진행된다. 이어 등급판정위원회로 넘어간다. 여기서 1~3등급의 판정을 받으면 급여대상이다.

황 과장과 이미숙(35) 대리는 이날 오전 2인1조를 이뤄 갱신신청이 들어온 박일남(가명·71) 할아버지를 만나러 용인시 기흥구 사랑나무요양원(원장 장판우)으로 향했다.
“원칙은 2인1조이지만 평소에는 쉽지 않아요. 1명당 300건 정도를 담당합니다. 용인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대부분 혼자서 합니다. 오늘은 예외이지만요. 하하~.”
이 대리도 황 과장 못지않은 15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두 사람 모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일 처리가 정확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정신청 들어오면 직접 방문조사

“갱신신청은 이미 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받고 있는 노인들이 또 신청하는 겁니다. 급여대상자들은 대부분 혼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에요. 갱신신청이 불가피하죠.”
수급자들은 대략 1년마다 갱신신청을 해야 한다. 박일남 할아버지는 최중증인 1등급을 받은 수급자다. 박 할아버지가 요양 중인 사랑나무요양원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선입견 탓이겠지만, 흔히 생각하는 ‘시설’과는 좀 달랐다. 사랑나무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할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어린아이 같이 밝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요양시설의 모습이 다 이곳 같지는 않습니다. 이곳의 수준이 높은 편이지요. 다만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뒤 기준이 엄격해졌기 때문에 과거와는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사랑나무요양원은 지난 5월 개원했기 때문에 시설에 상당히 신경을 쓴 눈치다. 기존의 시설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5년 내에 시설개선을 마쳐야 한다.
황 과장의 설명을 들으며 박 할아버지를 만나러 2인이 함께 쓰는 공동침실로 갔다. 박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쪽 팔이 없었다. 담당 요양보호사가 없으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어르신~! 저 왔어요. 기억하세요?”
황 과장은 박 할아버지 귀가 어두운 점을 감안해 최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옷 입고 벗고 입는 거 어떻게 하세요?”
“세수할 때 요양보호사와 같이 화장실 가서 하세요? 아니면 침대에서 하세요?”
“우리 악수 한번 해 봐요. 팔도 쭉 들어 보세요. 얼굴을 손으로 잡아 보시고요.”
그저 “몰라”를 연발하던 할아버지가 “뭐하는 거예요?”라고 갑자기 묻는다. “또 조사해야 해요. 그래야 또 1년을 이곳에 계실 수 있는 거예요.”

“어르신~, 저 왔어요!”

그래도 답답했을까. 꼼꼼히 상태를 체크하던 황 과장에게 박 할아버지가 “귀찮아요” 하며 짜증을 낸다.
“그래도 처음 여기 오실 때보다는 나아진 모습입니다. 처음엔 얼마나 낯을 가리셨는데요. 공격성도 있으셨고요. 할아버지는 직접 하실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박 할아버지의 담당 요양보호사의 말이다. 평소 박 할아버지는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세수도 직접 물수건을 가져다가 해 주고, 식사도 하나하나 도와줘야만 드실 수 있단다.
“할아버지, 제가 몸을 좌우로 옮겨 볼게요. 흠…. 모로는 못 세우네요. 일으키는 건 어때요?”

“힘들어요. 오래 앉아 있지 못하세요. 허리가 안 좋아요.”
옆에서 지켜보던 고복신 간호부장이 박 할아버지의 상태를 상세히 설명했다.
“어르신, 대소변 본 거 느껴요?” “몰라” 금세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대답.
“평소 기저귀를 차세요. 대소변을 보시면 소리를 지르지만,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시죠.”
다시 담당 요양보호사의 설명이다.

“할아버지, 만약에 요양보호사와 외출을 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그때 어떻게 여기 찾아올 거예요?” 다시 끈질기게 이어지는 황 과장의 질문.
“몰라. 왜 귀찮게 많이 물어봐? 빨리 가!”
그 순간, 박 할아버지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울지 말아요. 괜찮아요. 어르신~.”

“울지 말아요, 어르신. 괜찮아요. 금방 끝날 거예요.”
손을 꼭 잡고 토닥토닥 할아버지를 달래는 황 과장. 할아버지의 눈물이 잦아든다.
“그만해요. 힘들어요.” 할아버지에겐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나 보다.
하지만 황 과장은 힘들더라도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는 게 할아버지를 돕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팔이 못 올라갈 정도로 뻣뻣하네요. 몸을 모로 세우지 못하고 곧바로 떨어지고요. 할아버지에겐 어쩌면 자식들과 떨어진 채 여기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슬프신지 몰라요.”
노인들이 처음 장기요양보험 수급자가 돼 요양시설로 들어오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금세 적응하는 노인들도 있다.

“전반적으로는 공동생활에 쉽게 적응하는 것 같아요. 홀로 집에서 거동도 못하고 있는 것보다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분들과 만나 도움을 받으며 일상생활을 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이때다. “아들 안 왔어요?” 몸집이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간호부장을 안고 웃으며 물어본다. 할머니는 간호부장을 볼 때마다 얼싸안고 좋아하며 아들의 방문 여부를 묻는단다.

“이곳은 장기요양 71베드, 단기요양 22베드를 갖추고 있고요. 현재는 60명(단기 22명, 장기 38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있어요. 요양보호사 18명과 간호사·물리치료사를 포함해 직원은 25명이고요. 요양보호사는 하루 8시간·12시간·24시간으로 나눠 일합니다.” 장판우 원장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걸려요”

노인들의 하루 일과는 꽤 꼼꼼하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하루 일과는 기상에서 식사·체조·물리치료, 투약·간호관리, 산책·휴식, 그리고 취침으로 짜여져 있다. 일요일은 가족과의 면회시간.

또한 레크레이션, 음악·미술치료, 에세이 읽어주기, 윷놀이 등 다양한 놀이와 노래교실·사회체육·글씨공부 등 각종 프로그램을 매주 번갈아 가며 배치하고 있다.
특히 요양원에 간호사와 물리치료사가 있긴 하지만, 별도로 협력병원을 두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의료진이 직접 방문해 노인들의 건강을 점검한다. 따로 치료를 요하는 경우는 요양보호사가 노인들을 모시고 협력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마침 곱게 정장과 모자로 꽃단장을 한 할머니가 요양원 입구에 나와 계셨다.
“이 할머니는 따로 치료받으실 게 있어서 병원에 가실 거예요. 할머니도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는 적응을 못해서 우울해 하셨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또 어떤 분들이 요양하고 계신가요?”

그때 마침 다른 이들에 비해 한참 젊어 보이는 한 사람이 휠체어에 앉아 물리치료실를 받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분은 젊어 보이는데….”
“저 분은 51세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노인성 질병으로 이곳에 머물게 되셨지요.”
65세 이상이 아니더라도 치매 등 노인성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들도 장기요양보험 대상이다. 특히 그는 가족도 없는 데다,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어 요양원에 오게 됐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다음은 재가 인정신청 사례입니다. 직접 집을 방문할 거예요.”
황 과장과 이 대리가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용인시내에 있는 한 아파트. 2주 전 갑자기 거동을 못하게 된 고봉수(가명·67세) 할아버지를 찾았다.

아내인 보호자가 황 과장과 이 대리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1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은 있었지만, 치료 받고 괜찮았는데요. 2주 전 갑자기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더니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고 할아버지는 누운 채 몸도 못 돌리고 대·소변도 기저귀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족들은 고 할아버지를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좀체 힘을 못 써 119까지 불렀다고 안타까워했다.

황 과장이 고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우물우물) 고봉수….”
“할아버지, 나이는요? 나이요!” “….”
“어르신, 지금 무슨 아파트 살아요?” “….”
“평소 정신분열증까지 앓았는데요. 지금은 사람도 못 알아봐요. 왼쪽 손발이 팔딱팔딱 뛰고요. 식사도 한두 숟가락밖에 못합니다. 약도 못 먹네요.”
“갑자기 인지능력이 떨어졌나요?”
“예, 갑자기요. 다만 평소엔 헛것이 자꾸 보인다고 하고, 혼자 통화하기도 했지요. 환청 때문에 정신분열 진단을 받았어요. 꽤 오래됐죠.”
“보호자께서는 어떻게 해 주길 원하세요?”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해도 병원비 때문에 엄두가 안 나고요. 지금 딸이 출산을 앞두고 있어 요양이 쉽지도 않아요. 요양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고생해 온 보호자의 입에서 한숨이 묻어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 받기를

돌아오는 길, 황 과장과 이 대리의 표정이 굳어 있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도 많겠지요?” “그럼요. 훨씬 안 좋은 경우도 많죠. 용인은 지역이 넓어 도심을 벗어나면 바로 농촌인데요. 다 쓰러져 가는 폐가에 사시는 노인들은 거동이 불편해 등급을 받아도 돈이 없어 요양을 못 받기도 합니다. 너무 안타깝지요.” 이 대리가 담당하는 한 사례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시설급여)가 본인부담금이다. 예컨대 1등급의 경우 한 달 수가가 평균 149만원 정도인데, 이 가운데 본인부담금 20%와 식자재 등 비급여 부분까지 합치면 한 달에 50만~60만원은 본인이 내야 한다. 기초수급자는 본인부담금을 면제받지만, 차상위 계층은 등급을 받아도 요양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어떤 때는 자식들이 부모를 핍박해서 허위진술을 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등급을 받아서 부모를 요양시설로 보내 버리려는 거죠.”
그런 경우는 딱 보면 안다고 한다. 노인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등급을 줄 수는 없다. 센터 직원들은 이럴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늘 보람을 느낀다는 황병두 과장과 이미숙 대리.
“독거노인이나 기초수급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때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 더 많이 홍보가 됐으면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병으로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장기요양급여(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다. 재원은 장기요양보험료(건강보험료×4.78%)와 국가부담(장기요양보험료 예상수입액 20%+의료급여수급자 급여비용), 본인일부부담금(재가급여 15%·시설급여 20%)으로 운영된다.
장기요양 인정신청이 접수되면 공단직원이 직접 방문해 장기인정조사표에 따라 심신상태와 희망급여 종류 등을 조사한다. 이때 신청인의 심신상태를 나타내는 52개 항목의 조사결과를 입력해 장기요양인정점수를 산정한다.
이어 지역단위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회에서 장기요양인정조사결과와 의사소견서 등을 토대로 장기요양등급을 판정한다. 1~3등급이 인정되면 수급자가 된다.
최중증인 1등급은 하루 종일 와병상태에서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중증인 2등급은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앉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타인의 완전한 도움이 필요한 상태, 중등증인 3등급은 타인의 부분적 도움이 필요하고 상당한 장기요양보호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급여의 종류는 재가급여·시설급여·특별현금급여로 나뉜다. 재가급여는 방문요양·방문목욕·방문간호·단기보호와 주·야간보호, 기타재가급여(복지용구)가 있다. 시설급여는 노인(전문)요양시설과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특별현금급여는 가족요양비로 각각 구분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요양보호사다. 요양보호사는 일정기간 요양보호사 교육을 이수하고 국가자격을 딴 이들로 장기요양기관에 소속돼 수급자의 신체활동·가사활동을 지원하는 조력자를 말한다. 요양보호사는 가정을 방문하거나 노인요양시설 등에서 수급자의 신체활동·가사활동·개인활동·정서지원활동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제도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비판도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현재 장기요양보험 신청자는 전체 노인인구(517만6천명)의 9.1%인 47만2천647명이나 인정자는 54.9%인 25만9천456명, 이용자는 인정자의 78.0%인 20만2천492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는 전체 노인인구의 3.6%에 머물렀다.
반면 시설과 노동력은 과잉공급됐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요양시설은 2천16개, 재가기관은 1만3천815개로 지난해 7월의 1천395개, 6천340개에 비해 각각 44.5%, 117.9%나 급증했다. 또한 요양보호사는 자격증 소지자가 같은 기간 13만5천835명에서 49만56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고용상태인 요양보호사는 12만342명으로 전체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요양보호사들은 낮은 임금을 받는 데다,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밖에 전체 요양시설 충족률은 106.7%에 달하지만, 수도권 지역의 경우 수혜등급판정을 받고서도 시설입소가 쉽지 않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실제 전국의 요양시설 2천16개 중 서울에 있는 시설은 7.9%인 160개(5천988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사회공공연구소는 장기요양보험제도 평가를 통해 “장기요양서비스 수요에 적절한 요양보호 인력에 대한 공급계획, 시장에서 민간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좋은 서비스를 위한 경쟁구조 창출을 위한 공공요양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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