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8시, 관세청 인천본부 제2지정장치장. 공식업무가 시작하려면 1시간이나 남았지만 인천세관 별관에 위치한 이사화물팀 민원실은 두터운 서류뭉치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해외에서 살다가 국내로 들어오는 주재원과 유학생·이민자들의 이삿짐은 이곳을 거친다. 세관에서는 1년 이상 해외에 주재했던 이들의 이삿짐 가운데 귀금속이나 외제차를 비롯한 과세품목에 세금을 부여한다. 복잡한 통관절차 탓에 해외이사 전문 물류업체나 관세법인이 화주(이삿짐의 주인)를 대행하고 있다. 바다 건너온 이삿짐이라도 보통 현관 앞까지 배달(Door To Door)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통관절차를 마치려는 물류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오전 7시부터 줄 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민원실 문을 열고 나오면 여느 항만의 장치장과 다르지 않다.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컨테이너 속 물건들이 손때 묻은 유모차나 침대·장롱 심지어 이 빠진 그릇 같은 세간이라는 점이다.



25년째 한국관세무역개발원 물류사업부문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기봉(52)씨는 싸늘한 날씨에도 반팔 차림이다. 벌써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김씨는 관세청 공무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컨테이너에서 이삿짐을 하나하나 꺼내 놓는 일을 한다. 김씨가 이삿짐을 풀어놓으면 세관원들이 과세 여부를 따지거나 혹여나 이삿짐에 섞여 있을 밀수품을 검사한다. 결국 김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일을 한다.

개발원은 관세 행정지원을 목적으로 지난 64년 (사)한국관세협회로 설립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통관을 기다리는 화물관리와 무역에 관한 통계와 연구사업이 주력분야다. 개발원의 관리대상 화물은 다양하다. 수출입화물은 물론 해외거주자 이사화물과 해외여행자의 휴대품까지도 이들 손을 거친다. 통관업무의 행정지원부터 보세물품이나 밀수품 보관과 처리도 개발원의 몫이다.

“이제는 포장상태만 봐도 순수한 이삿짐인지 밀수품인지 단번에 알 수 있어요. 요즘 밀수품에는 중국산 녹용이나 가짜 비아그라가 많아요.”

김씨와 함께 압수품보관 창고에 들어서니 스카치테이프로 꽁꽁 쌓인 자루와 종이박스가 천장까지 쌓여 있다. 밀반입된 중국산 녹용과 홍삼엑기스·백삼 등이라고 한다. 국산으로 속여 시중에 풀리면 약 10억원대를 호가하는 양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삿짐 싸고 푸는 사람들

시곗바늘이 9시를 넘기자 컨테이너가 쌓인 장치장이 분주해졌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각지에서 온 이삿짐센터 트럭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지게차 여러 대가 컨테이너 사이를 오가며 짐을 내리느라 북새통이 따로 없다.

해외거주 기간이 짧은 유학생의 경우 이삿짐이 단출하다. 그래서 20피트짜리 한 개의 컨테이너 안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40명의 이삿짐이 들어간다. 이렇게 화주가 여럿인 컨테이너를 LCL(혼적화물)이라고 부르는데, 개발원 노동자들은 각각 화주들의 통관시점에 맞춰 컨테이너 속에서 이삿짐을 꺼내 분류한다.

김씨는 “그나마 성수기가 끝나서 요즘은 살 것 같다”며 땀을 훔쳤다. 방학이나 회기가 시작되는 1~2월과 7~8월에는 월 1천대가량의 컨테이너가 이곳으로 온다. 비성수기는 5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이삿짐을 옮기는 작업자 가운데 개발원 유니폼을 입은 직원보다 ‘○○익스프레스’ 마크를 단 물류회사 직원이 더 많다. 박주동(44) 공공노조 한국관세무역개발원지부장은 “인천세관 이사화물을 처리하는 제2지정장치장에 근무하는 개발원 직원은 총 12명”이라며 “그래도 총 4개의 인천세관 지정장치장 중에서는 인력이 가장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일손은 딸리고 이사화물은 당일 화주의 현관 앞에 도착해야 하니, 가장 속이 타는 것은 물류업체다. 물류업체 직원들이 두 팔 걷고 거드는 이유다. 김기복씨는 “하루는 개발원 물류사업소장이 와서 ‘우리 직원들 도대체 어디 갔냐’며 호통을 친 적도 있다”며 “개발원 인력만으로 이사화물을 처리하면 1인당 컨테이너 2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해가 저물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이곳에서 25명이 근무했지만 외환위기로 구조조정 한파를 거친 데다 2000년 이후부터는 자연감소분에 대한 인력충원마저 중단돼 인력난은 고질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비아그라인지, 나사못인지는 굴을 파 봐야 알지”

제2지정장치장에서 차로 5분 정도 이동하면 제3지정장치장이 나온다. 인천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화물 컨테이너에서 빼낸 물량 중 약 3%가량이 이곳에 모인다. 인천세관이 ‘관리대상 화물’로 분류하는 것들이다. 아무리 세관이라도 수입화물 모두를 검색할 수 없으니 샘플조사를 하는 것이다. 총기나 마약류처럼 국내로 반입이 금지된 위험화물부터 원산지표기를 하지 않은 농산물, 짝퉁 명품가방까지 국경을 통과해서는 안 되는 화물이 있는지 샅샅이 뒤진다.

이곳에 도착한 컨테이너들은 우선 통째로 엑스레이 촬영실로 직행한다. 그래서 적하품목과 다른 형태의 영상이 찍히면 실려 있는 짐들을 꺼내 검사한다. 정혜영(54) 제3지정장치장 과장의 손에는 방금 엑스레이 촬영을 마친 컨테이너의 영상사진이 들려 있다. 적하목록에는 의류로 표시돼 있는데, 안쪽에 실린 작은 상자는 유난히 시커멓게 찍혔다. 열어 보기 전에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엑스레이 촬영에서 까맣게 나오면 십중팔구 쇠붙이인데 간혹 금괴가 나올 때도 있어요.”
그가 컨테이너 문을 열고 지게차로 실린 화물을 내리자 옆에 있던 화주가 성을 낸다. 한시가 급하다고 성화를 부리는 화주는 세관원 대신 정 과장에게 온갖 분풀이를 했다.

보통 이 과정을 ‘개봉검사’라고 하는데 화주들이 가장 꺼려 하는 부분이다. 사실 개발원 노동자들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보통 의심화물은 12미터(40피트) 컨테이너 가장 안쪽에 깊숙이 실려 있기 마련이다. 정육면체 컨테이너의 출구는 하나뿐이서 의심화물을 찾으려면 모든 짐을 다 꺼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굴을 판다’고 표현한다.

가죽 허리띠가 실려 있어 박스 한 개가 40킬로그램이 넘는다. 일일이 손으로 옮겨 내리는 데 땀이 비 오듯 흘려 내렸다. 문제의 화물을 꺼내 열어 보니 옷을 만드는 데 쓰는 금속부품들이다. 정 과장은 내린 짐을 다시 묵묵히 싣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니까 힘들죠. 원단은 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넘을 때도 있거든요. 그래도 어쩝니까. 비아그라인지 나사못인지는 굴을 파 봐야 아는데…. 세관원과 화주 사이에 끼인 우리들만 온갖 고생하고 욕은 욕대로 먹어요.”

일제 코끼리밥솥 있던 창고에는 중국산 짝퉁이 가득

제4지정장치장도 관리대상 화물을 취급한다. 압수품 창고에는 건고사리와 참나물이 들은 종이박스가 가득 쌓여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찍혀 있지만 중국산이어서 이곳으로 실려 왔다. 대두나 땅콩이 든 자루도 수백 포대에 달했다.

창고 한 구석에서는 비닐로 일일이 포장된 오리털파카를 꺼내 ‘MADE IN CHINA' 도장을 찍고 있다. 원산지 미표기로 압수한 물품들이다. 그 옆에 놓인 박스에는 루이비똥이나 샤넬이라고 표시된 가방과 지갑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내국인이 해외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주문한 ‘짝퉁’들이 개발원 노동자들의 눈에 띈 것이다.

80년대만 해도 일제 코끼리밥솥이나 소니워크맨이 대부분이었던 압수품창고는 90년대 들어서부터 중국산 농산물과 짝퉁 명품가방에 자리를 내줬다. 23년을 이곳에서 일한 최창영(55)씨는 “세관창고를 열면 세월의 흐름이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거주자들의 이삿짐도 달라졌다. 2000년대 이전에는 외국주재원들이 타던 차를 국내로 들고 들어오는 경우 벤츠나 BMW가 주종을 이뤘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 외제차는 줄고 제네시스나 아젤라(그랜저)·아반떼(오피러스) 같은 국산차가 훨씬 많다. 성능면에서 큰 차이가 없으니 이왕이면 면세혜택이 있는 국산차를 구입하는 게 이득이라고 최씨가 귀띔했다.

124년 전 세워진 세관창고에는 보따리 무역상들의 눈물이

인천항 제2국제부두에는 중국 칭따오와 텐진·위하이항에서 출발한 여객선들이 하루 세 차례 들어온다. 이날 오전 11시30분 입항한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의 입국심사는 오후 3시가 넘어서도 끝날 줄을 몰랐다. 보따리 무역상들이 들고온 짐들을 일일이 열어 보는 통관절차에 대부분의 시간을 잡아먹었다. 오영자씨도 보따리 무역상이다. 그의 가방에서는 대두와 땅콩·참기름 등 온갖 식품들이 가득 들어 있다. 세관을 통과하려면 곡물은 품목당 5킬로그램, 총 45킬로그램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세관원들은 오씨의 가방에서 통관 허용기준보다 5킬로그램이 넘는 고추를 발견했다.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하는 오씨와 ‘매일 오면서 이러면 안 된다’는 세관원이 승강이를 벌이는 사이, 개발원 유니폼을 입은 최영진(37)씨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추 5킬로그램을 비닐에 담아 가져온다.

“보따리 무역상들은 스스로를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고약할 때가 많아요. 우리는 세관원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멱살 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쌍욕은 기본이고 칼을 꺼내서 위협하기도 해요.”

보따리 무역상들은 중국에서 사온 물건들을 싣고 스무 시간 동안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하면 머무르는 시간은 2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여객항에 미리 나와 있는 수집상에게 물건을 넘기고 곧바로 중국으로 가는 배를 잡아탄다. 이렇게 팔린 고추는 1킬로그램당 3천~4천원을 받는데 보따리 무역상들에게 통관 심사대는 천당이냐, 지옥이냐를 가름하는 문이다. 그러니 세관원이 압수해 개발원 노동자들의 손에 넘겨지는 고추 5킬로그램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여행객들의 휴대품에서 압수한 물건들은 제1지정장치장으로 옮겨진다. 이곳은 우리나라 세관창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무려 124년 전인 일제시대에 세워졌다. 곰팡이가 필 것 같은 창고에는 고추며, 참기름이며 수백개가 넘는 압수품이 반송되길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반송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추 3천만원어치를 수입하면 관세가 1억원 가까이 붙기 때문에 대부분 잃어버린 셈 친다. 최씨는 “농민보호를 위해 농산물 관세가 천정부지로 뛰면서 보따리 무역상들도 크게 줄었다”며 “압수된 농산품은 일부 공매에 붙여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각처리된다”고 말했다.

“특혜 시비 전에 노동의 참모습 알아줬으면…”

개발원 노동자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매년 국정감사마다 불거져 나오는 특혜시비다. 과거 개발원의 명칭은 ‘관우회’였다. 임원 가운데는 관세청 퇴직직원들도 일부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유길석(54) 개발원 이사는 “보시다시피 우리 직원들은 통관과정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며 “옛 명칭 탓인지 아직도 퇴직 관세공무원들 자리마련을 위한 이익단체 아니냐는 오해를 할 때가 많아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급기야 공정거래위원회는 9월말 퇴직 공무원들이 독점해 오던 ‘밥그릇 챙기기’ 사업에 제동을 걸겠다며 개발원이 도맡아 하던 세관 지정장치장 관리업무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박 지부장은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영업용 창고가 세관 지정장치장이 될 경우 통관관리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일부 영업용 창고와 화주 간의 유착으로 밀수 중고차 시중유통 등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무역시장은 FTA(자유무역협정) 시대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4년 칠레와의 FTA협정 발효를 시작으로 싱가포르(2006년 3월)·ASEAN(2007년 6월) 등 14개국과 FTA 체결을 완료했다. 또 미국과의 FTA협상 타결을 비롯해 일본 등 41개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계획 중인 협상들이 모두 마무리되는 2012년에는 FTA 체결국과의 교역량이 8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FTA시대는 사실상 무관세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국가 또는 지역 간 관세장벽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수출입업체나 제조업체들은 웃고, 농민들은 울상을 짓는다. FTA시대로 인해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것은 통관정책이다. 사실상 관세행정에서 국경이 사라지는 개념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관심사도 점점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94년 전자통관시스템 도입으로 통관절차가 신고제로 전환됐다. 이어 96년 7월 관세법이 개정되면서 원칙적으로 수입신고를 하면 사후에 세액심사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2004년 1월에는 자율심사제도가 전면 도입됐다.
이로 인해 시간은 단축됐지만 밀수는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관세청 국정감사에서 강성종 민주당 의원은 “연간 수입되는 전체 화물량의 85~95%의 수출입물품이 신고서류 검토만으로 무사통과되고 있어 사실상 밀수업체들에게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관세청이 지속적으로 ‘수출입통관 간소화’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세청이 간소화 정책을 실시하는 이유는 통관규제가 너무 엄격하고 절차가 복잡해 물류비용과 시간지연이 문제라고 기업들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3년 기준으로 실제 총 수입화물의 물품검사 비율은 수입건수 403만7천여건 중 22만6천여건으로 전체 물량 중 5.6%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짝퉁 밀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관세청 조사총괄과에 따르면 2007년 짝퉁 압수 규모는 진품환산가 기준으로 6천803억원이었으나 2008년에는 9천344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관 담당자의 1인당 업무처리 건수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점도 수출입통관업무의 부실원인으로 지적됐다. 세관원 1인당 업무처리건수는 93년 941건에서 2000년 1천735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세관 지정장치장 관리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우려도 이와 같은 차원에서 제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월 청와대에 ‘경쟁제한적 진입규제 개선방안’을 보고하면서 세관 지정장치장 화물관리인에 대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관세청도 지난달 한국관세무역개발원 소유의 지정장치장 화물관리를 내년 상반기 중 지정기준 및 재지정 절차를 마련, 민간의 집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공노조는 “세관 지정장치장을 영리 목적으로 운영할 경우 온갖 비리가 발생할 수 있다”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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