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근로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서, 법원은 해고의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그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해고는 부당해고로서 무효가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서울고법 2008.7.25. 선고 2007나77165). 지금부터 살펴볼 판례를 통해 해고의 실질적 요건(정당한 이유)을 간단히 살펴보고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간 및 사용자가 임의로 변경한 인사명령에 따른 면직처분의 부당해고성에 대해 검토해보기로 한다.

사건의 개요

피고보조참가인(이하 ‘근로자’라 한다)은 1988년 4월18일 원고(이하 ‘회사’라 한다)에 입사해 과장(2급)으로 근무하다가 2004년 8월1일 부장(1급)으로 승진해 근무하던 중 2008년 8월1일 직급정년 연임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면직처분 되었다.

이에 근로자는 2008년 8월1일 행해진 인사조치(직급정년 연임기간 만료로 인한 면직처분, 이하 ‘2차 인사명령’이라 한다)가 부당하다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했고,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이를 인용했다.

회사는 이에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초심판정과 같은 취지로 사용자의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회사는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사실관계 및 회사의 주장

회사는 1996년 2월1일 이사회를 개최해 1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직급정년제를 도입해 해당 직원의 업무수행능력에 따라 5년의 범위 내에서 연임이 가능하도록 했고, 그 후 회사는 2001년 7월19일 이사회를 개최해 연임가능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인사규정 개정안을 의결했고, 이러한 내용을 노조에 통보하고 의견을 청취했다.
회사는 이런 인사규정에 따라 직급정년제 적용대상이 된 근로자에 대해 2007년 7월28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연임을 의결하고 ‘근로자에 대한 직급정년을 2007년 8월1일부터 2010년 7월31일까지(3년) 연장한다’는 내용의 인사명령문을 공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사발령 직후 노조위원장이 대표이사에게 ‘근로자와 직원들 간의 갈등이 심하기 때문에 참가인의 연임기간을 3년으로 할 경우 직원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는 보고를 하자, 대표이사는 즉시 근로자의 연임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축소, 변경하고 내부전산망에 공고된 1차 인사명령문을 삭제한 후, 새로운 인사명령문을 다시 게시했다.
그 후 회사는 2008년 8월1일 근로자에게 직급정년 연임기간 만료를 이유로 면직됐음을 통고했다.

이에 근로자가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했고, 회사는 ① 근로자가 인사명령 당시에 아무런 구제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가 면직되고 난 이후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했으므로 구제신청기간을 도과했을 뿐만 아니라, ② 근로자는 연임기간 축소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근무해 왔으므로 지금에 와서 부당해고를 다투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 ③ 또 연임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함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으며, ④ 3년 연임결정에 관한 인사발령문이 사내게시판 및 내부전산망에 공고 된지 불과 10분여만에 삭제됐기 때문에 인사발령 번복으로 근로자가 받게 될 불이익은 극히 미비할 뿐만 아니라 ⑤ 인사규정상 직급정년 연임기간의 최종 결정권자는 회사의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대표이사가 연임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재차 인사발령을 한 것은 유효하며, 그에 기한 면직처분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근로자의 구제신청이 구제신청기간을 도과했는지 여부

판례는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등의 불이익처분에 대한 구제신청은 그 행위가 있은 날(계속하는 행위는 그 종료일)로부터 3월 이내에 신청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와 같은 권리구제신청기간은 제척기간이라 할 것이므로 그 기간이 경과하면 그로써 행정적 권리구제를 신청할 권리는 소멸한다 할 것(대법원 1996.8.23 선고 95누11238 판결 참조)이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7.2.14 선고 96누5926 판결).

따라서 부당해고 구제신청기간의 기산일은 회사의 인사명령이 있은 날이 아니라 근로자의 해고가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생하는 날로 보아야 하므로, 근로자가 2008년 8월1일 회사로부터 면직통보를 받은 날이 기산점이 되고, 그때부터 3월 이내에 구제신청을 제기한 이상 이는 적법한 것이므로 회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 할 것이다.

근로자의 구제신청이 신의칙에 위반되는지 여부

회사는 근로자가 연임기간 축소에 묵시적으로 동의해 근무해 왔으므로 이를 다투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근로자가 연임기간의 축소에 대해 이의제기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바 없다는 사정만으로 연임기간의 축소 및 이에 근거한 면직처분에 대해 이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승복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그에 대한 구제신청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인사규정의 유효성 여부(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면직처분의 정당성 여부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회사가 직급정년에 대한 인사규정의 유효성을 검토한다.
원칙적으로 취업규칙은 사용자의 의사에 따라 작성, 변경 할 수 있으나 그것이 근로자에게 불이익 하게 변경될 경우에는 종전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요하고, 이러한 동의를 얻지 못한 취업규칙의 변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만한 것이 아닌 한 효력이 없다 할 것이다(대법원 1994.5.24 선고 93다14493판결참조).

회사의 직급정년제는 사실상 근로자의 정년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것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종전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던 근로자 집단의 집단적 의사결정방식에 의한 동의가 필요하다.

대법원 판례 또한 “취업규칙의 변경에 의하여 기존 근로조건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종전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 집단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요한다고 할 것인바, 그 동의방법은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의, 그와 같은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들의 회의방식에 의한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근로자의 과반수라 함은 기존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 집단의 과반수를 뜻한다(대법원 2008.2.29. 선고 2007다85997 판결)”고 판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판단해 보면 1996년 직급정년제 최초 도입시 당시 1급으로 재직하고 있는 직원1명의 동의만을 받았지만, 이후 2001년 7월31일 연임기한을 5년에서 3년으로 축소 개정함에 있어서는 근로자 과반수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고 동의를 받았으므로 적법한 절차를 거쳐 도입됐다고 판단된다.

정년직급제 관련 인사규정은 1급 이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3급 이하 직원들도 누구나 1급 이상으로 승진기회가 부여돼 있으므로 직원 전부에게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는 점에서 전체 직원들이 동의의 주체가 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 과반수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고 동의를 받은 회사의 인사규정은 유효하다 할 것이다.

2차 인사명령의 유효성 여부 및 그에 기한 면직처분의 유효성

회사는 3년 연임결정에 관한 인사발령문이 사내게시판 및 내부전산망에 공고 된지 불과 10분여만에 삭제됐기 때문에 인사발령 번복으로 근로자가 받게 될 불이익은 극히 미비하다고 주장하나, 회사의 대표이사가 인사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근로자를 3년간 연임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러한 취지의 인사명령문을 대내외적으로 공고한 이상 이러한 인사발령은 그 효력을 이미 발생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뿐만 아니라 이후 대표이사가 일방적으로 연임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축소시켰다면 이는 근로계약기간을 사용자 임의로 변경한 것에 해당되어 근로자의 사전 동의가 없는 한 무효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회사가 1차 인사명령과 2차 인사명령 사이의 시간간격이 10불에 불과했다는 사정과 근로자의 3년 연임을 반대해 직원들이 집단행동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2차 인사명령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

이상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2차 인사명령이 무효인 이상, 그에 터 잡은 면직처분은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임이 분명하고, 회사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근로자를 해고시킬 만한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할 것이므로 본 사건의 해고는 부당해고임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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