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미국. 일본 등이 고급 IT인력들에 대한 비자발급 조건을 완화하자 국내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이 전문직취업비자(H-1B)의 쿼터 할당량을 지난해 11만5천명에서 올해는 19만5천명으로 늘림에 따라 엑소더스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황〓미 연방이민국(INS)에 따르면 1999년 10월부터 2000년 2월까지 H-1B 비자를 받은 한국인은 1천6백91명으로, 전체(8만1천2백62명)의 2.1%였다.

업계는 올해는 이 비중이 커져 4%(8천여명)대에 이르고, IT인력이 그 절반인 4천여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도 등에서 기술을 배운 뒤 미국 등으로 진출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인력개발업체인 인도IT가 이달 초 국내 IT 경력자 50여명을 뽑아 7~13개월 인도에서 전문교육을 시킨다고 하자 3백여명이 지원했다.

국내 고급 IT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로는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회사 분위기▶자녀교육 문제▶높은 급여(미국에서 회사경력 3년차 엔지니어의 경우 최소 연봉이 7만5천달러 수준) 등이 꼽힌다.

업계는 인력의 해외 유출로 'IT기술 공동화(空?化)' 현상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다.

2005년까지 최소한 14만명의 전문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핵심인력이 빠져 나가면 기술개발이 지체되고, 더 나아가 IT산업의 퇴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 세계적 인력 이동〓IT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세계의 고급 IT인력들이 돈과 기술을 좇아 미국으로 쏠리자 다른 국가들은 인재의 유출을 막으면서 제3국에서 '사람 빼오기' 에 혈안이 됐다.

지난 8일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해 "미국과 IT인력 쟁탈전을 선언한다" 고 발표, 전세계 IT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사실상 미국과 유럽의 'IT전쟁' 이 선포됐기 때문이다.

◇ 국내 대응〓필요한 인력을 구하기 위해 아예 관련 회사를 사버리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 영상솔루션 개발 분야의 상위권인 3R은 지난해 11월전송장비 전문업체인 재스컴을 인수. 합병했다.

재스컴 연구소의 개발인력 30여명을 흡수해 단번에 80명 수준의 대규모 프로그램 개발집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인수자금은 50억원. 한명당 1억7천만원을 들인 셈이다.

이 회사의 장성익(34)사장은 "기업의 생존 차원에서 불가피했다" 고 했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하거나 학원에서 쏟아지는 검증이 안된 신규인력은 쓸 수가 없다" 고 덧붙였다.

화상정보통신 업체인 팝콤네트(사장 최승혁.39)도 지난해 8월과 12월, 5억원과 2억원을 들여 회사 두 개를 인수함으로써 23명의 프로그래머를 확보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IT 관련 해외인력에 3년까지 체류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골드카드제를 실시하면서 중국 조선족이나 인도. 중국.러시아 인력을 찾는 업체도 늘고 있다.

◇ 북한 인력 활용 방안〓북한의 IT인력을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북한 IT인력의 질이 상당히 높은 만큼 남한의 앞선 인프라. 기술과 결합할 경우 인력난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현재 북한의 IT인력은 대략 10만명. 그러나 이 가운데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력은 5천명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워낙 국내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당장 유치해 활용할 수 있는 IT인력이 9만여명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지난달 30일 북한을 방문해 인민대학습당에서 현지 전문가. 학생 5백여명을 대상으로 IT강의를 한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은 "전반적으로 수학과기초과학을 강조하는 교육 분위기 덕분에 북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알고 리즘(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반이 되는 수학지식) 능력은 세계적 수준" 이라고 말했다.

조사장은 "북한의 IT인력을 남한에 데리고 와 세계 시장의 조류를 습득하게 하면 우리 인력난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이라며 "북한 내에 IT특구를 공동설치하는 등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되도록 관계기관과 협의 중" 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에서 이런 민간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생각"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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