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 문제는 지난 5년간 한국 노동정치의 숨겨진 최대 쟁점이었다. '97년 이후 노동조합(지도부)에게 이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았다. 발단은 복수노조 허용을 둘러싼 '96년의 노개위 공방에서 비롯된다.

한국노총은 상급단체만의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당시의 통념을 뛰어 넘어 복수노조의 전면허용을 강하게 요구했고, 이에 대한 견제장치로 재계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요구했다. 노사의 이런 요구에 대한 여야의 절충안이 현행 규정이다. 경총은 '97년 노동법개정의 최대 성과로 이 규정의 신설을 들었고, 한국노총은 이 규정의 삭제에 공을 들였다.

'97년 국민회의(현 민주당)와 정책연합을 할 때나 '98년 2월 대타협과정에서도 이는 최우선의 과제 중의 하나였다. 박인상·이남순 집행부는 운명을 걸고 이 문제해결에 나섰으나 재계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치열한 공방속에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에 불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무임승차자의 입장을 취해왔고, 노동계의 부담은 한국노총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난 2월9일의 노사정합의가 갖는 노동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번 합의는 현실의 승리이자 원칙의 유보를 의미한다. 그래서 노사는 승리자이자 동시에 패배자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승리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현행 규정을 그대로 둘 경우 살아 남을 노동조합이 얼마 없을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노조의 허용은 그렇지 않아도 낙후된 기업별 노사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원칙으로 보면 노조 스스로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은 당연한 요구이다. 노동계의 입장에서도 노동조합의 자주성 확보를 위해서 이 문제의 정상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또한 복수노조의 전면 허용은 사측의 노조회피전략이나 기존노조의 횡포로 인하여 단결권이 침해되었던 많은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조치였다.

이 두 조항이 법에 들어 올 때는 노사의 이러한 원칙적 요구가 살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그 동안 노사가 그렇게 집착했던 무노동무임금(노조 재정자립)과 단결권 보장의 원칙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 또한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없다. 정부·여당은 전임자 문제에 관한 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2000년초 임시국회에 정부의 개정안을 제출한 바도 있다. 더구나 OECD나 ILO등에 복수노조 허용 스케쥴을 밝혀 놓고도 정부가 이 합의에 참여한 것은 공정한 규칙제정자로서의 고유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노사정이 이렇게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은 지난 4년간 원칙에 충실한 노사관계 구조개혁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60% 이상이 100인 미만의 조합원을 갖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영세하다. 하나의 교섭단위로서 협약을 관리하고 조합원의 고충처리에 응할 수 있는 최소 규모를 300인으로 잡는다고해도 이 기준에 미달하는 노조가 87.5%나 된다. 이렇게 낙후되고 후진적인 조직구조를 뜯어고치려 고 하는 것이 원칙에 입각한 전임자문제 해결방안이었다.

노조의 영세성과 이로 인한 상시적인 노조의 불안정이라는 근본문제는 그대로 놔둔 채 전임자나 재정자립문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산별노조건설은 노동계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고 선진적인 몇몇 연맹에서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이러한 흐름을 재계와 정부가 체계적으로 호응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 간다면 노사관계 구조개혁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이런 구조개혁 과정을 밟아간다면 전임자문제도 보다 원칙에 충실하면서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아볼 수 있었다. 기업단위 복수노조로 인한 부작용도 하나의 사업장에는 하나의 협약만이 지배하는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단결보장 원칙을 지키면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낙후되고 후진적인 현실을 지키기 위하여 원칙에 충실한 노동조합의 구조개혁을 포기 내지는 순연시킨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의 노동정치가 지난 4년간 맡겨진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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