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나른한 오후. 남자들은 족구경기 한 게임의 유혹에 빠진다. 실제로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건물 뒤편에 있는 공원에서는 매일 점심시간에 족구경기가 열린다.
회사 동료 직원들과 족구경기를 하다 넘어져 다쳤을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자가 어떤 행위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을 때 업무상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어야 한다.

동료들과 족구하다 왼쪽 발목 부상

아동교육 관련 교재를 제작하는 한 주식회사에 근무하던 ㄱ씨는 지난 2003년 3월15일 회사 근처 체육공원에서 동료 직원들과 함께 족구경기를 했다. ㄱ씨는 족구를 하다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에 부상을 당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당시 회사는 아동교육 관련 교재의 그림·디자인·동영상 등을 제작·판매하는 기존 업무 외에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인터넷 영어교육사이트를 구축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외근 전담직원 3명을 제외하고는 내근 직원 30명 대부분이 평일 야근은 물론, 토요일 정규 근무시간이 끝난 오후 1시 이후에도 늦게까지 남아 연장근무를 했다.

그러자 노동자들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 작업을하다 보니 운동량이 많지 않아 직원들이 소화불량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근무능률 향상을 위해 특별한 일정이 없거나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주 토요일 점심식사 후 주로 남자 직원들을 데리고 체육공원에 가서 족구경기를 했다. 여성 직원들은 응원을 하거나 산책을 했다.

이렇게 족구경기를 하고 나면 직원들은 대표이사와 함께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연장근무를 했다. 평소 직원들에게 팀워크와 단결을 강조했던 대표이사는 남자 직원들에게 족구경기에 참가할 것을 독려하곤 했다.

ㄱ씨는 족구를 하다 발목을 다쳐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했지만 공단을 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ㄱ씨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족구경기는 직원들의 사적인 친목행사에 불과했을 뿐 전반적인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은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업주 지배하에 있었다면 단순 친목행사 아니다"

이 사건의 원고는 ㄱ씨,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ㄱ씨는 원심에서 졌지만, 대법원은 “(원심에) 채증법칙을 위반하고 업무상재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노동자가 어떤 행위를 하다 부상을 입은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노동자의 본래 업무행위 또는 업무의 준비행위 내지 정리행위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되는 생리적 행위 또는 합리적·필요적 행위 △사업주의 지시나 주최에 의해 이뤄지는 행사 △취업규칙·단체협약 기타 관행에 의해 개최되는 행사에 참가하는 행위 등 그 행위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여야 한다.
원심은 이 회사의 족구경기를 단순히 직원들의 사적인 친목행사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토요일 오후 연장근무를 하는 남자 직원들은 족구경기에 참가하라는 대표이사의 독려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경기를 하면서 필요한 비용은 대표이사가 부담했다. 대법원은 “족구경기의 주최자·목적·내용·참가 인원과 그 강제성의 정도·운영 방법·비용 부담 등의 사정에 비춰 볼 때, 사회통념상 이 사건의 족구경기는 노무관리상 필요에 의해 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주최하거나 관행적으로 개최된 행사”라며 “전반적인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므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관련판례]
대법원 1996년8월23일 선고 95누14633 요양불승인처분취소
대법원 2007년 5월14일 선고 2007두24548 요양불승인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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