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화곡동에 사는 김아영(가명·30)씨는 지난 8월 A형 간염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초음파 검사 도중 자궁에 혹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사는 혹이 커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대학병원을 찾은 그는 내과와 산부인과를 오가며 각종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반복해서 채혈실을 찾았다. 김씨는 “왜 똑같은 검사를 또 받으라고 하느냐고 병원에 물었더니 정확한 진료를 위해서는 최근 결과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수술을 한 김씨는 병원에서 일주일간 입원했다. 이 기간 동안 발생한 진료비는 모두 388만원. 건강보험이 부담한 166만원을 제외하고 김씨가 부담한 비용은 222만원이었다. 김씨의 진료비 내역을 들여다보니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66만원, 나머지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이 무려 156만원이었다.
비급여는 주로 검사료 옆에 따라 붙는 경우가 많았고, 초음파 진단료(1회 7만1천원)와 선택진료료는 전액 비급여였다. 입원 당시 주사료·마취료·영상진단료·치료재료대 등에도 비급여가 포함돼 있었다. 김씨는 “수술이 끝난 후 간호사가 수술 상처를 잘 아물게 도와주는 연고를 사겠냐고 물어왔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연고 역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였다.
 


공공재원 비중 20~30% 낮아

병원을 찾았다가 높은 진료비에 부담을 느낀 경우는 비단 김씨만의 사례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비 상승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2004년 이전까지 국민의료비는 연평균 8~9% 증가했지만, 2005년 이후 매년 12~13%가량 증가하고 있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일차적으로는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면서도 “전체 국민의료비에서 공공의료 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낮은 데다 민간의료기관이 90%여서 정부가 공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을 포함한 공공보건의료 재정이 국민의료비 증가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결국 국민들이 사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연평균 30% 이상 급신장하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의료비 중 건강보험과 조세 등 공적으로 조달된 공공재원의 비중이 5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민간보험이나 가계가 직접 부담한다는 의미다. 주요 선진국(80~85%)이나 OECD 평균(72%)보다 무려 20~30%나 낮다.

비급여 항목에 환자 허리 ‘휘청’

건강보험 보장성은 참여정부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04년 61.3%, 2006년 64.4%, 2007년 64.6%까지 올라갔다가 지난해 62.2%로 떨어졌다. 이는 6세 미만 영·유아 입원치료에 대한 법정 본인부담이 면제됐던 것이 다시 10%를 부담하는 것으로 바뀐 것도 반영됐다. 이런 정책은 2007년 참여정부 시절 결정됐고,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이진석 교수는 “국민의료비는 계속 팽창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보장성 강화에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보장성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택진료료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료서비스도 건강보험 보장수준을 개선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비급여 진료비 규모는 6조2천억원으로 추정된다. 2004년 4조1천억원, 2007년 5조원 등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김아영씨는 “요즘처럼 여성질환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자궁 초음파 검사는 필수인데 검사비를 모두 환자가 내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아쉬워했다.

아픈 환자 두 번 울리는 ‘선택진료료’

김씨의 진료내역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비급여 항목은 다름 아닌 ‘선택진료료’다. 비급여 금액 156만원 가운데 선택진료료가 41만원으로 약 27%를 차지한다. 선택진료료는 환자가 특정한 의사를 선택해 진료했을 때 내는 비용이다. 그런데 선택진료료에 대한 법조항이 애매하다. 의료법 46조 4항은 선택진료를 한 경우에도 환자에게 추가비용을 받을 수 없게 했지만, 5항은 “4항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선택진료를 한 경우에는 추가비용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더군다나 김씨처럼 특정 의사를 ‘선택’한 적이 없을 경우에도 병원은 임의대로 진료내역별로 선택진료료를 부과하고 있다. 최근 심재옥 진보신당 여성위원장은 자녀의 신종 인플루엔자 검사에서 선택진료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선택진료료를 부과한 고대구로병원에 문제제기를 해 병원측으로부터 돌려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7년 건강보험환자의 본인부담진료비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선택진료비는 비급여 비용 중 25% 내외를 차지했다. 대학병원의 경우 30%였다. 선택진료료는 연평균 27%씩 증가하고 있어 올해는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2006년 암환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선택진료제를 유지하면 건강보험 보장수준은 71%였지만 폐지했을 경우 77%로 높아진다”며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선택진료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선택진료료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에게까지 그대로 적용돼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혈액 관련 희귀난치질환을 앓아 병원비로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정아무개(33)씨는 “의료급여 수급자로 지정되면서 병원비 부담을 덜 수 있을까 기대했다”며 “선택진료료를 똑같이 부담해 이중의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정씨의 진료비 총액은 1천400만원.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인 정씨가 부담한 금액은 335만원이었다. 이 중 선택진료료가 65만원(19%)이었다. 정씨처럼 희귀질환 환자들의 경우 병원과 의사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부당청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쉽지 않다.

“보장성 90% 가까이 끌어올려야”

이처럼 환자들의 병원비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의료채권 도입과 영리법인 허용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리법인은 외부의 투자자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수익을 최대한 창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의료비가 더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진보적인 시민·노동단체 사이에서는 단순히 의료민영화 정책을 반대만 해서는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주장이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지금처럼 보장성을 조금씩 올려서는 결국 민간보험 활성화나 병원의 비급여 확대를 통해 효과가 상쇄된다”며 “보장성을 90% 가까이 끌어올리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노동·시민단체들은 이른바 ‘삽질예산’으로 불리는 4대강 예산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전환하는 대국민 선전전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지난 6일에는 8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정당으로 구성된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총선·대선 때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주요 어젠다로 확대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다음달 이와 관련한 대규모 토론회를 국회에서 개최한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바꾸자는 것은 결국 말잔치밖에 안 됩니다.”
지난 21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만난 이진석(38·사진) 교수는 “건강보험을 조금 내다가 중증질환에 걸려 가계파탄에 이를지 아니면 조금 더 내고 건강보험만으로 의료비에서 자유로워질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이 보험료를 내고 국가가 보험료의 20%를 국고로 지원하게 돼 있습니다. 재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든지, 아니면 정부가 국고지원을 늘리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교수는 “국고지원 비율을 현행 상태로 유지하고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방식으로 국민의료비에서 공공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0% 중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가구당 월평균 4만5천원에서 5만원 정도 더 내면 된다”고 말했다. 국고지원 비율을 30%로 올리면 그만큼 보험료 부담은 떨어진다.
“현재 1인당 월평균 민간의료보험 지출이 10만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가구당 4만5천원에서 5만원만 더 내면 흔히 유럽의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의 국민들이 누리는 건강보험 혜택을 우리나라 국민들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국민들이 사전에 이런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보험료를 더 내겠냐고 물으면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비용 부담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행위별수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의료공급자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로 보험급여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도덕군자가 아닌 이상 환자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가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며 “행위별수가제하에서는 수많은 검사나 처방에 비급여를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포괄수가제는 어떤 질병으로 입원하면 입원기간 동안의 총진료비가 정해져 있습니다. 입원기간이나 중증도에 따라 약간 가산되는 비용이 있을 수 있지만 환자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마음대로 비급여 서비스를 갖다 붙일 수는 없어요.” 이 교수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수가만 따지면 진료 원가의 70~80% 수준”이라며 “비급여를 늘리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전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수가를 적정화시켜 주면 비급여(비보험) 진료와 과잉진료를 자제하겠다고 합니다. 시민단체는 비보험 서비스와 과잉진료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을 담보하면 건강보험 수가 인상에 동의하겠다고 합니다. 서로 먼저 손을 들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얘기입니다. 결국은 제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교수는 “의료공급자가 포괄수가제를 받아들이고 보장성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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