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정부도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국민을 적극 도울 것입니다. 이것이 정부의 서민정책의 철학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2009년 9월21일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연설 중)

매년 추석을 즈음해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발표하는 정부는 올해도 그 대책에서 서민에 대한 자금지원을 빼지 않았다.
올해 정부가 내놓은 ‘미소금융 사업’은 기존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운영하던 소액서민금융 사업을 대기업과 금융권의 기부금으로 확대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액대출을 뜻하는 미소금융. 하지만 지난달 30일 출범한 미소금융증앙재단에 대한 실효성 의문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 재정지원 ‘0원’

정부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미소금융 확대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10년간 총 2조원 이상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중 휴면예금 7천억원(올해 중 8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1조3천억원은 재계와 금융권의 기부금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1조원은 재계가, 3천억원은 금융권이 맡는 방식이다.

재계와 금융권은 정부 방침에 한 달 만에 화답했다. 미소금융중앙재단과 전경련은 지난 13일 미소금융사업 공동 지원을 위한 협정식을 개최했다. 삼성그룹이 3천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현대·기아차, LG·SK그룹이 각각 2천억원을 기부하고, 롯데와 포스코그룹이 500억원씩을 기부키로 했다.

기업 사회공헌, 미소금융으로 쏠리나

신한금융그룹도 최근 약 500억원을 출연해 연내 ‘신한미소금융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B국민은행도 100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자체자금으로 마련해 미소금융재단을 설립키로 했고, SC제일은행도 정부가 추진 중인 미소금융사업에 참여키로 했다.

정부는 휴면예금을 관리하던 소액서민금융재단을 확대·개편해 지난 9월30일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설립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컨설팅 등 총괄기능만 수행하고, 재계와 금융권이 자체적으로 ‘미소금융’을 설립한다. 재계·금융권의 미소재단은 중앙재단으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일각에서는 미소금융에 대한 재계와 금융권의 기부금은 “반강제적인 준조세”라고 비판하고 있다. 재계와 금융권은 각각 재원 마련 방안을 고심 중인데, 해당 기업들은 기존 사회공헌사업으로 각종 단체에 기부하던 재원을 미소금융으로 기부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사랑의 열매’로 잘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난해 총 모금액은 2천703억원이었다. 그중 기업 기부는 1천765억원으로 전체의 65.3%를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올해 재계와 금융권이 기부하기로 한 금액도 1천700억원이다. 정부가 미소금융에 요청한 1조3천억원과 비슷한 규모다.

특히 정부는 재계와 금융권 등 민간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세법상 특례기부단체로 지정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현재 특례기부단체는 대학병원과 대한적십자가 운영하는 병원을 제외하고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유일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미소금융중앙재단이 특례기부단체로 지정될 경우 기업들은 사회공헌사업을 결정하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미소금융중앙재단을 놓고 저울질 할 수 있게 된다.

이성남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반적으로 미소금융을 대기업이나 은행들이 자기 수익을 줄여가며 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존 사회공헌사업비의 일부로 기부하는 것이라면 이게 무슨 서민대책이냐”고 비판했다.

해 보다 안 되면 그만?

미소금융은 저신용자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담당하던 신나는조합·사회연대은행은 물론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과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사회연대은행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국정감사에서 미소금융 때문에 사회연대은행이 본의 아니게 도마 위에 올라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모두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무보증소액대출) 기관은 지난 2000년 설립한 신나는조합(그라민은행 한국지부)과 2002년 설립한 사회연대은행 등이다.


이들 단체들은 소외된 빈곤층의 자발적인 노동시장 참여와 빈곤퇴치 등을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당장 재계·금융권의 미소금융재단이 본격적으로 운영되는 내년부터는 기존 서민금융기관간 경쟁마저 예상된다. 그런데 미소금융이 목표로 하는 5% 저리는 기존 서민금융기관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정책이 오히려 서민금융기관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6일 “미소금융재단은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신용등급 9~10등급자를 대상으로 소액 신용대출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미소금융은 2000년대 초부터 이미 시작된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하는 기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회연대은행 관계자는 “소액 서민대출을 하청받는 방식으로 정부사업을 대행해 주다가 정부 방침이나 정책적인 변화가 있으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위는 다음달까지 지역별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내년 5월까지 법인마다 2~5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20~30개 수준의 지역별 미소금융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내년 5월까지 100만원 수준의 최소 실비를 받으며 사업성 평가와 상담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50~150명의 자원봉사자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박 의원은 이어 “지난 10년 동안 정부와 민간단체가 축적해 온 지식과 경험을 외면한 채 추진되는 ‘미소금융’은 MB식 코드맞추기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성향 단체만 ‘미소 짓나’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전신인 소액서민금융재단은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창업 및 취업지원·신용회복지원·사회적기업지원·전통시장 영세상인 지원·소액보험 계약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 가운데 저소득층 창업 지원·사회적 기업지원·신용회복지원·전통시장 소액대출 등 소액금융사업과 소액보험사업은 재단이 복지사업자를 선정해 자금을 지원한다.

소액금융사업은 지원대상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지원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분야다. 따라서 사업에 대한 경험이 필수적이다. 복지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공신력·재정능력·사업수행능력의 3개 평가기준과 15개 세부 평가요소를 면밀히 평가한다.

재단이 올해 선정한 복지사업자는 총 10개 단체인데, 이 중 사회적기업 지원 분야에 민생경제정책연구소와 민생포럼을 선정했다.

그런데 민생경제정책연구소는 지난해 11월7일 설립됐고, 민생포럼은 지난해 1월 설립된 단체다. 관련 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사업수행능력의 전문성·사업실적·네트워크 인프라 등 사업추진기반 요건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높아 결격 사유가 많음에도 복지사업자로 선정된 데 대해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미소금융재단이 지원하는 복지사업자가 친정부 사업자가 아니냐고 문제 삼기도 하는데 기존 지원금의 집행률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업자는 일괄적으로 지원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김진홍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전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같은 단체의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는 인물로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생포럼도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의 연구위원 출신인 김오연씨와 문융식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대표를 지낸 곳이다.

이성남 의원은 “관련 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단체를 복지사업자로 선정한 데 대해 소액서민금융재단은 신규 복지사업자를 발굴하는 목적이라고만 할 뿐 관련 심사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각 단체가 소액서민금융재단에 제출한 예산계획에 따르면 대출사업비 외 인건비·복리후생비·사무실운영비 등이 포함돼 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급이 선정의 주된 목적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는 전국에 200~300개의 미소금융지점을 설립할 계획인데, 지점 선정과 지원은 소액서민금융재단을 확대·개편한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맡게 된다.

이 의원은 “민생경제정책연구소와 민생포럼의 선정사례와 같이 신규 사업자를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에 친정부 단체를 설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Tip] 
 
미소금융 : 미소금융의 미소는 아름다운 소액대출의 줄임말. 정부는 향후 10년간 재계와 금융권의 기부금 출연을 통해 총 2조원 이상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12월 공식 출범 예정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 :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소외된 저소득계층을 지원하는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이다. 주요사업은 취약계층의 창업지원사업, 사회적기업 지원사업 등이다.
사회연대은행 : 빈곤층이 경제적·사회적·심리적 빈곤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활할 수 있도록 창업에 필요한 자금과 경영 및 기술지원, 사회·심리적 자활을 위한 교육훈련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비영리 자활지원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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