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최근 금속노조에 납부할 조합비 8억원을 내지 않겠다고 밝히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산별노조와 조합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지부는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당장 사용해야 할 예산이 많기 때문에 일시 납부를 보류한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도 “지부의 조합이 납부 보류 결정은 사전에 노조에 보고된 사항”이라며 “언론이 사안을 지나치게 부풀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 안팎에서는 기업지부 해소와 지역지부 전환을 앞두고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연간 15억원, 누구의 몫으로?

금속노조는 자동차노조들이 산별로 전환한 지난 2006년 통합대의원대회에서 2009년 9월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기업지부를 인정키로 했다. 조합비는 본조와 기업지부가 각각 46%와 54%로 나눴다. 본조·지역지부·지회가 각각 46%·14%·40% 비율로 나누던 조합비 가운데 지역지부 예산을 기업지부로 편입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지부 해소가 확정되면 현대차지부는 지회가 된다. 조합비의 40%만 받게 되는 셈이다.
현대차지부의 조합비 납부 거부 사태는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이 이경훈 현대차지부 지부장을 직접 만나 기업지부의 지역지부 편제 방안이 확정될 때까지 기존 비율(54%)대로 조합비를 내려 보내 주기로 약속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이 지부장은 “현재 내려 받는 54%의 조합비는 조합이 사업을 하는데 최소한의 예산이고 40%로는 사업을 집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지역지부 편제에 따른 조합비 인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기아차나 GM대우차와 같이 기업지부를 유지하고 있는 일부 대공장노조들도 지역지부 편제에 따른 조합비 인하를 우려하고 있다. 당분간 갈등과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 재정 집중도 “아직 멀어”

금속노조는 지역지부 편제와 조합비 분배를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지만 국내 어떤 산별노조보다 재정의 중앙집중도가 높다.
금속노조는 조합원 1인당 통상임금 1%를 조합비로 걷고 이 가운데 46%를 본조가 사용한다.<표 참조> 물론 해외 대표적 산별노조인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의 67.6%보다는 낮은 수준이다.<상자기사 참조>
 
 

통상임금 1%를 조합비로 걷어, 이 가운데 39%를 본조가 사용하는 보건의료노조도 금속노조보다는 비율이 낮지만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금속과 보건은 모두 본조가 직접 조합비를 걷어 일정 금액을 지부나 지회에 내려보내는 체크오프(Check-Off)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 다른 산별노조인 금융노조는 조합비의 15%를 본조가 사용한다. 금융노조는 지난 2002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본조가 사용하는 조합비 비율을 10%에서 단계적으로 25%까지 올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005년에 15%로 인상한 뒤, 4년째 정체된 상태다.

닭과 달걀, 어느 것이 먼저냐

금융노조는 올해 정기대대에서 정률제이던 조합비 납부방식을 정액제로 바꿨다. 조합원 1인당 본조 납부 조합비는 2천800원으로 15% 수준을 유지했다. 조합비 납부 방식을 정액제로 바꾸면서 본조 비율을 25%(정률제)까지 올리자는 방안도 덩달아 폐기됐다.

금융노조가 조합비 납부방식 변경을 추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7년에 금융노조 산별강화특별위원회가 지부별로 천차만별인 조합원 1인당 조합비 납부 비율을 ‘통상임금의 1%’로 바꾸려 시도했지만 지부의 반발로 무산됐다.

본조의 인력과 재정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 납부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대세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금융노조 대형은행지부 한 관계자는 “본조 납부 조합비 비율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는 있다”며 “재정·인력을 집중해 본조의 지도력을 높여야 할지, 그 반대의 과정을 밟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논쟁 속에서 지부가 재정의 중앙 집중을 회피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재정 집중, 산별 노동자 연대의 기반

언론노조는 체크오프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완성된 형태는 아니다. 본조 사용 조합비 비율도 25%로 낮은 수준이다. 올해 미디어법 저지를 위해 세 차례나 파업을 단행했던 언론노조는 재정이 좋지 않은 지부에까지 빚을 지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본조에 납부된 조합비 가운데 지부로 내려줘야 할 금액을 일부 체납한 것이다. 언론노조는 언론악법 폐기 후원금을 모금하고 바자회를 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족한 예산을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 중앙집중도로 일부나마 ‘산업별 노동자연대’라는 산별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조합원인 비정규 노동자가 투쟁으로 해고되면 생계비 일부를 지급한다.

조합원이 노조활동으로 법률적 제재를 받을 때도 벌금이나 변호사 비용을 노조가 부담한다. 실제 GM대우차 부평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된 비정규지회 간부 10여명은 최근 1년간 금속노조로부터 매달 9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받았다.

보건의료노조도 부당해고를 당한 조합원에게 생계비를 지원한다. 또 조합원 100인 이하 지부와 간접고용 비정규직지부는 최소 10%에서 최대 100%까지 조합 사업비를 지원한다. 소규모지부와 비정규직에 대한 재정적 연대인 셈이다.

산별 임금교섭, 임금격차 해소 기여

조합비 문제는 아니지만 돈에 관련된 것이라면 ‘임금교섭’을 빼놓을 수 없다. 산별노조는 기업별교섭이 아닌 산별교섭을 통해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노동자 간 격차해소’라는 횡적 연대를 추구한다. 산별노조의 임금교섭권 장악은 지도력 강화와 횡적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주요한 무기다.

국내에서는 보건의료노조가 가장 집중도 높은 교섭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산별 임금협약에 대한 지부(혹은 단위사업장) 구속력도 강하다. 2002년에는 일부 국립대병원지부들이 임금협약 강제가 부당하다며 탈퇴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임금교섭권 확보를 통해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으로 사용한다’는 노사합의를 이끌어 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의 이러한 임금협약은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라고 높게 평가받았다.
금융노조도 임금교섭을 산별교섭에서 진행한다. 금융노조는 산별교섭에서 단일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맺고 있다.

단일인상률에 ‘+α’라는 여지를 두면서 기업별 보충교섭을 통해 더 많은 임금인상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둔다. 산별임금협약이 사실상 산업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매년 임금교섭에서 정규직의 두 배에 달하는 비정규직 임금인상률을 제시하고, 그에 준하는 임금인상을 쟁취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산업별 최저임금 외에는 별도로 임금협약을 맺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기업 간 지급여력이 다르고 조합원 간 임금편차도 크기에 이를 조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별 임금교섭을 통한 노동자 간 임금격차 해소는 금속노조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져 있다. 다만 임금협약 대신 단체협약을 통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거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조건 차별대우를 금지하면서 복지수준을 향상을 꾀하고 있다.

재정 중앙 집중, 산별노조 기반

이처럼 산별노조는 산별교섭을 통한 산별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산별 노사관계, 실현 가능한 미래인가’라는 보고서에서 밝힌 2005년 비정규직 임금인상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별교섭의 경우 직접고용 비정규직 임금인상률이 6.1%, 간접고용이 4.5%였던 반면 초기업교섭(산별교섭)에서는 7.5%와 4.7%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비정규직 비율도 기업별노조가 20.5%였지만 산별노조는 17.5%로 다소 낮았다. 산별교섭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끊임없이 시도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보건의료노조처럼 임금협약을 통해 비정규직을 지원할 경우 그 효과는 보다 직접적이고 광범위하다. 보건의료 노사가 2007년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1.3~1.8%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쓰겠다고 합의하면서, 교섭 전 1만3천553명에 달했던 비정규직은 교섭 후 1만1천474명으로 2천79명이나 줄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산별교섭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산별노조가 기업지부로부터 신뢰받고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로 재정과 인력의 중앙 집중을 꼽았다.

정주연 고려대 교수(경제학과)는 “조합비의 상당 부분이 중앙에 집중될수록, 유능한 인력이 산별노조에 머물수록, 지역이나 기업지부를 확실히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수록 산별노조의 신뢰와 권위가 커진다”며 “재정이나 교섭내용을 기준으로 볼 때 국내 산별노조는 기업지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 대표적 산별노조인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재정집중화를 통한 효율적인 지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금속노조가 걷는 조합비 가운데 본조 비중이 67.6%(2004년 기준)에 달한다. 상급단체 회원비(11.5%)나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법적지원비(4.4%)를 제외해도 51.7%가 본조에서 활용된다.<표 참조>
독일 금속노조는 51.7%의 조합비 가운데 20.8%를 집행위원회 운영경비로 사용한다. 13.4%는 파업기금으로 적립한다. 또 조합원에 대한 재정 및 법적 지원비로 8.4%를 사용하고, 교육활동과 금속노조신문 제작 등 정보관련 자료제공 사업에 각각 5.8%와 3.3%를 쓴다.
독일 금속노조가 적립하는 파업기금은 파업결정권에 관한 본조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파업기금은 독일 금속노조가 산별 차원의 파업을 벌일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된다. 또한 본조의 결정 없이 진행되는 단위노조 파업을 제재할 수 있는 기반이다. 파업기금을 기업별노조에서 적립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 금속 단위노조들은 자체 파업기금이 없어 본조의 지원 없이 독자적인 파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본조가 직접 조합원 교육을 시행하고 노조활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조합원에 대한 재정과 법률 지원도 도맡아 진행하면서 산별노조 중심성을 구현하고 있다. 조합원 개인이 산별노조로부터 누리는 혜택이 많아, 신뢰도도 높다. 독일 금속노조는 전체 조합비 가운데 지역지부에 5.6%, 기업지부에 31.2%를 교부금으로 지급한다. 김봉석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