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공방이 다시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 때문이다. 헌재는 29일 신문법·방송법 개정안 처리 절차가 ‘위법’하다고 했지만, 법안의 가결 선포는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과정은 문제가 있었지만 결정은 유효하다"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헌재는 야당의원 93명이 김형오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의원들의 권한침해가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신문법 표결시 대리투표·부정투표 여부와 관련해 재판관 9명 가운데 과반수인 5명이 위법성을 지적했다. 권한이 없는 사람에 의한 임의 투표행위나 대리투표로 의심받을 행위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표결의 자유와 공정성이 침해돼 결과의 정당성까지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6명의 재판관은 법안 심의 도중에 질의와 토론 신청기회도 실질적으로 봉쇄됐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신문법 처리 과정에서 의원들의 권한이 침해됐다고 본 재판관이 7명에 달했다. 방송법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재판관 6명이 ‘침해’로 판단했다.

법안 처리 과정이 위법했다면, 그 법은 무효가 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헌재는 이러한 상식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권한 침해만 확인하고 사후조치는 국회에 맡겨야 한다”거나, “일사부재의 위반은 인정되지만 가결 선포 취소나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는 아니다”는 식의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은 누가 봐도 ‘정치적 판결’이다. 야당 의원들의 입법권 침해를 인정했으면서도 집권 여당이 강행처리한 법안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지난 7월22일 법안 처리 후 100일 동안의 국민 여론에 귀를 닫았다"는 비판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미디어법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 이후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여당이 제출한 미디어법에 대해 과반수 이상의 국민이 부정적이었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과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법학자들의 지적도 외면했다.

헌재의 결정은 민주주의 발전을 거꾸로 돌린 것에 진배없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지난 97년 당시 신한국당이 강행처리한 노동관계법·안기부법 등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과 유사하다. 당시 헌재는 날치기 통과된 노동관계법 등이 의원들의 심의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하면서도 "법안은 무효가 아니다"고 밝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헌재는 아직도 옛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이 위법하다고 결정됐음에도 “논란이 종결됐다”며 후속조치에 신경 쓰는 집권여당의 태도 또한 온당치 못하다. 97년 헌재로부터 절차상의 위법 판결을 받았던 노동관계법도 여야의 재협상을 통해 다시 개정된 바 있다. 때문에 의회민주주의 발전을 고려한다면 미디어법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는 여전히 국회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이 이를 망각하고 ‘논란 종결, 후속조치 시행’을 외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다.

여야는 즉각 미디어법 재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헌재의 결정으로 새 논란이 불거지고, 여야 간, 이해단체 간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이 이러한 상황을 외면하고 미디어법 후속조치에 골몰한다면 연말 정국은 또다시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4대강 정비사업 등 집권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 예산 문제는 하나같이 야당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집권여당이 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면 미디어법을 이대로 강행해서는 안 된다.

이는 10·28 재보선에서도 확인된 민심이다. 집권여당은 더 이상 교만해서는 안 된다. 더 낮은 자세로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절차적·내용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미디어법 여야 재협상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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