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영국에서는 노동계의 파업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른바 '불만의 겨울'의 시작이었다. 그 해 1월 철도 운전기사 파업은 간호사 파업으로 이어졌고, 전체 공공부문노조의 연대파업으로 확산됐다. 앰뷸런스 운전기사 파업으로 인한 업무공백 해결을 위해 군대가 투입되고, 환경미화원 파업으로 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났다. 불만의 겨울은 당초 78년 12월의 대형트럭 운전기사의 비합법 파업이 도화선이 됐다. 파업이 산업현장을 휩쓸면서 79년의 파업손실일은 전년에 세 배에 달하는 2천947만일에 달했다.

운수노조와 공공부문노조의 요구는 ‘임금인상’ 이었다. 당시 노동당 정부는 경제위기로 인한 물가폭등에 대처하기 위해 공공부문 임금인상 억제정책을 펼쳤다. 영국 노총(TUC) 지도부는 임금협약을 체결해 노동당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런데도 물가 오름세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노동당 정부와 노총 간의 임금협약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먼저 민간부문에서 임금인상이 현실화됐다. 그럼에도 노동당 정부는 공공부문의 임금억제 정책을 고수했다. 이것이 저임금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불만을 폭발시킨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나타날 조짐이다. 노동계가 겨울투쟁(동투)을 시작한 것이다. 공공기관노조가 선두에 섰다. 민주노총 소속 공공기관노조인 철도노조, 공공노조 가스공사지부·사회연대기금지부·가스기술공사지부·경북대병원분회가 5일부터 차례로 파업을 벌인다. 이에 앞서 발전노조가 지난 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한국노총 소속 공공연맹과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은 지난 4일 공동투쟁을 선언했다. 양대노총 지도부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금임금 자율지급을 요구하며 공동투쟁을 추진한 것이 뒷받침됐다. 공공기관노조들은 임금인상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의 철회가 핵심 요구사항이다.

공공기관을 선진화한다는데 왜 노조들이 반대할까. ‘선진화’라는 명분만 그럴듯할 뿐 사실상 ‘노조 무력화’ 또는 ‘구조조정 정책’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올해 초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신입사원 초임삭감과 기존직원 임금반납을 추진했다. 물가가 폭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공기관노조는 위기극복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임금억제 정책을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도 공공기관노조에게 돌아온 것은 민영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단체협약 해지였다.

지분매각이 예정된 인천국제공항, 경쟁체제 도입을 빌미로 민영화가 추진되는 한국가스공사가 대표적이다. 촛불집회를 통해 나타난 민영화 반대 민심을 정부가 외면한 것이다. 신규사업으로 2천200여명을 증원해야 함에도 되레 5천여명의 감원을 추진하고 있는 철도공사는 대표적인 거꾸로 된 행정이다. 타 공공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대부분이 정원의 10% 감축을 해야 할 처지다. 일자리를 늘려도 시원치 않은 판에 질 좋은 공공기관 일자리를 되레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을 휴짓조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공세적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격적 단체협약 해지로 노사분규가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노동연구원 사태를 확산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울러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정부 스스로가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양대노총 공공기관노조가 공동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 아닌가.
노동계의 겨울투쟁으로 사태가 심상치 않음에도 정부는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공기관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체협약 해지를 유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 강경책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한 공공부문노조의 투쟁은 불만의 겨울에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회복세에 들어선 한국 경제가 갈등의 회오리로 인해 침몰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공공기관노조와의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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