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칼럼은 항소이유서입니다. 항소이유서가 무슨 칼럼이냐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항소이유서는 이 칼럼을 고민하면서 작성된 것이고,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필자는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다양한 형식으로 이 공간을 채울 예정입니다. 형식을 탓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피고인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근무하는 자입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다른 생산직 근로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생산라인에서 일해 왔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학력과 경력을 갖고 평범하게 일해 온 전형적인 생산직 근로자입니다.
피고인은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된 근로자입니다. 이것이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다릅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바로 이 점에서 피고인 신성원은 다릅니다.

신성원은 정규직과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동일한 일을 함에도 동일한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정규직이 당연히 받는 후생복지 등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현재는 진성씨엔시에 재직 중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언제 또 다른 사내하청업체에서 재직하게 될지 모릅니다. 바로 이것이 피고인을 오늘 수원구치소에서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며 구금 상태에 있게 하였습니다.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로서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해보려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른 점을 다르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이 부당하다 몸부림치다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제1심 평택지원의 판결문은 모두사실로 다음과 같이 피고인에 대해서 적시하였습니다. “피고인은 2006.10.12. 수원지방법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법률 위반(집단·흉기등상해) 등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같은달 20일 위 판결이 확정돼 현재 그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고, 기아자동차 주식회사 사내하청업체인 진성씨엔시에 재직 중인 생산직 사원으로,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이다.”

이 모두사실이 피고인의 현재 상태를 보여 줍니다. 피고인은 이미 비정규직지회 조합활동으로 처벌을 받은 바 있습니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대의원으로 조합활동을 하다 죄를 저질렀고, 이것 때문에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죄를 범했으니 그 집행유예가 종료되기 전에는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없는 것이고, 당연하게도 평택지원은 피고인에 대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피고인은 지난해 10월 중순 체포돼 현재까지 구금돼 있습니다.

위 제1심 판결에 불복해 피고인은 항소심 재판을 받습니다. 피고인에게 적용된 죄명을 보면 특수공무집행방해·일반교통방해·공용물건손상·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공동재물손괴 등)·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업무방해 등 여섯 개입니다. 비정규직지회 대의원으로 조합활동을 하다가 발생한 범죄에 따른 죄명입니다.
이 중 업무방해죄는 기아자동차에서 파업 등 조합활동을 하다가 문제가 된 것이고, 나머지는 금속노조에서 주최한 이젠텍 집회에 참석했다가 참석자들의 일부가 경찰과 충돌하는데 합세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기아자동차에서 파업 등 조합활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조합활동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내하청업체 백우의 작업형태변경과 정리해고 저지, 사내하청업체 백상의 분사반대, 단체협약 파기 저지, 잔업수당 정규직과 동일 적용 등을 위해 파업을 하고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기아자동차에서 사내하청업체는 원청회사인 기아자동차의 처분에 맡겨져 있습니다. 업체 자체가 기아자동차의 결정에 따라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생겨납니다. 기아자동차의 결정에 따라 업체가 쪼개지기도 합니다. 업체의 존폐에 따라 그 업체에 종사하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소속이 바뀌고 때로는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상시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업체 변경, 분사에 따른 고용불안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지회는 고용안정을 주된 조합활동으로 해 왔던 것이고 피고인도 대의원으로서 이 사건 행위들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사내하청업체에서 단체협약 위반사례가 빈번이 발생하고 잔업수당마저도 정규직과 차별해 지급합니다. 비정규직지회는 이를 개선해 보고자 했고 피고인은 대의원으로서 당연히 그 활동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정규직 근로자에게는 당연히 보장되는 고용상태가 같은 생산공정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비정규직지회는 파업을 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파업을 하면 사내하청업체는 바로 일용직 근로자를 대체 투입합니다. 당연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위반한 불법적인 대체근로 투입행위입니다. 그래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출입문 앞에서 점거농성하고 몸싸움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사건 업무방해의 실체입니다. 불법적인 대체근로투입을 저지하기 위한 점거농성과 몸싸움이 과연 업무방해죄로 처벌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고 이에 관하여 항소심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젠텍분회와 관련된 집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일부 참가자들의 행위에 합세해 경찰과 충돌하는 등으로 발생한 행위 부분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까지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이젠텍 사용자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것은 집회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이 같은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금속노조가 주최한 집회에 그 조합원으로 참석했다가 합세했던 것인데 그렇다고 피고인이 직접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경찰버스와 회사 유리창을 손괴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주최한 집회에서 경찰이나 사용자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물리적 충돌은 노동조합이나 집회 참가자들이 폭력적이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리가 침해되고 이에 대해서 침묵이 강요될 때 정당한 권리를 회복하고자하는 집단적인 분노는 종종 폭력으로 표현됩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침해된 권리를 알리고 호소합니다. 침해된 권리가 너무도 당연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힘이 억압적일수록 표현되는 집단적인 분노는 보다 더 폭력적입니다. 이젠텍분회와 관련된 이 사건 집회가 그러했습니다.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임금을 받는 이젠텍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조합활동을 하자 활동하지 않던 노조가 나타나 사용자는 복수노조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법원의 가처분결정을 받아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거부하는 사용자의 행태는,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단체교섭을 진행해 협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과 절망을 갖게 했고 이 절망이 이 사건과 같은 행위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당시 일부 참가자들과 피고인의 행위를 볼 때 그 적용죄명만을 보지 말고 이러한 점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은 이제 체포되어 구금된지 1년이 지나갑니다. 피고인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평범한 근로자였습니다. 지금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재직 중인 특별할 것 없는 근로자입니다. 다만 피고인은 비정규직 근로자입니다. 이 점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어 있고 그 수가 오히려 정규직보다 많거나 그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특별한 것은 다른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와는 달리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입니다. 40세의 나이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비정규직으로 낮은 보수 때문에 잔업 특근을 밥 먹듯 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로서 피고인도 자신만 생각했다면 굳이 나서서 조합활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잘나지도 못하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힘들게 생산라인에서 일하면서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다른 취급을 받는 이들이 함께 비정규직의 권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고인은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조활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오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혹 범죄행위를 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비정규직은 애초에 정규직과 다른 취급을 위해 만들어졌고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정규직 노동자와는 다른 법적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 행위는 바로 비정규직 노조활동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왜 피고인에게 범죄행위를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피고인은 “비정규직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노조활동을 하다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인은 오히려 반문할지 모릅니다. “처벌받지 않고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피고인에 대한 재판에서 우리 사회는 법원을 통해 이에 대한 대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비정규직 노조활동의 법적 보장은 어디에 있는지. 비록 그 대답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는 다시 한 번 절망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미 1년 넘게 구금생활을 해 온 피고인에게는 항소심 판결이 절망이지 않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1심에서 선고된 1년6월의 실형은 피고인에게는 너무 중합니다. 항소심에서는 피고인과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절망 속에서도 재판부에 호소하는 작은 바람을 저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을 감해 피고인이 즉시 석방될 수 있도록 판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10.12. 피고인의 변호인 변호사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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